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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석굴암 훼손 실상 생생-한겨레신문(07.09.17)

2007년 9월 20일 1007

일제의 석굴암 훼손 실상 생생 해체·복원과정 찍은 유리원판 사진 공개성균관대박물관 19일 일반공개    일제 강점기인 1913년 무렵 경주 석굴암을 처음으로 해체·복원하는 과정을 찍은 유리원판 사진 12점과 1925년 불국사 다보탑 수리 장면을 찍은 유리원판 사진들이 공개됐다. 석굴암 관련 유리원판 사진 가운데 7점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성균관대박물관이 17일 공개한 이들 사진은 일제 때 경주에서 동양헌이라는 사진관을 운영하던 다나카라는 민간인과 조선총독부 박물관장을 하던 후지타 료오사쿠(1892~1960)가 촬영한 것으로, 일제가 우리의 문화재를 복원하면서 훼손한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대식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석굴암 해체과정의 사진에는 석굴암 돔을 덮었던 흙, 기와, 석재와 내부의 환기구 모습 등이 담겨 있어 석굴암 구조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가 된다”며 “특히 일제시대 초기 석굴암 복원 과정에서 본존불을 제외한 모든 초석이 교체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이밖에 1925년 불국사 다보탑을 수리하는 모습과 다보탑 위에서 찍은 석가탑 사진도 최초로 공개됐다. 그동안 다보탑 수리에 관한 보고서가 없어 그 이전 모습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 유리원판 사진은 그 실상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으로 평가된다.한편 성균관대박물관은 19일부터 석달 동안 특별전 ‘경주 신라 유적의 어제와 오늘-석굴암·불국사·남산’을 열어 사진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1960년대 2차 수리과정부터 현재까지 석굴암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줄 예정이다. 또 이번 전시회에서는 1차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천불보탑과 금강역사의 팔뚝도 전시되며 경주 남산의 식민지시대 유리원판 사진 60점도 공개된다.송재소 박물관장(한문학)은 “일제가 석굴암을

日시민단체 ‘한일합병100년’ 전시회

2009년 10월 12일 588

日시민단체 ‘한일합병100년’ 전시회(연합뉴스, 09.10.11)

[외통위 국감] “외국 교과서 195건 ‘일본해’ 표기…오류 심각”

2009년 10월 12일 597

[외통위 국감] “외국 교과서 195건 ‘일본해’ 표기…오류 심각”(폴리뉴스, 09.10.05)

재외동포, 우리는 왜 그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2007년 9월 20일 966

    정진경(지구촌동포연대(KIN) 활동가)     이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희망세상> 2007년 9월호에 실린 글을 편집진의 허락 하에 실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어휴, 그거 말로는 다 못해. 날마다 울었어. 날마다 술 먹고 고향가고 싶다, 고향가고 싶다고 하셨어. 그렇게 가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엔 한국 못 가보고 돌아가셨지.” 10시가 되어서야 어두워지는 사할린의 밤, 민박집 주인 부부는 별 생각 없이  꺼낸 그들의  부모 이야기에 이렇게 말했다. 해방 이전 사할린으로 건너가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에서  한국을 처음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셨다는 주인 부부는  으레 한국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입버릇처럼 계속 음식을 권하셨다.러시아 사할린, 인천에서  비행기로 단 2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  멀고도 가까운 이 동토에서 살아온 4만 7천 명의  한인들은 반세기 동안 고향만 생각하다 한 많은 세상을 떠나갔고, 이제는 단 3천 5백 명만이 남아 영주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88올림픽을 통해  조국이 헐벗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지도 이미 20년이 되어가지만, 사할린 한인들은  아직도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기다린 긴 세월 동안 바뀐 사실이 있다면, 이제 한국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입국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타국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토록 우리말과 고향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한국 정부는 그들을 이제 러시아 국민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지구촌동포연대(KIN)의 국제워크숍을  통해, 지난

혹 친일 청산은 우리 역사의 우산이 아닐까

2007년 9월 20일 1069

    오마이뉴스 안병기 기자   1910년 8월 일제의 강압에 의한 국권 피탈 이후 1945년 8·15광복에 이르기까지 35년간은 우리의 역사가 단절되고 민족의 정통성이 뿌리 뽑힌 암흑의 시기였다.그 시기를 견디는 방법은 3가지였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일제에  빌붙어 친일함으로써개인의 영달을 도모하거나 굴종과 침묵으로 견디는 것이다.이 3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친일 행위일 것이다. 일제 치하 문화,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군상이 친일을 했다.안타깝게도  광복 62주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친일 청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안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 친일 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이라는  역사의 과제는  영원한 미결로 남을 것인가.지난 16일(일요일),  전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가 주관하는 ‘캐리커처로 보는 한 시대의  다른 삶 – ▲ 전주 역사박물관 외벽에 걸린 현수막. ⓒ 안병기   항일과 친일’ 전시회를 다녀왔다. 8월 14일부터 열린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전주역사박물관 2층 민화관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한가했다.전시회장으로 들어서자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캐리커처가 아니었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벽면에 붙은 커다란 글씨였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알베르 까뮈가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인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면서 했던 말이다. 전시장 안엔 친일에 가담한 19명의 캐리커처와 일제에 항거하는 삶을 살았던 19명의 캐리커처 38개가 액자에 넣어진 채 다소곳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같은

미국서도 “독도는 우리땅”…뉴욕·뉴저지 일대 독도사랑

2009년 10월 12일 599

미국서도 “독도는 우리땅”…뉴욕·뉴저지 일대 독도사랑(매일신문, 09.10.10)

[야고부] 독립운동가 손녀

2009년 10월 12일 587

[야고부] 독립운동가 손녀(매일신문, 09.10.10)

후쿠다, “과거사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ytn(07.09.19)

2007년 9월 19일 603

후쿠다, “과거사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 [앵커멘트]일본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식민지 지배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결코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또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도쿄에서 윤경민 특파원입니다. [리포트]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간사장이 외국인 특파원 클럽에 초청받았습니다.역사 인식과 외교정책에 관한 질문이 주로 쏟아졌습니다.후쿠다 전 장관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따른 문제와 관련해 결코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후쿠다 야스오, 자민당 총재 후보]“우리는 해결됐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본 내부에도 있습니다. 결코 해결됐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위안부와 강제연행 피해 문제를 포함한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으로 풀이됩니다.후쿠다 전 장관은 그러나 그럼 미해결인가 하면 그 또한 잘라 말할 수 있는지,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이어 1995년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는 올바른 것이었다며 계승할 뜻을 밝혔습니다.또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커다란 정치 문제가 돼 불행한 일이라며 참배하지 않을 뜻을 거듭 밝혔습니다. [녹취:후쿠다 야스오, 자민당 총재 후보]“가능한 한 정치, 외교문제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피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에 반해 아소 간사장은 야스쿠니 참배를 옹호했습니다.자기 나라를 위해 당당히 목숨을 내던진 사람에 대해 정부가

日 법원, 한국인 정신대 피해배상 소송 기각-연합뉴스(07.09.19)

2007년 9월 19일 524

日 법원, 한국인 정신대 피해배상 소송 기각 “1965년 한일 협정 등으로 청구권 말소”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중 일제에 강제 연행돼 도야마(富山)의 후지코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동으로 고초를 겪은 한국의 여자노동정신대원과 유족들이 일본 국가와 회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약 1억엔의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 도야마 지방법원이 19일 원고측 청구를 기각했다.법원은 그러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의 사실은 인정했다.정신대 출신 이복실(75)씨 등 정신대 출신과 유족을 포함한 한국인 22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재판부는 “정신대 권유는 허위와 협박에 의한 것으로, 후지코시에서의 노동은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 외출도 제한됐다”는 등의 불법성을 인정했다.그러나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과 그 국민은 일본에 대해 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다”며 피고측이 청구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판결문에 따르면, 이씨 등은 12-19세 이던 1944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상급학교에 보내주겠다”는 거짓 설명에 속아 일본으로 온 뒤 군수공장에서 베어링 연마 등 중도동을 강요당했으며, 임금은 커녕 충분한 식사도 제공받지못했다.

여성 의병장 윤희순 발자취

2009년 10월 12일 620

여성 의병장 윤희순 발자취(강원도민일보, 0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