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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아니죠~ 일본어, 맞습니다-대전일보(07.10.12)
한국어, 아니죠~ 일본어, 맞습니다 #회사원 정모씨(34)는 기스난 곤색차를 삐까뻔쩍하게 닦고 기름도 이빠이 넣은 뒤 담배 한 까치를 피웠다. 엊그제 과장에게 쿠사리를 얻어먹어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친구들과 가라오케에 가서 18번을 부르며 실컷 논 뒤 와리깡으로 계산하고 저녁으로 사시미를 먹었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쓰는 단어들이다. 여기에 일본어가 몇 개나 쓰였을까? 무려 10개의 단어가 두 문장을 채웠다.한국이 해방이 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일본어의 잔재는 여전하다.특히 초등학생을 포함, 젊은 세대들은 대화 중 쓰이는 단어가 일본어인지조차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우려를 낳고 있다.뽀롱나다(들통나다), 앗사리(산뜻하게), 간지(느낌) 등은 청소년이 대화나 휴대폰 문자 등을 통해 하루에 한두 번씩 사용하는 일본어다.최모군(중2)은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단어 중 일본어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학교나 집에서 사용해도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일본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어른들이 어린 아이가 투정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을 때 흔히 쓰는 단어인 ‘뗑깡(癲癎·전간)’은 사전적 의미로 간질병이다. 일제 강점기에 고등계 형사들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면서 쓴 단어로 현재 일본단체에서도 사용을 금기시하고 있다.‘싸바싸바(편법으로 넘기다)’, ‘쿠사리(꾸중)’, ‘무대포(막무가내)’, ‘시다(조수)’ 등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일본어로 꼽힌다.이밖에도 Dozen(12개 묶음)을 의미하는 일본식 영어발음 ‘다스’, 상처나 흠집을 의미하는 ‘기스’, 짙은 청색이라는 뜻의 일본어인 ‘곤색’, 접시를 의미하는 ‘사라’, 담배 한 개비를 의미하는 ‘까치’, 다진 양념을 뜻하는 ‘다데기’ 등은 우리 언어생활
[수도권]도심 곳곳 대한제국 자취 지하철 타고 ‘역사속으로’-‘동아'(07.10.12)
[수도권]도심 곳곳 대한제국 자취 지하철 타고 ‘역사속으로’ 12일은 대한제국이 선포된 지 110년이 되는 날이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서울 덕수궁(당시 경운궁)에서 황제 즉위식을 갖고 제위에 올랐다.대한제국은 13년 만인 1910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한제국의 자취는 여전히 서울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11일 서울시 문화재과가 추천한 ‘도심 속 대한제국 건축기행 7선’을 소개한다.○ 독립문(사적 제32호·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1897년 10월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워졌다. 1979년 성산대로가 개설되면서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 최근 서울시가 서대문 독립공원을 재조성하기로 하면서 독립문을 원 위치로 복원하려고 했으나 비용과 복잡한 절차 등의 이유로 포기했다.○ 정동교회(사적 제256호·지하철 1, 2호선 시청역)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다. 1885년 제물포에 도착한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는 정동에 한옥을 한 채 구입해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다.그로부터 10여 년 후 이 자리에 세워진 건물이 바로 정동교회. 1895년 착공해 1896년 12월 26일 헌당식이 열렸다. 서재필 이승만 등 역사적 인물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봤다.○ 명동성당(사적 제258호·지하철 4호선 명동역)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교회당 건물로 한국 가톨릭의 상징이며 총본산이다. 1892년 공사를 시작해 1896년 5월 29일 축성식을 가졌다. 고딕양식 건물이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석재 대신 벽돌을 사용했다. 벽돌은 진흙땅이 있던 한강통 연와소(漢江通 煉瓦所)에서 조달했고 청나라의 벽돌공을 초빙해 만들었다.○ 환구단(사적 제157호·지하철 1, 2호선 시청역)1897년 10월 고종의 황제 즉위를 앞두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는
일본 의원,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
일본 의원,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ytn, 09.10.20)
고산 윤선도 사적 일부 친일재산 귀속
고산 윤선도 사적 일부 친일재산 귀속(연합뉴스, 09.10.19)
‘박치기’ 1ㆍ2편 日 이즈쓰 감독-연합뉴스(07.10.02)
<인터뷰> ‘박치기’ 1ㆍ2편 日 이즈쓰 감독 “현대 일본인은 과거를 잊어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자이니치(在日)’라 불리는 재일동포 2세들의 절망과 희망을 그린 영화 ‘박치기!’로 한국과 일본 관객을 동시에 놀라게 했던 일본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이 속편 ‘박치기 러브&피스’를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이즈쓰 감독은 일본에서는 ‘노래자랑'(1998), ‘빅 쇼'(1999), ‘겟 업!'(2003) 등 일상 속에서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대표적인 코디미 감독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그는 ‘박치기’ 1ㆍ2편에서는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청년들의 난투극을 통해 활극적인 요소를 마음껏 펼쳐 놓으면서도 재일동포들의 씻을 수 없는 한과 이들이 끊임없이 부딪혀 온 벽에 정면으로 도전한다.특히 2편에서는 재일동포 2세의 삶뿐 아니라 1편에서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 언급되는 데 그쳤던 전쟁과 재일동포 1세의 삶을 직접 화면에 담으면서 일본 역사상의 과오를 되돌아본다.이즈쓰 감독은 2일 서울 남산 힐튼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일본인들이 역사와 과거를 잊어버리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영화와 사회를 향한 시각을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치기!’를 만들기 전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은.▲고향이 오사카인데 어릴 때부터 자이니치들이 늘 가까이에 있는 곳, 일본인과 자이니치가 더불어 사는 곳에서 자라났다. 그들과 함께 자라나면서 왜 이 사람들은 이름이 두 개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박치기!’와 ‘박치기 러브&피스’는 일본에서 반응이 어떻게 달랐나▲’박치기!’는 일본 사회에서 오랜만에 자이니치와의 교류를 그린 영화다. 연애와 우정을 그린 청춘 영화다.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정도는 아니지만 반응이 좋았고 DVD가
미타니 히로시 교수 “성인들도 역사교육해야 합니다”-경향신문(07.10.09)
미타니 히로시 교수 “성인들도 역사교육해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본근대사 강의에 한국 학생 2~3명이 들어왔어요. 그 때 그들은 ‘한국 내 반일 감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들듯이 물었어요. 무척 당황했어요. 저는 사실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거든요.”9일 서울에서 열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한 도쿄대 미타니 히로시(三谷博·57)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대화를 위해서는 보통의 일본 성인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자신의 개인적 경험부터 얘기했다.“저는 도쿠가와 후기 시대 전공자로 주변국 역사에 무관심했고, 또 무지했어요. 대부분의 일본 국내사 전공자들이 그랬어요. 기껏해야 중국사 정도에 관심이 있었을까.”스스로를 평균적인 일본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학자라고 말하는 미타니 교수는 90년대 초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사)에게서 “우리 역사의 일부는 타국의 역사”라는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일본의 주변 지역에 대한 침략 유산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에는 동해를 조선해로,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한 지도가 실린 ‘교착상태에서 탈출-일본 개방의 결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영어로 출판하기도 했다.“그 동안 한국 학자들을 만났고, 내 생각들도 조금씩 수정해왔어요. 그러나 많은 분들이 강조하는 ‘공통의 역사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미타니 교수는 당초 이번 포럼 주최측으로부터 ‘중국, 일본, 한국 간 공통의 역사적 이해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발표를 요청받았다. 하지만 그는 ‘공통의 역사인식’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차라리 ‘다른 기억을 위한 공통 기반을 제공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 현실적이고 또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100년전 안중근 의거 현장 하얼빈
<르포> 100년전 안중근 의거 현장 하얼빈(연합뉴스, 09.10.19)
왜군 혼쭐낸 웅치·이치·진주성 전투
왜군 혼쭐낸 웅치·이치·진주성 전투(광주드림, 09.10.19)
[특별기고]한나라, ‘식민지근대화論’ 수용하는가-경향신문(07.10.12)
[특별기고]한나라, ‘식민지근대화論’ 수용하는가 ▶안병직 여의도연 이사장의 논리를 반박함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이하 존칭 생략)는 현재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 산하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다. 그는 한나라당의 이념과 정체성 확립에 깊이 관여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이다. 그가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으로 발탁된 것은 그의 지론인 ‘식민지근대화론’을 한나라당 지도부가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의 근대화와 자본주의화를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에 가져다 준 시혜적 선물이라고 보는 매우 민족비하적 역사해석이다. 이 이론은 통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마치 ‘학문적’인 것으로 비치지만, 극히 반민족적 사관의 산물이다. -민족비하적 역사 해석- 안병직은 젊은 시절 소위 ‘박근채 사단’의 일원이었다. 진보학자로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주장자였다. 필자도 그와 거의 비슷한 학문적 인장이었기에 인간적으로 가까이 지냈다. 필자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국사회경제학회 창립멤버였다. 진보정당에도 몸담았다. 그러던 그가 인본의 나까무라 사또루(中村 哲) 일본 교또대학 교수와 일본재단 지원으로 연구회를 같이하면서 이론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는 박정희 치하의 고도성장을 소위 ‘캣치엎이론’ 즉 ‘따라잡기이론’으로 설명하면서, 한국의 고도성장은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에 심어놓은 유산의 덕택이라는 이론(=식민지근대화론)을 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재단’을 이끌었다. 뉴라이트는 6·15 공동선언 파기를 주장하고 대북 교류협력과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김대중 노무현 전 현직 대통령을 ‘빨갱이’로 매도해 왔다. 뉴라이트는 한·미·일 안보체제를 극구 옹호하면서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김정일정권 타도 이외에 다른 어떤 대안도 없다는 주장을 편다. 이 이념은 반공주의와 탈민족적 사대주의와 실리추구제일주의의 혼합물이다.안병직은 일본 교수들과 연구회를 함께 하면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의 주역들과 역사인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독립운동가 심홍택 현충원 안장-한국일보(07.10.10)
독립운동가 심홍택 현충원 안장 일제시대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고 심홍택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이 11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에서 거행된다.고인은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광주학생사건에 관련해 검거된 자를 석방하고,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여하라’ 등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학교장과 총독부 학무국장에게 제출했다. 이어 교우들을 운동장에 집결시켜 ‘광주학생 만세’를 외치고 동맹휴교를 주동했다.고인은 1년여동안 옥고를 치른 뒤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고인은 수감 시절 얻은 지병으로 1959년 타계했다. 정부는 2002년 고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