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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성명] 역사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2019년 7월 3일 172

[성명] [다운로드] 역사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1. 박근혜 정부 시절에 진주교대 박용조 교수가 집필·연구 책임자 자격으로 개발한 《사회 6-1》 국정 교과서는 2016년 3월부터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박 교수는 언론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자신이 책임 개발한 국정 교과서의 내용을 ‘무단 수정’하였다고 비판하고, 자유한국당이 주관한 긴급 간담회까지 참석하여 대단한 피해자인 듯 돌출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 교수의 주장에 맞서 교육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정했다”는 입장을 내 놓았다. 교육부가 교과서 무단 수정 의혹을 제기한 박용조 교수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할 뜻을 밝혔으므로 진위여부는 향후 사법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본다. 2. 우리는 박용조 교수가 자신이 책임 개발한 사회 교과서 내용이 과연 헌법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박 교수가 책임 집필한 《사회 6-1》 교과서는 현장 적합도 검사를 위해 ‘실험본’ 형태로 2014년 2학기에 한 학기 동안 실제로 수업에 사용되었다. 당시 개발된 실험본 교과서는 2009교육과정과 헌법정신에 맞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르게 서술 되었다. 그러나 2016년 3월 발행한 최종본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되었다. 3. 박근혜 정부는 중등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위해 2015년 9월 공고한 2015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강제하였다.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던 박근혜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하였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제2차 ‘야스쿠니무단합사 철폐소송’ 판결에 대한 성명] 도쿄지방재판소의 부당판결을 규탄한다.

2019년 5월 28일 366

[제2차 ‘야스쿠니무단합사 철폐소송’ 판결에 대한 성명]  -도쿄지방재판소의 부당판결을 규탄한다. – 오늘 도쿄지방재판소는 일본 제국주의에 동원되어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 군인, 군속의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무단합사철폐 소송에서 원고청구 기각판결을 했다. 우리는 일본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또한 해방 74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희생자들이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전쟁범죄자들과 함께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1945년 8월 식민지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군인, 군속으로 끌려간 수 많은 조선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끌려간 사람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던 한국의 많은 유족들이 오늘날 까지도 가족의 생사에 대한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59년 부터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의 유족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식민지 조선인’들을 야스쿠니신사의 군신으로 합사해 왔다. 2006년 11월에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1959년 부터 1976년까지 6차례에 걸쳐 무단으로 합사한 한국인 사망자가 2만1000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1990년대 말에 들어서야 야스쿠니신사의 무단합사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의 유족들은 침략신사 야스쿠니에서 아버지, 남편, 오빠의 이름을 뺄 것을 요구하며 줄기차게 싸워왔다. 이번 판결은 2001년 6월의 재한군인군속 소송, 2007년 2월의 제1차 합사철회 소송에 이어 2013년 10월에 한국인 유족 27명이 합사철폐를 요구하며 제기한 제2차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아버지를 빼앗겨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한 원고들은 일본의 법정에서

[성명]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2019년 5월 9일 909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사 정립과 친일 청산의 열기가 드높은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 교육방송에서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촛불항쟁에서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호는, 3·1운동에서 주창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현된 ‘민주공화’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웅변하였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0년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칠가살(七可殺)’을 공표한 데 이어, 1941년 〈건국강령〉에 ‘적에 부화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와 피선거권이 없음’을 명기해 부역자들이 척결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정신을 이어 받아 해방 후 제헌헌법 101조에서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이 제정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출범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천명한 친일파 청산의 대의를 실천에 옮긴 첫걸음이었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독립한 나라가 거쳐야 할 선택의 여지없는 최소한의 과정이었으며, 전 민족적 지지를 받은 시대적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경찰을 동원 반민특위를 와해시킴으로써, 민중의 열망을 배신하고 민족의 죄인이 되는 것은 물론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올해로 ‘반민특위 습격 사건’ 70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가 크게 어긋나는 변곡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정작 반민특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공동성명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배상하라!

2018년 11월 29일 554

[공동성명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배상하라! 오늘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어 피폭 당한 피해자들이 2000.5.1. 부산지방법원에 제소한 손해배상소송과 10대의 어린 나이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강제노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 2012.10.24. 광주지방법원에 제소한 소송에 대해 최종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연한 결과다. 사람을 강제동원해 일을 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문명국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이 제소된 지 18년 6개월 만에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본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최초로 제소한 피폭 원고 다섯 분 모두 이미 고인이 되었다. 특히, “일본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학교에도 보내 준다.”는 말로 현혹해 10대 미성년 소녀들을 사지로 내 몬 근로정신대의 건은 중대한 전시 여성유린 사건이자, 반인도적 범죄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한국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사회적 편견과 소외 속에 이중의 고통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 고통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부끄럽지만 이러한 원인 중 하나에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 거래’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정권에 부화뇌동하여 3권 분립과 재판독립이라는 엄중한 헌법의 명령을 내던지고, 스스로 청와대를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자임하고 말았다. 해외에 파견하는 법관의 자리를 늘리는 것이 긴 세월 눈물로 기다려온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강조하지만 재판 거래는 법치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국기문란 행위이자, 사법부 스스로 정권의 시녀노릇을 자처한

[성명]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2018년 10월 31일 688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1. 판결의 경과와 ‘사법농단’ 이번 판결은 1997년 12월 24일 이번 사건의 원고 가운데 고 신천수씨와 고 여운택씨가 일본의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다음, 일본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에서 2003년 10월 9일 패소한 후, 2005년 2월 28일 서울지방법에 제기한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일본 소송이 있은 지 21년, 한국 소송이 있은 지 13년 만에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또한 해방이 되어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지 74년 만에 법적 판단을 받아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동안 원고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오늘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이 판결은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이에 따라 2013년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이 원고들에게 일부 승소 판결한 것에 대하여 피고 회사인 신일철주금주식회사(新日鐵住金주식회사, 이하 ‘신일철주금’으로 약칭한다)가 상고한 것에 대하여 5년 여 만에 선고를 한 것이다. 이 판결은 이렇게 수년 간 재상고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동안 최근 전 박근혜대통령, 청와대 비서실, 외교부를 한편으로 하고 대법원장과 대법원 행정처를 다른 편으로 하여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한, 이른바 ‘사법농단’, ‘불법 재판거래’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2. 이번 판결의 의미와 미해결된 강제동원 문제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여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게 되어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청구권협정에 의해

[성명] 남겨진 시간이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피해자에게 보상하라!

2018년 10월 30일 907

[성명] 남겨진 시간이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피해자에게 보상하라! 오늘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당한 전 징용공 피해자가 제소한 사건에서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신일철주금이 상고한 재판의 최종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 재판은 식민지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행한 강제노동(노예노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또한 전 징용공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법적 구제로 도모할 것인가, 즉 식민지지배로 침해된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할 것인가를 묻는 재판이었습니다. 이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 등의 양자협약에 의해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되는가 하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개인의 권리 문제를 묻는 중요한 재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전면적으로 환영합니다. 신일철주금은 즉각 판결에 따라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제소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구제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동안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판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강제노동 문제의 전면적 해결을 위한 대책을 실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러나 너무 뒤늦은 판결입니다. 재판의 원고 가운데 여운택, 신천수 두 사람은 1997년에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뒤 사법에 의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의 판결을 받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원고인 여운택 씨는 “일본제철에서 일한 경험은 그것이 힘든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 내 삶의 일부이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시기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대가를 꼭 인정해 주었으면

[논평] 교육부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가?

2018년 8월 7일 412

[논평] [다운로드] 교육부는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가? 1. 우리는 지난 5월 3일 성명(제목: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을 발표하여 새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7월 27일 최종 고시된 교육과정은 헌법 전문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추가하였다.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 the principles of freedom and democracy)’를 의미한다.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옹호했던 수구 세력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협소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로 견강부회하는 상황에 비춰볼 때, 교육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교육과정에 불쑥 추가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여전히 수구·냉전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절차상 하자도 되풀이 하였다. 새 역사과 교육과정은 개발과정에서 역사교육 현장의 의견 수렴, 수많은 전문가 그룹의 자문과 공청회를 거치며 시안이 마련되었고, 행정예고 직전에 역사교육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행정 예고 기간에 수렴된 의견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교육과정 개발진과 심의위원회의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된 교육과정을 일방적으로 고시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논평]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2018년 6월 8일 670

[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에 부쳐- 1. 오늘(8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 및 백서 발간에 맞추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이자 ‘교육의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역사교육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화 추진이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교육부장관으로서 “정부 과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새로이 되새기며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2. 지난 3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발표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 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국정화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작당하여 자행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발표문을 접하고, 교육부가 과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헌법을 유린한 중차대한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심각한 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고·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에서 배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한 다음,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하여 추진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가)편찬기준

[성명] 피해자들을 통한 속에 돌아가시게 만든 사법부, 법복을 벗어라

2018년 5월 29일 760

피해자들을 통한 속에 돌아가시게 만든 사법부, 법복을 벗어라 지난 5월 25일 발표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보고서를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법관의 독립을 지켜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헌법을 위반하고 청와대와 행정부와 담합하여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의에의 호소’를 무참하게 짓밟았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특조단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설치하기 위하여 청와대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개인별 맞춤형 접촉, 설득 방안”을 수립하고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에 있다고 파악하면서 특히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사건(대법원 2013[보고서엔 20013으로 되어있음]다61381, 2013다67587)에 대하여 청구기각취지의 파기환송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문건을 작성하였다. 이 문건에 따라 해당 재판부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압력이 행사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판결을 청와대와의 정략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한일 우호관계의 복원”이라는 모호한 명분으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희생시켰음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 통탄과 분노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 문건이 언급하는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사건”이란 것은 해방 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들이 각각 2000년과 2005년에 한국법원에 제기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들에서 대법원은 획기적인 2012년 판결을 통하여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이라고 하고, 이 사건들에 선행하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법원의 판결들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논평]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2018년 5월 3일 642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1.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을 공개하면서,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결과, 역사학계의 중론 등을 고려하고,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실시 등을 거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최종 확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화 전도사’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초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썼던 용어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새 집필 기준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로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다. 그 해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요청함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절차도 무시하였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 도덕(윤리), 정치, 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유독 역사과목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