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새책소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바로가기 >>>☞ [도서구매] 〈주요내용〉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식민지 비망록』 (전3권) 일제가 패망하여 이 땅에서 물러간 지 벌써 8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제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해방의 감격이 쉽게 잊힐 리야 없겠지만, 그만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그 시절을 몸소 체험한 세대의 인구구성비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바꿔 말하면 일제강점기의 일을 기억하는 방법이 그야말로 오롯이 간접체험이나 사료발굴에만 의존해야 하는 비율이 그만큼 더 높아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탓인지 일제강점기의 일이라고 하면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마치 남의 집 얘기인 듯 여기는 이들도 더러 있고, 일제침탈사와 관련한 잘못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짚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그것이 일제잔재에 속하는 줄도 모르고 그러한 용어나 제도를 버젓이 사용하기도 하고, 설령 그것이 일제가 남겨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서둘러 이를 바로잡지 않는 상황이 무심코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번에 『식민지 비망록』(전3권)이라는 이름으로 펴내는 이 책들은 부제(副題)에 밝혀놓았듯이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각권 24꼭지씩 도합 72꼭지(1,053쪽 분량)에 달하는 각각의 글은 컴컴한 망각의 문 안에 갇혀 있는 아스라한 기억 한 조각을 되살려 보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고단했던 식민지의 일상, 혹독했던 전시체제기와 침략전쟁의 광풍, 그리고 이 땅에서 무수하게 벌어졌던 별스러운 일제침탈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 실상을
[보도자료]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문제 많다 –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보도자료] [다운로드] [사진 원본] [다운로드] “이런 교과서가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나?” 민족문제연구소, 학계·교육계 전문가들과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집중 분석 사실 오류 등 수백 건, 교과서로 사용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 미달 Ⅰ. 검토 경위와 결론 1. 민족문제연구소는 학계 전문가와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현직 역사 교사 13명에게 의뢰해, 최근 친일·독재 미화와 일본군‘위안부’ 서술 축소 등 편향적 서술과 자격 요건 조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발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긴급 예비 검증을 실시했다. 문제가 된 이 교과서는 지난 8월 30일 교육부 검정을 최종 통과한 9종 가운데 하나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반영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교과서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3일간에 이루어진 긴급 검증만으로도 날림·불량 교과서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사태의 심각함을 강조했다. 3. 민족문제연구소가 전문가들의 1차 검증 의견을 취합한 결과, 우선 전반적인 시각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사실관계에서도 무려 300여 건이 넘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핏 보면 집필 기준에 따른 무난한 서술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드러난 실상은 참담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이다.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음력과 양력 표기 오류, 명백한 오타 등이
[보도자료]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
[보도자료] [다운로드] [자료집] [다운로드]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진 경술국치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는 물론 중국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의 해외동포 사회에서도 망국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국치일 추념식을 거행하였다. 국내에서는 곳곳에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격문이 나붙었으며, 감옥의 독립투사들은 집단 단식으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해외의 동포들은 대대적인 항일행사를 열고 이날 하루 단식으로 독립의 결의를 다졌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치일을 추념하는 국가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달력에 ‘국치일’이 표시되는 정도였다. 부끄러운 역사인 ‘국치’를 기억하기보다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일을 잊지 않아야 훗날의 가르침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는 의미에서 을사늑약 체결지인 중명전 복원 추진(2004년), 강제병합조약 체결지인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 표석 건립(2010년), 국치일에 조기 게양 조례 제정 추진(2013년), 국치 관련 항일음악 발굴(2017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2018년)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경술국치 114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8월 29일(목) 오후 2시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서울 중구 예장동 옛 통감관저 터에서 ‘경술국치 114년 기억 행사’를 개최한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날 기억 행사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의 기념사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친일 7대 죄악’ 발표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각 정당 의원들이 국치일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 독립영웅 치우기 △ 친일·친독재 우상화 △ 강제동원 정부 해법과
[보도자료]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
[보도자료] [다운로드]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 윤석열 정부가 집권 이래 강제동원 제3자해법안을 강행하고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사실상 동의하는 등 대일 굴욕외교를 지속하는 가운데, 역사·교육 관련 기관장을 모조리 뉴라이트 식민지근대화론자들로 채운 것도 모자라 독립정신의 상징기관인 독립기념관에 조차 자격미달의 친일·친독재 관장을 임명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독립운동단체와 제 정당·시민사회단체들은 윤석열 정부의 사대매국 외교와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 참가를 거부하고,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이름으로 15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효창원 삼의사 묘역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 기념식에는 약 1,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세웅 신부가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기념사를 하고,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는 각 정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규탄 발언을 이어갈 예정이다. 함세웅 신부는 미리 배포된 ‘제2의 역사쿠데타를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기념사에서 윤석열 정권을 “제 나라도 제 민족도 안중에 없는 사대매국 집단이요, 국민을 기만하는 사익 추구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국가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친일·친독재 세력이 기고만장하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어, 이들의 전횡을 더 이상 방관하면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참가자들은 기념식을 마친 뒤, 오후 3시부터는 효창원에서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까지 약 3km 구간을 행진한다. 주최 측은 “이날 기념식과 행진에서 ‘친일 관장 임명 철회! 매국 정권 규탄한다!’를 중심 구호로 채택해, 김형석 관장 임명 철회를 강하게 촉구할
[보도자료] 소년 이봉창이 다닌 문창학교 위치 확인
[보도자료] [다운로드] 소년 이봉창이 다닌 사립문창학교의 소재지 최초 확인 청파동 골목길 안쪽의 미용실 자리(청파동 2가 5번지)가 바로 그곳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 경시청 앞에서 폭탄투척의거를 일으키고 순국한 이봉창 의사(李奉昌 義士, 1901~1932)가 소년시절에 다녔던 사립문창학교(私立文昌學校)의 정확한 소재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곳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홍병기(洪秉箕, 1869~1949) 선생이 교장(校長)으로 있던 학교였으며, 애국지사 신숙(申肅, 1885~1967) 선생 역시 설립 초기에 학감과 교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로도 주목이 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용산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활동유적지의 현황과 관련사료를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서 사립문창학교의 소재지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내용을 새롭게 발굴하였다고 밝혔다. 『경성번창기(京城繁昌記)』(1915)에 수록된 「사립일반학교 일람표」에 따르면, 이 학교의 소재지 주소가 바로 ‘청엽정 2정목(靑葉町 二丁目, 지금의 청파동 2가) 5번지’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12년 9월에 작성된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국가기록원 소장자료)를 보더라도, 208평(坪) 규모에 달하는 이곳 대지의 소유자가 나중에 손병희에게서 천도교 교주의 직임을 물려받는 박인호(朴寅浩, 북부 가회방 재동)로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관계는 이 학교가 1910년대에 천도교에서 인계하여 운영했던 각종 학교의 한 곳이었다는 점과 그대로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 학교는 최초에 사립광성학교(私立廣成學校; 공덕리 소재)의 지교(支校)로 만들어졌다가 이내 이를 확장하여 1909년 2월 4일에 정식설립인가(설립자 이순하)를 받아 4년제 초등과정으로 개편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무렵에 나온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관련기사들에는 이 학교의 위치가 원래 청파 하마비동(靑坡 下馬碑洞, 지금의 효창동과 원효로 1가에 걸친 지역)에
[보도자료]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 개막
[보도자료] [다운로드]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 개막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재단법인 역사와책임 기간 : 8월 2일(금)~12월 29일(일)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근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개의 전쟁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재단법인 역사와책임이 공동주최하는 기획전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은 조선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두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재해석을 담고 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근대 동아시아의 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음은 물론,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까지 가져온 세계사의 중대 사건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조선은 식민지로 청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서가 열렸으며, 제정 러시아는 급격하게 몰락의 길로 들어선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양대 전쟁은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 막대한 물적·인적 손실을 끼쳤으며, 조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청국, 러시아라는 대국과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를 계기로 천황제 군국주의를 확고히 하고, 1945년 패망할 때까지 반세기간 지속적으로 침략전쟁을 확산시켜나갔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조선은 주체가 아니었으나 가장 큰 피해를 당하며 궁극에는 국권상실이라는 비극적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반도를 둘러싼 두 개의 전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타자가 아닌 우리의 인식’ 속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보도자료]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시민들의 영상 메시지로 호소
[보도자료] [다운로드]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대사에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시민들의 영상 메시지로 호소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7월 21일부터 열리고 있으며, 오는 27일 이 회의에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에 대해 “전체 역사를 현장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해 시설·설비 등을 갖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전체 역사에는 당연히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바라는 시민들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모여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국 대사에게 보낼 영상 메시지를 제작했습니다. □ 시민들이 직접 호소하는 메시지에는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전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차별과 전쟁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사도광산이 한국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기를 바란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시민들이 제작한 영상 메시지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각 대사에게 오늘(26일) 발송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이 사도광산을 비롯한 세계유산에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붙임 1. 영상 메시지. 끝. □ 호소문 원문 바로보기 [영상메세지] [바로보기]
[보도자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 위원국에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호소문 발송
[보도자료] [다운로드]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인도) 21개 위원국에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호소문 한일시민공동조사보고서 발송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지난 7월 21일부터 인도 뉴델리에서는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일본의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논의될 예정입니다. □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에 1,5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 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현장입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해를 은폐한 채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2015년 메이지산업혁명유산 등재 당시부터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에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7월 25일 사도광산 등재를 결정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에 진상규명 조사를 통해 확인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호소문을 발송했습니다. 피해자 유족들은 호소문에서 사도광산 강제노동 피해자인 아버지의 피와 땀과 눈물을 세계유산에 기록해 줄 것을 절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 아울러 세계유산위원회 21개국에 함께 발송한 한일시민공동조사보고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는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결코 감출 수 없는 역사의 진실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사도광산이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도록 세계유산위원회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을 기대합니다. <붙임> 1. Letter to World Heritage Committee from Center for Historical Truth and Justice 2.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호소문 3. Appeal to UNESCO WHC from the Bereaved Families of Sado Mine Forced
[보도자료] 평화·민주·인권을 향한 작은박물관 다자간 업무협약(MOU) 체결식 취재 요청
[보도자료] [다운로드] 평화·민주·인권을 향한 작은박물관 다자간 업무협약(MOU) 체결식 2024. 6. 18(화) 오전 11:00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오늘 우리는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평화와 민주, 인권의 가치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 근현대사기념관, 김근태기념도서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종철센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이한열기념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시민들의 힘으로 쟁취한 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이어받아 설립된 박물관(기념관)으로 시민이 함께 평화‧민주‧인권을 실현하는 공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 평화·민주·인권의 가치가 위협받는 지금, 작은박물관들이 처음으로 손을 잡고 이 가치들을 올곧게 세우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널리 만나고자 합니다. 국내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시도는 세계평화박물관네트워크(INMP: INTERNATIONAL NETWORK OF MUSEUMS FOR PEACE) 사례처럼 박물관네트워크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작은박물관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첫걸음으로 2024년 6월 18일(화) 오전 11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작은박물관 다자간 업무협약(MOU) 체결식을 엽니다. □ 작은박물관은 앞으로 일상적인 활동을 공유하고 교류할 것입니다. 역사·인권·민주·노동·평화·통일 등 각 박물관이 기획하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와 답사‧교육 프로그램을 공유하여 시민들이 역사의식을 확장하고, 민주·인권의 가치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함께 마련할 것입니다. □ 첫 사업으로는 ‘작은박물관 스탬프투어’를 시작하며 ‘시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스탬프북을 선보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다양한 시민들이 작은박물관의 활동에 참여하여, 자신들이 만들고 가꿔온 평화·민주·인권을 지키고, 더 크게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 사회가 시민들이
[보도자료] 윤석열·기시다 한일 정상회담 규탄행동 (5.26)
[보도자료] [바로가기]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보도자료 수신: 각 언론사 정치, 사회, NGO 담당 기자 문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사무국장 정은주 010-9458-9439 배포: 2024년 5월 26일(일) 윤석열-기시다 한일 정상회담 규탄행동 2024년 5월 26일(일) 16시, 용산 대통령실 앞(전쟁기념관 앞)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협정 60년,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논의될 것으로 예상 대일 굴종외교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할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안봐도 굴욕적 정의롭고 평화로운 한일관계 원하는 시민들 규탄행동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등 직접 참석 오늘 5월 26일(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한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합니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작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를 굴욕적으로 해결해 한일 정상회담을 구걸한 후 약 1년만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라인야후’ 사태, 그리고 내년 한일협정 60년을 맞아 발표할 새로운 한일관계 선언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해법 ‘제3자 변제’부터 시작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용인, 독도 침탈 야욕 묵인, 일본의 사도광산 역사왜곡 소극적 대응, 최근에는 ‘라인야후’까지 대일 굴욕외교, 굴종외교로 일관해왔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로 한국은 역사, 영토, 기업까지 일본에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권은 ‘한일 간 셔틀 외교 복원’을 성과로 내세워왔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일방적 대일 퍼주기’와 ‘국민적 굴욕감’뿐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올해에만 독도,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