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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주를 인양하라’ 광주서 5·18 35주년 전야제
【광주=뉴시스】구용희 기자 = 5·18 민주화운동 35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5·18 전야제가 막을 올린다. 제35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과 금남로 등지에서 35주년 전야제가 펼쳐진다. ‘민주를 인양하라! 통일을 노래하라!’ 라는 주제의 전야제는 1부 80년 오월의 함성, 2부 결전의 그날, 3부 쓰러진 오월 쓰러진 대한민국, 4부 민주를 인양하라 통일을 노래하라, 5부 임을 위한 행진곡 대합창 등 각 부에 맞는 소주제로 나뉘어 진행된다. 특히 4부에서는 지난해 4·16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의 국민적 아픔과 80년 5·18의 만남을 주제로 한 공연이 무대 위에 오른다. 본격적 행사에 앞서 금남로 일대에서는 ‘오월·민주·인권·통일·환경’을 주제로 한 소통의 마당 ‘시민 난장’이 벌어진다. 이 자리에는 5월 골목길·인권담벼락·세월호 아이들의 방·사적지 사진전 등의 미술전시와 함께 광주트라우마센터·광주인권영화제·민주노총쌍용자동차·참교육학부모회·광주여성회·민족문제연구소 등 36개의 체험부스도 설치됐다. 체험부스중에는 ‘네팔 그리고 안산의 친구들을 위한 힘모아 기금 마련 카페’ ‘네팔을 돕는 핫바의 기적’ ‘비정규직 무료노동상담’ ‘5월 심리치유 이동센터’ ‘영상으로 본 오월에서 세월까지’ ‘광복 70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외침’ 등의 공간도 마련됐다. 같은 날 오후 4시30분부터 금남로공원에서는 광주시민대성회 ‘오월의 약속’이, 오후 6시에는 시도민과 함께하는 민주대행진과 오월 풍물굿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전야제는 여전히 슬픔과 아픔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과 위기의 민주주의를 광주시민 대동의 힘으로 다시 열어가는 한편 민중의 아픔을 오월정신으로 보듬어 안자는 취지와 함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승만 저격사건
‘범인은 62살 유시태, 선동은 69살 국회의원 김시현….’ 최근 1952년 6월25일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 암살시도 사건의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공개됐다. 6·25 2주년을 맞아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연설 중이던 대통령의 뒤에서 유시태가 총을 겨누기 직전의 사진이었다. 사건은 권총 불발로 미수에 그쳤다. 의열단 출신의 독립투사 두 사람이 벌인 저격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호호백발의 두 노인은 왜 이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 “괴뢰의 도발이 예상됐는데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살자고 도망갔으며,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한 국민방위군 같은 사건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김시현(사진)은 8월22일 열린 공판에서 “이 대통령은 할복자살하기 전에는 대중의 원한을 풀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했다. 김시현·유시태 두 사람은 불의를 보면 먼저 권총을 빼드는 ‘뼛속까지 의열단원들’이었다. 의열단은 일제관공서 파괴와 요인 암살과 같은 폭력투쟁을 독립운동의 노선으로 삼은 무장독립단체였다. 김시현은 폭탄제조와 밀정처단 등으로 6차례에 걸쳐 15년간 옥고를 치렀다. 유시태 역시 의열단 군자금을 모으려다가 7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광복·전쟁을 거치면서 백발로 변했지만 의열단 기질은 여전했다. 김시현은 1951년 10월부터 “그 자(대통령)는 해외에 있을 때부터 파벌을 조성하고 사욕에 치우쳤다”면서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유시태는 그런 김시현의 제안에 “내가 하겠다”고 자처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의 피란정국은 큰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 대통령은 간선제로는 임기를 연장할 수 없다고 보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땃벌대와 백골단 같은 깡패조직을 동원한 대통령은
[논쟁으로 읽는 70년](6) 해방전후사 해석 논쟁
ㆍ‘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 하나의 역사, 서로 다른 기억 ▲ 해방 전후 역사 해석·복원 민중·민족 관점 중심으로 새 접근법 제시한 ‘인식’ ▲ 2006년 출간된 ‘재인식’ 민족 지상주의 폐해 우려 정치 상황 맞물려 ‘시끌’ ▲ “인식, 낡은 역사관에 묶여 재인식, 좌우 대립에 편승” 198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이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한 시기였다. 대학원을 졸업한 소장 연구자들이 기성 진보적 학자들과 함께 사회구성체 논쟁을 벌임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냉전분단체제 아래서 위축된 진보적 인문·사회과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가운데 한 축을 이룬 것은 해방 전후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전 6권으로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은 바로 이러한 연구들이 집약돼 있다. 이 시리즈의 필자들로는 고(故) 박현채(조선대 교수·경제학),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역사학),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등 당시 진보를 대표하는 중견 학자들부터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정해구(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등 패기만만했던 소장 연구자들을 망라했다. 고 박현채 조선대 교수·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부터) ■ <인식> 대 <재인식>의 논쟁 <인식>에 참여한 학자와 연구자들 사이의 견해가 늘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복·미군정·정부수립·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변동을 분단체제의 형성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 과정 속에 냉전의 구조화라는 국제적 상황은 물론, 좌우합작·농민운동·노동운동 등의 국내적 변동을 ‘민중적·민족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분석하고자 했다. 민중적·민족적 관점이란 지배계급과 외세에 맞서는 ‘민중’과 ‘민족’을 중시하는 진보적 역사관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해방 8년사(1945~1953) 한국 현대사야말로 세계질서
만인산 태봉 자락 ‘자주통일비’ 아세요?
17일 오전 11시 건립 13주년 기념식 통일운동에 한 생을 던진 정효순(90, 대전광역시 서구) 범민련 고문이 개인 재산을 털어 세운 ‘민족자주통일비'(아래 자주 통일비)가 통일운동의 산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충남지역 시민통일운동단체로 구성된 ‘자주통일비 보존위원회’는 오는 17일 오전 11시 충남 금산에 건립된 자주통일비 앞에서 자주통일비 건립 13주년 기념식을 한다고 14일 밝혔다. 정 고문은 지난 2003년 5월, 중부대학 뒷산인 만인산 태봉 자락에 ‘자주통일비'(높이 220㎝, 너비 80㎝, 기단 90㎝)를 세웠다. 앞면에는 ‘민족자주통일비’를 음각하고, 뒤에는 ‘7·4 남북공동성명 중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남북공동선언문 중 5개 항’을 새겼다. 이후 지역통일단체들은 이곳을 통일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매년 5월 이곳에 모여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통일을 위해 할 일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자주통일비 보존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주통일비 관리를 비롯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 통일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정 고문의 통일운동 삶을 구술 정리한 <통일 어머니의 설풍행려>(정리 안재성, 문화의 힘)를 출판했다(관련기사 : 죽은 엄마 등에서 울던 아기, 통일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보존위원회에는 우리겨레하나되기대전충남운동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대전충남연합,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연기사랑청년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장은 “조국통일 3대 원칙 등이 자세히 새겨져 있는 자주통일비는 인근 태봉과 함께 지역의 좋은 통일 교육장”이라며 “정 고문을 모시고 통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많은 분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당일 중부대학교 정문으로 오면 자주통일비로 향하는 안내판이 마련돼
첫 강의 열려
이상의 교수 강의 이어 5월 27일엔 박한용 교수 강의 이어져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민주평화초심연대, 민변 인천지부, 인천노사모,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인천행동하는양심, 민주노총 인천본부 통일위원회 등이 공동주최하고 ‘광복과 분단 70년맞이 인천사업추진위원회’가 후원하는 <해방 70년, 분단 70년 바로보기 역사교실>이 지난 5월 13일 부평아트센터에서 첫 강의를 열고 6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첫 강의를 맡은 인천대 이상의 기초교육원 초빙교수는 ‘해방, 분단, 두 개의 국가’를 주제로 ▲해방 후 38선 설정과 미.소군정청 ▲모스크바삼상회의와 좌우의 대립 ▲남북 분단정부의 수립과 전쟁에 대해 해방이후 전쟁까지의 상황을 시민들에게 설명했다. <해방 70년, 분단 70년 바로보기 역사교실>는 5월 27일(수) 오후 7시에 부평아트센터에서 박한용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해방정국과 친일파’라는 주제로 두번째 강의를 할 예정이다. <2015-05-14> 인천in.com ☞기사원문: <해방 70년, 분단 70년 바로보기 역사교실> 첫 강의 열려
“근현대사 비중 축소, 역사교육 장악·통제 의도”
박한용 실장 “독재 문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 【팩트TV】 201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기존 50%에서 40% 로 줄어드는데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친일·독재 등을 미화한 교학사 역사교과서와 국정화 논란 이후에 또다시 현 집권세력이 역사전쟁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13일 “전체적으로 정치적 의도성이 강하고, 국가 역사 교육 장악과 통제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이날 오전 CBS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근현대사에서 불리한 내용들이 많다. 근현대사들을 자기네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줄여서라도 감축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8년에도 MB정부는 다수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교과서’라면서 저자에게 수정명령을 지시하기도 했다. (사진출처-YTN 뉴스영상 캡쳐) “친일했던 사람이 건국 주역 된다는 논리도 정당하게 만들어주려는 것” 박 실장은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는 현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보편성을 이어 받은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좌우 투쟁 속에서 찾는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건국절을 제정하려고 하지 않았냐”면서 “이렇게 하면서 대한민국의 동맹 등이나 임시정부를 보편성과 분리시켰던 것이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나 뉴라이트 파동이었다.”며 뉴라이트와 현 정부 세력의 역사왜곡 시도를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교과서 개정시안도 많은 학자들과 독립운동가, 유족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학습분량을 핑계대고, 이념논쟁으로 몰아가면서 독립운동을 축소시키고 임시정부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독립을 통해서 이룬
애국지사 기념물 바로 옆에 친일파 기념물
ㆍ일제 찬양한 주요한 시비, 세종로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 곁에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 공원 안쪽에 조선어학회 한글수호 기념탑이 서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희생된 애국선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탑에는 1942년 10월 조선어 사전을 펴내려 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33인의 이름과 한글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투쟁기가 적혀 있다. 기념탑 비문에 따르면 33인 중 2명은 옥사했고, 이극로 등 5명은 모진 고문을 받다가 해방이 되고 난 이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탑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시인이자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지낸 주요한의 시비가 서 있다. 한글학회에 따르면 현재의 조선어학회 기념탑 자리에 원래는 주요한 시비가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평범한 기념탑으로도 보인다. 앞면에는 주요한의 ‘빗소리’란 시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그의 생애가 간략히 적혀 있다. 문제는 주요한이 일제 강점기 시절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라는 이름으로 일제를 찬양하던 친일 시인이었다는 점이다. 애국지사의 기념물 바로 옆에 친일파의 기념물이 서 있다.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 공원에 위치한 주요한 시비의 뒷면.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 백철 기자 백선엽·김성수 등 4명 보훈처가 관리 일제 강점기 초기 주요한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뒤 친일파로 전향했다. 1942년 1월 발표한 ‘명기하라 12월 8일’은 1941년 12월 8일(일본 시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것을
제노사이드 진실을 좇는 사람들
“종교·인종청소 광기의 역사, 진실과 마주해야 상처 치유” “악을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은 상처를 지혈하지 않고 계속 피 흘리게 하는 것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기 특별미사에서 참혹한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세기는 ‘학살의 100년’이었다. 1915∼1923년 오스만 제국(터키의 전신)에 의해 아르메니아인 최대 150만명이 떼죽음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1940∼1945년 제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이 약 600만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홀로코스트, 1994년 르완다 후투족이 경쟁관계의 투치족을 최대 100만명 학살한 사건 등 광기 어린 집단 살육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역사학자 라파엘 렘킨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라는 용어를 만들 정도였다. 터키 아르메니아계를 대변하는 아고스지를 창간한 흐란트 딘크(왼쪽). 그의 조카인 마랄 딘크 아고스 기자. /슈피겔 제공 이에 유엔은 1948년 ‘민족, 인종, 종교, 국가 등 특정집단을 겨냥한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학살행위를 금지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는 계속됐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은 1980년대 18만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살해했고 1990년대 유럽 발칸반도를 휩쓴 민족·종교 갈등에 따른 무력충돌로 20만여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금세기도 지난 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에선 이슬람국가(IS)의 타 종파·종교인 학살이 자행되고 미국에선 흑백 갈등, 유럽·아프리카에선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큰소리치는 가해자, 침묵 강요받는 피해자 교황이 꼽은 3대 제노사이드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세상과 후대에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은 “지난 상처를 괜히 헤집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와 “증거를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그림자, 그리고 야스쿠니의 망령
베를린서 한·일·독 정치인·학자·시민단체 종전기념 大토론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그들은 꼬박 열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흐트러짐 없이 군국주의 파시즘과 나치즘의 광기 어린 과거사와 마주하면서다. 그 과거는 오늘의 일본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로 향하는 독일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너울이다. 독일 신사회미술협회(nGbK) 주최로 베를린에 있는 이 단체 건물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세미나 주제는 ‘야스쿠니 신사의 독일 참나무’였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 일본, 독일의 정치인, 학자, 비정부기구(NGO) 활동가와 교포 등 청중 90여 명에게도 낯선 타이틀이었다. 범상치 않은 이 제목은 1970년 당시 요한네스 슈타인호프 독일 공군 중장이 선물한 야스쿠니 경내 식수에서 연원했다. 독일 해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서 야스쿠니의 은행나무 묘목 세 그루를 가져와 킬 군항의 높이 85m 위령탑 옆에 심었고, 그 답례로 참나무를 일본에 줬다. 나치에 앞장서 충성하고도 전후에 출세를 거듭한 장성이 선물한 나무가 야스쿠니 안에 심어진 것이다.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이희자 대표 (베를린=연합뉴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이야기는 이날 토론회의 부제 ‘종전 70주년 그리고 동아시아와 유럽의 끝나지 않은 과거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 예화를 들려준 즈시 미노루 ‘야스쿠니 불행에 저항하는 평화의 빛’ 공동대표는 작년 8월 15일 야스쿠니 경내에 전쟁 시기 나치 군복 차림으로 하켄크로이츠(나치 상징) 깃발을 든 일본인 코스플레이어가 등장한 사실도 꺼냈다. “나치를 위령하러 왔다”고 한 그를 야스쿠니신사는 쫓아내지 않았다는 점에 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