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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집념의 민중사학자, 서울에 녹두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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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앉은 모습의 동상, 민중 지도자의 모습 담아
“박정희 이긴 전봉준, 새로운 시대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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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자주를 위협하는 외세와 반인권적 봉건지배에 서슴없이 맞서 싸운 아프고도 귀중한 역사가 있다. 원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어난 민중이야말로 한국사의 진정한 주역’이라는 민중적 접근을 통해 지난 반세기에 걸쳐 한국사의 대중화라는 큰 공적을 이뤄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과 그 지도자 전봉준의 재평가와 대중화를 위해 뜻 있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헌신한 끝에 지난달 서울 거리에 전봉준의 동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그의 ‘역사사랑방’을 찾아 그 과정과 의미를 되짚어봤다.


동상이 건립되기까지

이이화 선생은 지난 1987년 서중석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변호사) 등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조직한 사람 중 한명이다. 이미 이때부터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선생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측의 전봉준 동상 건립을 위한 행정적 지원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남산에 가면 안중근과 김구가 있고, 광화문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이 있지요. 그런데 민중운동을 상징하는 전봉준은 지금까지 외면 받아 왔어요. 아직까지도 ‘전봉준이 뭐 하던 사람이냐’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대중화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 선생은 지난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후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의 대중화를 위해 서울의 거리에 동상을 세우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지만, 기금 조성과 심의 허가 등의 난관에 봉착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16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업부장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며 일은 급속도로 추진됐다.

“동상을 세우기로 한 종로1가 사거리는 사유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영풍문고 앞 옛 전옥서 터 일부는 유일하게 시유지로 남아있었어요. ‘시장’ 박원순에 이어 우리로서는 큰 행운이었죠.”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행정적 지원을 약속 받은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지난 2017년 봄부터 국민성금을 모금, 불과 1년 만에 2억7,000만원을 모아 지난달 동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왜 처형 장소에, 왜 앉은 자세인가

그는 왜 동상을 전봉준이 처형된 장소에 만들기로 했을까. 이 선생은 압송된 전봉준이 처형의 순간까지 보인 기개와 자주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한다.

“전봉준은 이순신 못지않게, 어쩌면 훨씬 더 장렬한 죽음을 맞은 셈이에요. 인권과 민족 자주를 위해 반봉건·반외세와 싸웠을 뿐 아니라, 본인의 목숨을 부지할 기회가 있었던 수감기간에도 온갖 고문과 회유를 견뎌냈어요. 뜻을 굽히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종로네거리에 내 피를 뿌리라’고 말했죠. 이 죽음은 아주 특별한 것이고 우리는 그 의미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동상’은 당당하고 곧게 선 모습으로 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의 녹두장군은 한손으로 바닥을 짚고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다리를 다쳐 가마를 타고 이송되던 전봉준의 모습이 담긴 사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한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옆구리엔 ‘민족중흥’이라고 쓰인 책을 끼고…(전봉준 동상과 같은 날 심의 대상에 올랐던 박정희 동상의 모습). 혹은 장군들은 칼을 차고 멋있게 서 있죠. 하지만 전봉준에겐 민중적으로 접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그 상황에도 ‘어, 밥은 먹었어?’하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듯 친근한 모습이 그대로 담겼죠. 그러면서도 그 형형한 눈빛은 살리려고 했습니다.”

떠받드는 전봉준이 아닌, 민중 속의 전봉준을 만들기 위해 동상건립위원회는 작가를 제한공모로 선정했다.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고 국민 모금을 통해 동상을 만든 배경엔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자’는 의도도 녹아 있었다.

“전봉준이 박정희를 이겼다”

지난 3월 21일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전봉준과 박정희의 동상 건립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울에 세워야하는 이유’가 잘 담긴 전봉준의 동상과 다르게 박정희의 동상은 역사적 고증과 평가를 다시 받아오라며 심의가 반려됐다.

“전봉준이 박정희를 이겨버렸어요.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뒤에는 청와대가 있으니, 그 공로를 인정한다면 주장대로 박정희의 동상을 광화문에 못 세울 것도 없죠. 하지만 박정희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명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이건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 선생은 동상건립 추진보다 약 반년 가량 앞서 전봉준의 이름과 얼굴을 걸고 청와대로 향해 촛불을 들었던 농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해의 촛불이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시작돼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며 이어졌다며 근대 한국사의 ‘5대 혁명’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마침 이번 전봉준 동상의 심의 과정이 이를 인정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며 활짝 웃었다.

<2018-05-04> 한국농정신문

☞기사원문: 인터뷰ㅣ집념의 민중사학자, 서울에 녹두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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