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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시간이 없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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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근로정신대 강제 동원 피해자 김정주씨(85)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김씨는 일본 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국과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원고 가운데 한 명이다. 최미랑 기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을 촉구합니다. 한국 대법원은 5년 전에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기업에게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수 건의 후속 재판에서도 대법원의 판단 취지를 받아들여 원고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 없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지연되고 있어 피해자들의 피해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대법원은 하루 빨리 최종 확정판결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1944년 일본 군수업체 후지코시에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씨(87)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30일 강제동원 관련 기업 소송 원고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등 한·일 시민단체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판결을 주저하는 사이 강제동원 피해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대법원에 관련 사건 확정판결을 조속히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최초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냈다. 그간 한·일 양국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소송에서 ‘1965년 양국 정부 간에 한·일청구권협정이 이뤄져 개인에게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만 계속 나오다 한국 대법원이 처음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앞서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신일철주금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고, 2009년 7월 서울고법도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자 결과는 바뀌었다. 2013년 7월 서울고법은 신일철주금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1명당 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냈다.

그러나 신일철주금은 아직 배상을 이행하지 않았다. 신일철주금이 재상고한 뒤 대법원이 아직 확정 판결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원고 가운데 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후지코시 등 다른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도 상황이 비슷하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관련 소송은 총 14건이다. 3건은 상고심, 6건은 항소심, 5건은 1심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대법원이 신일철주금의 재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선고하면 일본 전범기업들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현지에서 20년 넘게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입법을 위한 일한공동행동’(공동행동)의 야노 히데키씨는 “송구스럽게도 일본에서의 재판은 모두 다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과로 끝났다”며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실현돼야 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의거해 보상 입법을 해 나가는 것을 지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일본에서 관련 입법 운동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한국에서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해온 장완익 변호사는 “5년 동안 추가된 소송이 1심, 2심에서 계속 승소하고 있지만 대법원에 올라 최종 확정된 판결은 한 건도 없다”며 “확정 판결이 나야 일본 기업, 일본 정부, 또 한국 정부까지도 정책이나 계획을 바꿀 수 있을텐데 아직 그런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신 동안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고 거기에 따라 가해 기업과 정부가 피해자를 위해 적극 나설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신일철주금 소송의 원고인 이상주씨(주민등록 나이 92·실제 나이 94)와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복실, 김정주, 김계순, 전옥남, 안희수, 김옥순, 이자순, 최희순씨가 참석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2017-05-30> 경향신문

☞기사원문: “더이상 시간이 없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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