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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9화 유네스코에서 일본 영향력 막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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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끌려간 청년들도 있습니다. 일본의 패망 이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고 있었던 젊은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간 곳은 조국이 아닌 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한 수용소입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또한 이번 펀딩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당신의 역사적 증언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향한 첫 길을 열어주신 고 김학순 할머니를 만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아울러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그동안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돌아봅니다. 지옥섬의 강제노동을 숨긴 채 일본 정부가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할 때, 우리가 어떤 반대운동을 했는지를 들려드립니다. 또한 일본 정부에 맞서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리할 것입니다.

“기억을 기록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함께해주세요

스토리펀딩을 통해 여러분들께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하려 하지만, 이번에도 담지 못하는 피해자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고통을 당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흘렸을 눈물과 한 분, 한 분의 혹독한 삶의 역정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저희는 이분들의 삶과 역사를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담고자 합니다. 기억을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반갑게 뵙기를 바랍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1화 “너 일본에 간다” 16살 때 받은 징용장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2화 ‘지옥섬’ 군함도의 하루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3화 ‘역사적인 ‘위안부’ 증언 세상에 나오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4화 “일본 정부의 조건부 사과는 모욕”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5화 일제 자폭특공대가 된 조선 청년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6화 시베리아에 억류된 조선청년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7화 일본 정부에 소송해도 패하는 이유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8화 강제노동, 일본인도 함께 싸웁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9화 유네스코에서 일본 영향력 막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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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9화]

유네스코에서 일본 영향력 막강한 이유
군함도 세계유산 현장에서 끝까지 싸운 이유

글ㅣ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

2015년 그해 독일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초여름인 6월 말인데도 연일 36~37도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날씨보다 우리를 더 덥고 지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이 강제징용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린 독일 본Bonn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이슈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비정부기구로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 6월 27일 독일 본으로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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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린 세계컨퍼런스센터 ⓒ 민족문제연구소

세계컨퍼런스센터WCCB에 도착하니 총회장은 이미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이번 총회는 예년에 비해 두 배 넘게 참석자들이 몰렸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옵서버로 등록하고 총회장에 입장했습니다. 총회장 로비에서는 삼삼오오 대화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회의는 회의장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었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로비의 현장도 유네스코 회의의 연장인 듯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한 이유는?

우리는 공식행사가 시작되는 6월 29일부터 회원국 위원들과 옵서버, 미디어를 상대로 홍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강제징용의 역사를 숨기고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까지도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현장이다” “우리는 일본 산업유산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라는 메시지를 각국 위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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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국에서 참석한 유네스코 위원들을 상대로 일본 산업유산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산업시설 등재 이슈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 유네스코위원회 위원장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와 깊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노골적인 반감을 표하는 위원들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부분 일본의 경제 원조를 많이 받는 지역 대표들이었습니다. 일본이 위원국들을 설득한 힘이 바로 ‘돈’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이준 열사의 좌절이
떠올랐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4~2015년 주요 회원국 분담금 실적을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을 반대하던 미국이 분담금 지급을 거부한 이후 일본이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본이 유네스코의 가장 큰 돈줄인 셈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144개국 미술사학자, 역사학자, 건축학자 9,500명 회원으로 구성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하 ICOMOS)에도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일본의 근대화 시설, 더 나아가 식민지 대만의 산업유산까지도 주목해왔고 일본 정부가 이코모스에 막대한 연구지원금을 지원해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번에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로 귀결되었다는 뒷이야기가 현장에서 무성했습니다.

사실 이코모스는 이번 일본의 산업시설을 평가하면서 19세기 말~20세기 자본주의가 전쟁과 결합되어 성장해왔다는 사실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유네스코 역시 제국주의적 국제질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여느 국제기구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구한말 세 명의 특사가 느꼈을 절망감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소문만 무성하던 이준 열사의 ‘분사憤死’가 사실처럼 다가왔습니다.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온갖 꼼수를 부렸습니다

일본이 등재 신청한 대상은 모두 8개 현에 흩어져 있는 23개 시설입니다. 한반도 전체 길이를 넘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이를 한데 묶어 신청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시설들이 제철·제강, 조선, 석탄 산업 등 대부분 무기 생산과 직결된 군수 산업시설입니다. 당연히 이곳들이 가장 성업을 이루었던 시기는 일제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확대시켰던 때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고 ‘메이지 일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대상 시기를 1910년으로 한정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전시 강제동원·강제노동과 관계없는 시설로 포장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시설 중에 일제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된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군 포로를 강제노역시킨 시설이 8곳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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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산업유산 시설 분포도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은 이미 2006년부터 규슈·야마구치 일대 산업유산 등재를 추진해왔습니다. 2012년에는 가동 중인 시설을 문화재로 지정할 수 없다는 일본의 국내법도 개정했습니다. 자국에서도 문화재가 아닌데 세계유산이 될 수 있겠습니까. 국내법도 바꿔버리더니 아베 총리가 집권하자 총리실이 직접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습니다. 유산 명칭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라고 포괄적으로 바꾸고 세계유산위원회 21개 대표국 임기가 만료되기 전인 2015년에 정력적으로 밀어붙인 것입니다.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아시는지요?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왔습니다. 뒤늦은 후회에 뼈아픈 반성을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미 이코모스가 “비서구권에서 처음으로 산업화를 이끈 일본의 산업유산”이라는 점을 들어 등재 권고 결정을 내린 사실이 5월 초에 알려졌습니다. 이제 일본 산업시설의 등재를 막을 길은 없어진 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이코모스의 권고안에는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이코모스가 일본의 산업유산에 대해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 내용을 담았던 것입니다. 1910년으로 대상 시기를 단절시켜 강제동원의 역사를 숨기려던 일본의 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독일 본에서 이어갈 캠페인의 핵심 키워드를 ‘네거티브 헤리티지(부정적 세계유산)’로 잡고 이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했습니다. 세계유산이 되었지만 잘못된 역사를 함께 수록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독일로 건너가 의장국에게
피해자의 절규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5월 6일부터 독일에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던 차라 우리는 베를린 방문 때 총회 개최국 독일의 마리아 뵈머 의장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피해자의 생생한 절규를 뵈머 의장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일 시민 연대 의견서와 강제징용자의 증언 영상도 준비해갔습니다.

출장 중이던 뵈머 의장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독일 외교부 동아시아 담당관에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당한 참혹한 일들과 유족까지 이어지는 피해의 실상을 전했습니다. 또 이 문제가 단지 한일 간의 정치 갈등이나 해묵은 민족 감정이 아닌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유네스코 창립 정신을 훼손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우리의 방문이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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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외교부를 방문해 강제동원 피해 실상을 전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6월 초에는 유네스코 회원국 위원들에게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기억해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편지는 전범기업과 15년째 소송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18명의 이름으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한과 눈물로 쓴 편지를 유네스코 총회를 보름 앞두고 각국 위원들에게 모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유네스코의 양심에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인 ‘세계대전을 반성하고 영속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인류의 지적, 도덕적 연대를 강화할 목적’으로 1945년 11월에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유네스코 헌장은 인류의 역사가 평화로운 상태로만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억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가 쉽게 지워지거나 치유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고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세계유산이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1979년 등재)이고, 39차 총회 공식 포스터에 소개된 독일 에센Essen의 졸페라인(2001년 등재) 탄광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가져온 산업유산으로 2001년에 등재시키면서 1930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포로의 강제노동과 6,000명 이상 유대인 학살의 어두운 역사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제적 사례와 빗대어 일본이 등재시키려는 산업시설에 은폐된 역사, 어두운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등재를 막기 위해 ‘부의 세계유산과 미래가치’라는 주제로 전시회와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졸페라인 탄광, 마셜제도의 비니키 핵실험지(2010년 등재)와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1996년 등재) 등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인한 범죄의 현장이자 막대한 인류의 희생을 초래한 역사의 현장을 뽑아 소개하고, 일본의 산업시설들도 전쟁범죄의 현장임을 알리는 패널을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우리는 일본 산업시설의
검은 속내를 폭로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문제 삼은 곳은 강제징용 시설로 지목된 8군데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산업시설 전체가 침략전쟁의 과거를 세탁하려는 검은 속내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의 대외팽창주의 사상을 싹틔운 인물인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를 산업유산에 포함시킨 것은 주변 피해국에 극심한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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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전후보상’ 패널을 유심을 읽고 있는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 ⓒ 민족문제연구소

쇼카손주쿠는 요시다 쇼인이 아시아 침략과 군사적 팽창주의를 가르친 사설 학당이며 그의 제자들은 실제로 타이완과 조선을 침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강화도 사건의 주모자 기도 다카요시도 그의 제자입니다. 이런 시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다니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쓰비시가 있는 곳에
전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산업혁명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전쟁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일본은 이웃 나라를 침략한 덕분에 유럽에서 200년 걸린 산업혁명을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쓰비시, 미쓰이와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의 전신)은 주변국을 침략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고, 늘어난 생산량을 충당하기 위해 값싼 식민지 노동력을 대량으로 동원하고, 이를 토대로 대량 생산 구조를 갖추어 성장한 독점재벌들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산업시설들을 세계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어두운 역사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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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와 전함 무사시(전시패널)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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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지은 야와타 제철소(전시패널) ⓒ 민족문제연구소

청일전쟁의 배상금으로 지어진 관영 야와타 제철소, 그 성장의 그늘에는 전쟁터로 변한 한반도와 조선 민중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미쓰비시가 있는 곳에 전쟁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제 침략전쟁의 확대와 함께 성장한 미쓰비시, 막대한 무기 생산을 자랑했던 나가사키 조선소에 강제동원 당한 조선인들은 원자폭탄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일본 석탄 생산의 4분의 1을 담당했던 미쓰이 재벌의 미이케 탄광에는 족쇄 채워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죄수를 대신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과 전쟁포로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들이
심각성에 공감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전체를 알리고자 한 우리의 호소는 전시 오프닝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과 관람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자국의 유네스코 등재 시도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자 유럽의 참가자들이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습니다.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의 어두운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관계자는 인류 역사에서 ‘부의 역사’를 통한 종합적인 시각이 절실하며 유네스코가 이런 창립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옵서버도 유네스코 협약이 ‘기억’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준비가 부족하다며 유네스코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가족으로 잃은 네덜란드 연사는 독일의 사례를 들어, 충분히 가능하고 우리가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동감을 표했습니다. 전시회와 세미나를 통해 한국인 피해자들의 호소가 세계 시민들의 공감 속에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등재 보류냐, 결정이냐..
막판까지 혼전이었습니다

총회 현장에서는 7월 3일까지도 한일 양국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우리에게는 한편 반가운 시그널이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기자에 따르면 뵈머 의장이 반드시 한일 간 합의안을 가지고 오라는 강력한 주문을 했답니다. 한일 간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최종 등재 심의가 보류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조금 싹트기도 했습니다.

3시 반쯤 총회장에 가니 점심 휴회 시간에도 한일 양국만 제외하고 19개국 대표들이 모여 따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후문이 들렸습니다. 한국이 의견 발표 때 ‘강제동원’에 대해 언급하겠다고 하자 일본이 ‘표결’에 부치자고 맞섰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가 얼마나 강경한 태도로 ‘강제동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일본이 과연 표결에 부쳐도 유리한 것인지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위원들을 만나 홍보물을 나눠주는 방법뿐이었습니다.

“등재 심의 연기,
일본 대표들은 초조했습니다

등재 심의 2일째. 드디어 일본의 등재 심의가 열리는 7월 4일이 되었습니다. 등재 심의는 이코모스의 등재 신청 유산에 대한 브리핑 – 각 위원국 의견 설명 – 등재 확정 선포 – 당사국 대표 인사말 진행 – 각국 위원들 축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건마다 빠르면 30~50분 내외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전 11시가 되자 일본의 등재 심의가 내일로 연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로비에 퍼졌습니다. 곧이어 일본에서 온 지자체장들이 우르르 회의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축포를 올리기 위해 방문했던 지자체장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일본 취재진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취재하랴, 본국 언론사와 통화하랴, 순식간에 로비는 온통 북새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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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산업시설 등재 심의를 진행하는 뵈머 의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 민족문제연구소

당일 일본 측 보도를 검색하자 일본의 등재 추진에 반문을 던지며 등재를 보류시키자는 회원국도 있다는 보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19개 회원국들은 일본의 바람과 달리 ‘표결’을 피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일본 우익 언론에서는 벌써 “합의 난항, 한국 측이 입장 번복, 유네스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등재가 실패할 경우 한국 측에 책임을 돌리려는 포석이었습니다.

우리는 로비 한쪽에서 성명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등재 보류 결정을 환영한다”와 “강제동원, 강제노동 역사 외면한 한일 양국 합의 반대한다”의 두 가지 버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전자의 성명서를 한국으로 전송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다음 날 5일은 우리가 귀국하려던 날이었습니다. 출발 직전까지 최종 결정을 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3시에 일본의 등재 심의가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오전에 한일 양국이 합의안을 도출했고, 등재 심의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점심도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온통 신경이 회의장에 쏠려 있었습니다. 지루한 심의들이 지나고, 드디어 일본의 등재 심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회의장에는 어제 떠났던 일본 측 지자체장들이 잔뜩 몰려와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절반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코모스는 브리핑에서 ‘전체 역사를 알리는 해석전략을 수립할 것’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언급했습니다. 이어 각 위원국의 의견표명 없이 바로 뵈머 의장에 의해 등재 결정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의 인사말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끌려와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결하게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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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전체를 알게 하라’라는 권고 내용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그러나 이 발언은 일본의 외교적 대표가 공식 석상에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을 인정한 최초의 발언이었습니다. 이 발언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의미는 컸지만 결국 일제 강제징용 시설들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우리는 절반의 성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유네스코 정신에 위배되는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비판한다!”는 제목의 긴급 성명서를 한국으로 송고하고 아쉬움과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일본은 억지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독일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한편으로 예견되었던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재 결정 바로 다음 날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일본의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발표가 강제노역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일하게 됐다’는 수동형으로 번역해 공표함으로써 난데없는 해석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기시다 외무상 또한 “일본의 표현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은 ‘징용령’에 의한 적법한 동원으로 강제노동이 아니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한편 미쓰비시 머티어리얼(미쓰비시광업의 후신)은 돌연 미국을 직접 찾아가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것에 대해 머리 숙여 공식 사과했습니다. 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에게도 사과의 뜻을 표했고,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만은 외면했습니다.

“유네스코의 등재는
완전 등재가 아닙니다

이러한 강제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를 긍정하려는 태도에서 더 나아가,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일본의 성공신화로 미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일본 전범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는 국가주의 교육을 통해 역사 인식을 강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자, 역사 미화 프로젝트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계유산은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기념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산업시설들은 매우 왜곡되고 편향된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직후 보인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행태들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히려 기억해야 할 역사를 은폐하고, 침략전쟁과 강제노동이라는 부정적 역사를 망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등재는 완전 등재가 아닙니다. 2015년 등재 당시, 조건부 등재로 허용한 것입니다. 일본은 2년 후인 올해까지일제 강제동원 시설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제대로 반영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따라, 이에 합당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네스코의 권고가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와 조사를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담긴 안내판이 세워지도록 우리는 일본 정부와 유네스코에 건의할 예정입니다. 그러기 위해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세계인들과 공감하기 위해 영상으로 제작해 공유할 계획입니다.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일본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확인해야 할 시기가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는 스토리펀딩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희는 총 8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고통을 당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이분들이 흘렸을 눈물과 한 분 한 분의 혹독한 삶의 역정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저희들은 이분들의 삶과 역사를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담고자 합니다. 기억을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반갑게 뵙기를 바랍니다.

 

0316-30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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