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일제의 잔재는 (현대)의학일까? 한(漢)의학일까?

1953

1931년 교토제국대학 화학과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은 이태규는 한국이 자랑하는 과학자다. 그가 과학자를 꿈꾸며 겪었던 고난은 순교자의 삶처럼 거룩하다. 조선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첫날, 이태규는 물리선생님이 칠판에 쓴 영어를 알아볼 수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introduction’이라고 필기체로 쓴 글자인데 그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조선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 4년, 사범과 1년의 중등교육을 받으면서 그날 처음으로 알파벳 필기체를 구경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총독부에서는 식민지하의 조선 학생들에게 일부러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영어를 해득하게 되면 건방진 생각을 갖게 되고, 독립 및 자주 의식이 싹튼다는 이유에서였다. 총독부에서는 면서기 같은 식민지 관리로만 만족하게끔 조선인 학생들의 의식을 묶어놓고 있었다. 실업교육 위주였으니 학과의 수준도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어를 배울 때만 교과서가 공급되고 나머지 과목은 프린트로 된 교재로 가르쳤다. 영어는 상과 지망생에 한해서만 일주일에 2시간씩 가르쳤다. 수학도 대수의 경우 2차 방정식을 푸는 공식조차 가르치지 않았고, 기하도 원을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대한화학회  편저, [나는 과학자이다-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박사 이태규 선생의 삶과 과학]. 양문. 2008. 45-47쪽,
    -돌배개 출판, 정인경 저, [뉴턴의 무정한 세계]에서 재인용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과학기술을 강제로 이식당한 덕에 조선시대보다는 먹고살기가 좋아지고, 민주주의 또한 후불제로 강제로 들어오는 덕에 여성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런 어디까지 식민지의 이등국민으로서 일제의 효율적 수탈이 교육의 목적이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입니다.
 
굳이 다 아는 사실을 열거한 이유는 요즘 한의사협회와 일부 국회의원들의 ‘현대 의학은 식민의 잔재이다. 현대의학은 양의학이다’라는 주장 때문입니다.
 
빠른 이해를 위해서 질문 먼저 하자면, ‘화학이 일제를 통하여 들어왔으니 현대 화학은 식민의 잔재이니, 음양오행에 기반한 중화화(?)이 민족 화학이므로, 대학에 중화학을 가르치고, 초/중/고에서 중화학 교사를 두어, 현대화학과 동등하게 교육받도록 해야할까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위의 인용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일제는 조선인들이 제대로 과학과 세계를 배우지 못하고, 면서기 정도만 할 수 있는 실무자를 육성하는 것이 절대 다수의 조선인 교육의 목표였습니다. 조선에서의 의학 또한 조선인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비용으로 조선인들이 실무 또는 막일을 하는 정도만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을 하면서  일본토속의학(중의학의 아류)을 몰아내고, 현대과학에 기반한 현대의학을 가르치는 의과대학을 전국에 설립하고 일본국민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굳이 큰 돈을 들여 조선인의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없으니, 조선토속의학(중의학의 아류)를 유지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의생(한의사의 전신)이고, 경희의전을 설립하여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인의 건강을 돌보도록 합니다. 여기서 교육받은 조선인 의사들도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의 일본 본토의 의학발전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 곰곰히 일제시대의 조선인의 일본인의 삶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인이 아프면 현대의학의 혜택을 보기 위하여 병원에 가고, 조선인은 동네 한의사에게 가고… 친일 조선인은 위대하신 일본인의 시혜를 받아 경성제대병원을 이용하는 특전을 누리고… 이는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많은 영화나 소설을 보시면, 병이 들었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민간의료를 전전하다 죽는 주인공들… 그들이 가고 싶어 하던 곳은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이 아니라, 현대의 병원이었습니다.
 
1986년 민주화와 민족주의의 열풍이 불면서 군사독재가 무너져 내린 것은 정말 우리 민족의 역사에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러한 열풍을 등에 업고, 중의학의 아류로서 중국을 사대하면 따르던 조선의 ‘한(漢)의학’이 1986년 ‘한(韓)의학’으로 한자명만 바꾼다고하여, ‘일제식민의 잔재로서 조선에서 연명하게된 중의학의 아류인 ‘한(漢)의학’이 민족의학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의사협회는 일제 식민의 역사를 외곡하는 작업을 그만두시고,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현대의학이 일제에 의하여 들어온 부분이 있다하여 ‘양의학’이라고 21세기에도 부르는 것은 수치스러운 언행입니다. 아니, 사고의 수준이 지극히 천박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국에 여행을 갔는데 인디언들이 현대의학을 ‘영국의학’이라고 배격하는 것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 상처를 극복해야합니다. 현대과학의 시작인 서양(유럽)과학이 제국주의의 침략의 무기를 만드는 기술의 원동력이었으며, 조선을 침략한 일제에 의하여 조선에 보급되었다고 하여 과학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일제는 조선인에게 과학(하다못해 수학에서 원 조차도)을 알려 지 않으려 부단한 노력을 하였고, 이는 물리,화학, 수학, 생물과 같은 기초과학만이 아니라, 기계공학, 의학과 같은 응용과학도 그러했습니다. 일제와 친일잔재는 (현대)과학과 (현대)의학이 아니라, ‘음양오행과 기’에 기반한 중의학과 그 아류 ‘한(漢)의학’입니다.  
 
                                                                          -내과의사가 보는 의료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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