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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임시정부 법통 무시한 ‘건국절’ MB·박근혜정부 거치며 노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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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의 역사-

2016년 한국에서 ‘건국’이라는 두 음절 보통명사는 정치적 휘발성이 매우 강한 단어다.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을 뜻하는 ‘건국절’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명사들은 언제부턴가 그 용례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대결하는 이념의 격전장이 됐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2008년 8월15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 였다. … 건국 60년,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당당히 싸워왔다”고 말했다. 1948년 이후 역대 정부가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8월15일을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광복절’로 기념해왔다는 점에서 ‘해방’보다 ‘건국’의 의미를 앞세운 이 대통령의 8·15 규정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들끓었다. 한국근현대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등 14개 한국사 연구단체들이 사흘 전 ‘건국절 철회를 촉구하는 역사학계 성명서’를 발표한 터였다. 이들은 성명에서 “‘1948년 건국’ 주장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명칭 변경의 ‘의도’를 의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명칭 변경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국부’로 추어올리고 군사정권의 산업화 업적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건국절’은 노무현 정부 임기 4년차인 2006년 7월31일 <동아일보>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기고문을 실으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 교수는 당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 이뤄졌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 주자로 꼽혔다. 이듬해 가을, 정갑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의 주장과 행동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배경과 정치적 의도가 부각되지 않았던 탓이다. 실제 ‘1948년 건국’이란 표현은 오랫동안 ‘1948년 정부수립’이란 표현과 혼용됐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1년차인 1998년 8월15일을 ‘건국 50년’의 시점으로 규정하면서 “제2 건국 운동을 펼쳐나가자”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2003년 8·15 경축사에서 “58년 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지금 우리는 해방과 건국의 역사 위에서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며 ‘건국’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명칭을 둘러싼 논쟁은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 단체의 ‘대안 교과서’ 출판,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개정 및 국정화 움직임과 만나면서 ‘이념 갈등’으로 비화했다. 진보진영은 ‘1948년 건국’ 주장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1948년 정부수립 과정에 참여한 친일파를 복권시키려는 시도로 규정했는데, 이런 관점은 만주군 장교 출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층 강화됐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친일과 민주주의 탄압 이력을 감추기 위해 ‘48년 건국설’에 동조하고 있다는 논리가 확산된 것이다.

학계에선 논쟁이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대사 논쟁에 참여했던 한 50대 정치학자는 “근대국가의 구성 요건인 ‘영토의 지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1948년을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건립 기점로 볼 수 있고, 그 정부가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기 때문에 1919년을 기점으로 보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다”며 “지금의 논쟁은 지나치게 획일적 결론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16-08-17> 한겨레

☞기사원문: 독립운동·임시정부 법통 무시한 ‘건국절’ MB·박근혜정부 거치며 노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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