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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씌운 ‘괘씸죄’ 42년 만에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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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유신 최대 권력 스캔들’ 주인공 고 윤필용 재심 종결


유신 시절 최대의 권력 스캔들로 꼽히는 ‘윤필용 사건’의 주인공 고 윤필용씨(2010년 별세)가 자신이 받은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42년 만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최고 실세로 군림하다 ‘말 한마디’ 잘못한 죄로 추락했던 윤씨는 이어진 전두환 군부 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삶이 뒤섞여 있는 윤씨의 삶에는 뒤틀린 한국 현대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각하 노쇠” 한마디에 12년형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인이던 윤씨는 5·16 쿠데타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1962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박정희 정권의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었다.


윤씨가 박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54년이다. 박 대통령이 그가 같은 경북 출신이어서 아낀 것으로 전해진다. 1927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윤씨는 대구고등보통학교(경북고 전신)를 거쳐 1949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졸업했다. 1965년 육군 방첩부대장을 거쳐 맹호부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윤씨는 1970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소장)에 임명됐다.




▲ 1973년 이른바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군인들이 군사법정에 출석했다. 오른쪽부터 윤필용 소장, 손영길 준장, 김형배 준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핵심 최측근 중 하나로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윤씨는 갑자기 쿠데타를 모의한 역적으로 몰리게 된다. 1972년 10월 윤씨가 당시 2인자이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술자리에서 “각하(박정희)는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후락)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모 언론사 사장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됐다. 박 대통령은 ‘윤필용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수사를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맡겼다.


강 사령관은 윤씨를 포함한 장교 1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윤씨를 상대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취지로 조사를 벌였지만, 쿠데타 혐의는 빠지고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윤씨는 1973년 징역 12년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1975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박정희 정권에서 팽당했던 윤씨는 10·26 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12·12 사태로 정권이 바뀌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전두환·노태우 등 윤씨와 친분이 있었던 하나회 소속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월12일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윤씨는 1980년 2월 특별사면을 받고 같은 해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11개 혐의 중 1개만 ‘유죄’


‘윤필용 사건’ 직후 윤씨는 업무상횡령·군무이탈방조·이탈자비호·기부금품모집금지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알선수뢰 및 수뢰·알선수뢰·직무유기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육군본부보통군법회의는 1973년 4월 모두 유죄로 판단해 윤씨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윤씨는 항소했고, 2심인 육군고등군법회의는 1973년 7월 일부 업무상횡령·군무이탈방조·이탈자비호·직무유기교사·총포화약류단속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 징역 15년과 벌금 1000만원의 형을 선고했다. 다음달 관할관은 징역 12년으로 감형했고, 윤씨는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윤씨에 대한 재심은 아들 해관씨(59)가 청구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2년 11가지 혐의 중 9가지를 무죄, 1가지를 면소로 판단하고, 1972년 건설업자에게 두 차례 뇌물로 80만원을 받은 혐의(수뢰)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과 추징금 8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윤씨의 뇌물수수 혐의만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윤씨에 대한 재심에서 징역 3년과 추징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형을 선고하지 않은 채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특별사면을 받은 이가 재심을 청구한 경우 유죄라면 피고인이 상소했을 때 원심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않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등에 따라 형을 선고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윤필용
1927년 경북 청도생.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었지만 술자리에서 “각하가 노쇠했다”고 발언한 것이 빌미가 돼 구속 기소됐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신군부에 의해 복권됐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2015-11-09> 경향신문

☞기사원문: 박정희가 씌운 ‘괘씸죄’ 42년 만에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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