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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강제노역 부인’ 논란…핵심은 대일 청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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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forced to work’→‘일하게 됐다’로 번역

`일제 강제징용 시설 세계유산 등재는 침략주의 미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한국인 근로자들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과 일본이 제2의 한·일 기본조약식 질곡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양국은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일본 대표의 ‘forced to work’ 발언을 제각각 해석함으로써 다시 장기 미제 현안을 잉태했다.

◆한·일 기본조약식 각자 해석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5일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에서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주(駐) 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영어로 발언한 ‘forced to work’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윤병세 외교장관 등 우리 측은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강제노역’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 일본 측은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역(假譯·임시번역)을 통해서도 ‘일하게 된’이라고 단순 피동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forced to work’의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1965년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 기본조약 제2조 해석 문제와 유사하다. 당시 35년간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불법이라는 우리 정부 입장과 국제조약과 협정에 따른 합법적 지배라는 일본의 주장이 맞섰다. 결국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애매한 한·일기본조약 제2조 조문(條文)이 탄생했다. 언제부터 무효인지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없다 보니 우리는 ‘1910년 강제병합이 처음부터 불법·무효였다’는 입장인 반면, 일본은 ‘원래는 합법·유효했지만, 조약 체결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한·일 교섭에서도 우리 측이 주장하는 강제노동을 어떤 식으로 합의 내용에 담느냐가 쟁점이었다. 한·일 외교당국은 이번에도 어느 한쪽의 승패가 확실히 갈리는 정면승부보다는 각자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는 절충선을 선택함으로써 오히려 화를 키우고 있는 양상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핵심은 대일 청구권 문제 우리 정부는 5일 일본 정부 대표의 ‘forced to work’를 ‘강제노역’으로 해석하며 애써 대일(對日) 청구권 소송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우리가 협상한 것은 역사의 기록을 명확히 해서 일본 측의 성이 있는 조치를 받아내는 것”이라며 “배상은 이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밝혔다.

정부 설명과는 거꾸로 일본이 ‘forced to work’를 강제노동이나 강제노역으로 해석하는 것에 극단적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은 결국 대일 청구권 소송과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당초 한국 측(이 제시한) 발언 안(案)에는 강제노동이 있었으나, 손해 배상소송 등 징용자 문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일본 측이 발발해 조정한 결과, 한국 측이 발언을 수정해 쌍방의 입장을 지키는 표현이 사용됐다”고 전했다. 기시다 외무상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forced to work’가 강제노역이 아님을 강조하며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국 정부는 이번 발언(forced to work 등)을 일·한 간 청구권의 맥락에서 이용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김청중·염유섭 기자 ck@segye.com

<2015-07-06> 세계일보

☞기사원문: 日 ‘강제노역 부인’ 논란…핵심은 대일 청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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