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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길윤형,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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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임종국상 수상자인 한겨레신문 길윤형 기자가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 자살특공대원으로 희생된 식민지 조선인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여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가미카제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천황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정작 식민지 조선의 청소년들까지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처했던 비극적 현실의 한 단면을 곱씹어보게 하는 의미 깊은 책이다. 서해문집 간. 15,000편집자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책표지 ⓒ서해문집


조선인 가미카제의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찾아낸 비극의 현대사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이 짙어지자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폭탄을 실은 비행기로 적 함대에 돌격하는 자살특공, 일명 가미카제 작전을 벌인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천황의 방패가 되어 일본 제국을 지킨다는 헛된 명분에 생을 마감한 ‘가미카제’. 그중엔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이 희생된 식민지 조선 청년들이 있다. 친일파로 몰리면서까지 일본군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자살특공이라는 무모한 작전에 목숨을 바쳐야 했던 조선인은 누구인가? 무의미한 전쟁에 스러진 젊음, ‘조선인 가미카제’의 역사를 파헤친다.


무모한 작전, 스러진 젊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함께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드넓은 태평양을 차지하려는 일본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태평양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던 양국의 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일본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일어난 레이테 해전에서 패한 뒤 전쟁을 수행할 병력도, 물자도 턱 없이 부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군부가 선택한 작전이 ‘자살특공’, 곧 ‘가미카제’다. 250킬로그램에 달하는 폭탄을 비행기에 실은 채 적 항공모함에 돌격하는 무모한 작전. 이 작전에 동원된 조종사는 거의 모두 20대 초반이었고, 이제 겨우 조종기술을 익힌 앳된 청년들이었다. 그중엔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던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도 많았다.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 그 주인공은 조선인 최초의 가미카제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정주가 친일파가 되는 데 대표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마쓰이 오장 송가>다. 이 시에서 ‘인씨의 둘째 아들’이자 스물한 살 먹은 사내’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마쓰이 히데오, 즉 인재웅이다. 1924년 태어난 인재웅은 스무살이던 1944년 11월 ‘조선인 최초의 특공대원’으로 태평양전쟁의 전장이던 필리핀 레이테 만에서 특공작전을 수행하고 숨졌다.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던 평범한 소년이던 인재웅,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소년비행병학교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 조종사라는 꿈을 이룸과 동시에 가미카제가 되어 명분 없는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런 그를 일본은 전쟁 영웅으로 만들었고, 각종 언론과 매체는 앞 다퉈 “마쓰이 오장의 뒤를 따르자”며 수많은 조선 청년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서정주의 시는 일본의 이런 의도를 그대로 담고 있다.


끝나지 않은 운명


인재웅을 시작으로 많은 조선 청년이 특공대원으로 희생되었다. 경남 사천 출신으로 몇 해 전 위령비 건립 논란으로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탁경현, 일본 육사 출신으로는 유일한 조선인 특공대원 최정근, 유골이 되어 고국에 돌아온 노용우, 그리고 마지막 조선인 특공대원으로 알려진 한정실까지. 이 밖에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희생된 조선인 특공대원은 수두룩하다. 이들 중엔 일본이 내세운 명분 ‘천황의 방패’이자 자랑스런 일본군으로 죽은 이도 있지만, 대다수는 ‘천황을 위해 죽을 수 없다’는 마음속 다짐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들을 친일파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가미카제로 희생된 이들 외에 많은 일본군 출신 조선인 조종사들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는 데 일조했고, 민간 항공사 탄생에도 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군 가미카제로 희생된 조선인과 대한민국 항공사에 업적을 남긴 조선인.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은이 길윤형


1977년 3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일외고를 거쳐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2001년 11월 《한겨레》에 입사해 경제부, 사회부, 《한겨레21》 등을 거쳤고 지금은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한일 과거사를 주 관심 주제로 삼고 있다.
2005년 가을, 한센인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아무도 통역을 해주지 않아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웠고 중국어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삼성언론상(2003), 임종국상(2007) 등의 상을 수상했다. 다음에는 안창남 또는 김옥균에 대한 책을 써볼까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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