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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부평초의 상처를 보듬고, 모두를 이어가는 우리회원들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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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지회 조영숙 회원


사랑하고 존경하는 민문연 회원여러분
(꼭 무슨 정치인의 인사말 같네요^^)
보고싶은 민문연 회원여러분,멀리 도쿄지회 조영숙입니다.


매월 ‘민족사랑’의 ‘고맙습니다’란에 저희 도쿄지회에 보내주시는 책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답니다.

언젠가는 이 고마운 맘을 함께 나누어야지..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 10월달에도 도서를 보내주신 분들에대한 고마운 생각과 함께 ‘민족학교’라는 단어에 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벌써 몇달째 ‘민족학교’라는 소개로 나갔는데 이제서야 아!! 하다니…. 역시 저는 ‘둔한’사람입니다. 회원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도서는 민족학교는 물론 일본학교에도 기증합니다.

지난 여름 민문연 수련회에서 저는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도쿄지회 회원 ‘덴사키’씨의 편지를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기증이 ‘민족학교’로 되어 있는데, 도쿄지회는 민족학교, 일본학교 선후없이 기증합니다. 그이유를  제 얘기를 통해 회원여러분께 전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5년 재일동포 2세와의 결혼으로 일본에 왔고, 그이듬해 재일3세의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가정사정이 있어 딸아이가 어릴때 한국친정에 딸아이를 좀 맡긴적이 있답니다. 다시 일본으로 데리고 와서 보육원에 맡겼는데 그때 어린딸아이가 곧잘 한국말을 했었답니다.(쫑알쫑알…)

그래서 저도 딸아이가 한국말을 잊지않도록 보육원가는 길에 한국말로 서로 대화를 나누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아이가 ‘엄마,보육원이 가까워 오니까 이제 한국말 하지마’ 이러는 겁니다. 그말을 들은 저는 충격이었지만,어떻게 할지를 몰랐습니다. 자신이 주위친구들과는 다르다는게 어린아이에겐 대단한 부담이었던 것이었지요.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때 전 고민했습니다. 민단계 한국학교는 너무 멀어 어린아이가 다니기엔 힘들었고 총련계 조선학교는 그때 당시는 솔직히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혹 딸을 그학교 보내어 김일성수령님 만세 이런거 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가장 가까이 있고 믿을 수 있는(?) 학교는 일본학교였습니다.

딸아이가 일본학교에 입학한 첫해였습니다. 일본사회의 날카로운 발톱이 딸아이의 여린가슴을 무자비하게 할퀴기 시작햇습니다. 이제부터 함께 웃으며 뛰놀 같은반 친구로 부터 들은 ‘조센징 가에레(조선인 돌아가)’는 어린가슴에 어떤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는 이 어미도 결국엔 그 가슴의 주인이 아니기에 헤아리기 힘듭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무슨 조센징을 알것이며,무슨 니홍진을 알겠습니까? 그 부모가 가르쳐준 말입니다. 학교에서 당한  자신의 할퀸 가슴을  딸아이는 엄마에게 하소연했지만, 그러나, 그러나, 이 어미는 자식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일본말을 아직 잘못 알아듣는 탓이엇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슨 일에 신경 쓴다고 그 말을 흘려 버렸을까요?


십수년이 지난 올해 여러가지 일을 서로간에 이야기 하면서 어릴적 얘기가 나왔답니다. 친구로 부터 ‘너희나라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가? 왜 일본인이 아니면서 일본에 있는가?에 어린가슴에 많이 고민하고 아팠다고 말했을 때, 우리 두 모녀는 그저 울었습니다. 마치 3세대 쌓인 세월의 한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듯…  

민감하고 여린 그 나이에 학교안에선 딸아이를 향해 정체성을 혼란시키고 생채기를 긁어대는 말들이 날아오곤 했답니다. ‘에이꼬짱은 한국인이라서 피부가 검으냐?’, ‘에이꼬짱집은 유령집 같다’ 학급 남자친구가 그렇게 놀린다고 울먹이며 전하는 딸의 말을 듣고, 이 둔한 어미는 장난꾸러기 꼬맹이들이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저런 나쁜놈들.(어쩌고 저쩌고….)’ 대충 딸아이를 위로하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좀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선생님께 의논을 하든,투쟁을 하든 했어야 했는데…

딸의 가슴 한구석에 얼마나 뜨겁게 불에데인 상처가 숨겨져있는지, 이 어미는  잘 모른 채 한국말, 한국문화를 틈이 나면 가르쳐 주려했습니다. 그때부터 딸은 주위환경과 엄마의 가르침사이에서 고민의 늪이라는게 생기기 시작한거 같습니다. ‘나는 일본인.한국인 그런거 말하는거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거 보다 더 하고싶은게 많은데… 그림도 그리고싶고 노래도부르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싶고… 엄마말을 잘 안듣는 나는 나쁜아이일까?…’

이런 종류의 고민의 늪이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받고 상처를 받았지만 반면 일본인 친구에게서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딸은 5학년 때 이런말을 했습니다 ‘난 세계인이야,만약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만약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인간은 일본인일수도 한국인일수도 재일한국인일수도 있는거야. 그리고 일본이라는 곳도 그누구가 살아도 좋은곳이야’

보육원, 소학교1, 2학년 때부터 민감하고 아프게 느껴온 자신의 정체성과 일본사회의 배타성에 대해, 5학년이 되어선 나름대로의 극복으로 딸은 그작고 아픈 가슴에 이 넓은세계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이런 딸과 엄마 사이의 24년간엔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린 사연은 딸을 한국유학 보낸 것입니다(2005.초). 그유학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실패의 원인는 한국친구들이 자신을 말을 잘못하는 ‘재일동포’라고하여 받아주지 않은 데 있습니다. 2006년 12월,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왓습니다.

저는 그때  딸아이에게 의지가 약하다고 나무라기도 했고, 자신의 핏줄을 받아주지 못하는 한국사회를 원망하기도 했고, 딸을 한국유학 보낸 제자신을 한없이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너희나라 돌아가”
“재일동포야? 말도 잘못하니 너가 할 역활은 없어”

도대체 내가 설 자리가 어디고 날 받아주는 자리는 어디인가? 재일 3세인 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설자리에 대해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고 부평초같다고 하지요. 한국유학을 실패하고 돌아온이 부평초에게 사랑의 손길을 건네준 일본인 친구들에 힘입어 딸은 4년의 세월동안 한걸음한걸음 재기의걸음을 해왔습니다.

딸은 지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시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진정 재일3세들은 부평초일까요? 딸의 할아버지는 1920년 후반에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왔습니다. 처음엔 어느 탄광에서도 일했다고 하는데, 나중엔 교토에 정착했습니다.

전 시아버지,시어머니 두분 얼굴을 뵌적이 없습니다. 여러 가족,친지들에게서 전해들은 얘기에 의하면, 시아버지는 매우 온화하시고 성실한 분이라고 합니다. 특히 손재주가 뛰어난 분이라, 틈틈이 그때당시 교또에 모여살던 동포들 부락에 불려다니며 결혼식등에서 사용하는 ‘마른낙지’의 거북,학만들기등을 해주었다 합니다.

시어머니도 생활력이 강하신 분이라 막걸리를 몰래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도왔다고 하고, 제 시숙님들도 교토에서 기모노 장인, 막노동 등 차별과 억압속에서도 그들의 삶을 성실히,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가끔씩, 교토의 공동묘지에 성묘를 가면 조선인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띄입니다. 그 이름들을 보는 순간 울컥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길 없이 올라옵니다. 이들은 왜 일본땅에 묻혀있는가? 이들은 이 일본땅에서 어떻게 살다 갔을까? 그들이 고향을 등지고 일본땅으로 들어오는 그 시대가 교토의 공동묘지의 먼하늘에걸려있는 듯, 먼 하늘을 보고 눈을 껌뻑이며 눈물을 추스립니다.

제 시댁의 고향은 경남 의령입니다. 분명히 뿌리가 있습니다. 도쿄지회는 지금 큰 꿈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민문연 회원들께서 보내주신 책을 일본학교에 기증할때, 일본어린이들이  그 내용을 대략이나마 알수있도록 지금 일본시민들과 한국인들이 힘을 합쳐 대략의 줄거리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일본인시민들은 지난 6월 23일 도쿄지회가 다른 단체들과 공동 주최한 ‘재일한국,조선인 그과거와 미래’라는 상영회, 강연회에 참여하여 재일3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들은 한·일간의 평화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힘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면서 이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일본학교에 한국도서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일본학교의 배타성은 크게 누그러 들고, 반면 이 세상엔 일본만이 아니고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구나라는 풍요로운 생각을 키워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아이들은 일본학교와 민족학교에 입학하는 비율이 8;2라고 합니다. 우리아이들이 일본학교에서더욱 당당하게 자신을 나타내는 데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도서가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합니다.

한편 여러분이 보내주신 도서중에 한권을 연극화 하려고 합니다(한국의 고전 ‘의좋은형제’) . 이 공연은 재일3세, 일본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 일본공연은 물론, 한국공연도 꿈꾸고 있습니다. 부디 이 꿈이 잘 되어 도쿄지회와 이 젊은이들이 한국공연을 가게된다면 부디 여러 회원님들께서 이 부평초 같은 아이들에게 큰힘을 주십시오.

‘너희들은 부평초가 아니다.너희들의 뿌리는 여기 이렇게 있단다’ 라는 뜨겁고, 커다랗고, 믿음직스런 “뿌리의사랑”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들이 모아주시는 그 사랑으로 이 아이들이 양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고 이들이 손잡고 나아가는 미래의 그 길목에 한·일간의 평화와 통일에의 가교가 놓여지도록 부디 우리회원들과 일본시민들과 재일동포들이 모두 모두, 아주 아주 굳건하게 이어지는 뿌리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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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회원께서 보내주신 도서에 한·일시민들이 모여 번역작업을 하는 모습입니다. 일본학교엔 이작업을 통해서 기증합니다.**







아래는 세계동화전시회와 세계그림책 읽어주기 행사입니다.우리회원이 보내준 한국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와 함께 공존하는 생각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지요.







▲ 스페인어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모습







▲ 세계동화전시회







▲ 꼬마들이 열중했어요,그리고 열심히 대답했고요


 


 


 한글로 자기소개…모두들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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