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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발간과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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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식지(2010년 4월, 제90호) 권두언에 실린 글로 전재를 허락해 준 김승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엮은이 주  


김승태·세움교회 목사








지난 해 11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친일인명사전』3권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일제 강점기에 어떤 형태로든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들의 행적을 정리한 것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는 이 사전이 국치 100년이 되기 전에 출간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것마저 내 놓지 못하고 국치 100년을 맞았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겠는가?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덮어 두고서는 ‘화해와 치유’를 말할 수 없다.


이 사전에는 개신교 지도자 56명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목회자가 42명이고, 나머지 14명은 평신도 지도자들이다. 목회자는 교파별로 장로교 26명, 감리교 13명, 성결교 1명, 구세군 1명, 조합교회 1명이다. 목회자들은 대


부분 교회의 부일협력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고,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는 교육이나 언론 등 다른 분야와 중복되는 인물들도 있다.


그러면 이런 쟁쟁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부일협력 행위를 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양심과 신앙심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인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첫째로는 일제의 정책과 강압이다. 둘째로는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대한 욕망이다. 셋째로는 개인적인 위기의식과 나약성이다. 넷째로는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의 결핍이다. 필자는 적어도 개신교 지도자들 가운데는 양심적으로 일제에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한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못해 협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하다보니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해방 직후 죄책 고백을 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도 서너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도 일제의 강압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였다. 다음으로 부정적이고 좋지 못한 기억을 망각하는 자기방어적인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였을 것이다. 셋째로는 해방 후 혼란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잘못을 고백할 기회를 상실하였다. 넷째로는 죄책고백을 할 경우 자신의 기득권 상실과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남긴 회고록들을 검토하면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아주 간단하게 당시 일반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기록할뿐 자신의 행위나 태도에 대해서는 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이러한 부일협력 행위는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그러한 행위가 세속 권력에 영합ㆍ추종하여 교회의 교회다움을 상실하게 하고, 교회의 사회 공신력을 떨어뜨리게 했으며, 교인들은 물론 다른 일반인들까지 잘못된 길로 내몰았다. 더욱이 그러한 행위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한, 일제의 침략 전쟁에 대한 협력 행위였다는 점에서 하나님 앞에는 물론, 우리 민족과 역사 앞에서도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실상의 정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이『친일인명사전』의 출간에 명백한 오류가 없는 한 그것을 인정하고, 책임을 나누고, 반성하고, 역사의 교훈과 경계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요 생각이다.


『친일인명사전』출간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정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근래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과거사 청산 작업은 과거사의 진상규명과 정리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진상규명과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그에 대한 평가나 반성이나 서로 다른 시각과 인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화해와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일제 식민지배하의 역사의 어두운 측면들까지 당당하게 밝혀냄으로써 이를 객과화·역사화하고, 이를 반성·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이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왜곡된 역사상과 역사인식을 바로잡고, 그것을 앞날을 위한 역사적 교훈과 경계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가 이 시기 한국교회사를 정리하면서 계속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 애가 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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