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친일인명사전의 의미

728









배수찬 울산대 교수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하여, 재일 언어학자 이연숙 교수님의 소개로 도시샤대학의 한 일본인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두 시간 정도 환담을 했는데, 한국어에 능숙해서 일본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연구실 책장에서, 발간된 지 얼마 안 되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분은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주로 사학자들이 집필한 것이니까, 아마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하셨다. 학자의 양심에서 나오는,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일본의 연구자가 친일인명사전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데서 나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충격받을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식민지 시기 한국사를 전공하고, 한국 내의 식민지 근대화론 논란에 정통한 학자다. 식민지사 연



구자로서 이 사전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선행연구 업적을 빠뜨리는 일은 학자의 태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우리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를 큰 자극으로 삼게 되었다.


어수선한 시국으로 이제 잊혀져 가지만, 작년 말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에 또다시 친일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이제 논란은 정치 영역으로 확대되어 학자의 손을 떠난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문학사 연구자로서, 논의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 것에 우려를 느끼던 참이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사회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심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저명인사들 가운데 경술국치 직후나 1937~45년 사이의 친일행적이 뒤늦게 드러나 유공자 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이 가끔 보도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 자신이 과거를 직시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그냥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인명사전들은 대체로 해당 인물의 이 시기 행적을 얼버무리거나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명백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삭제하기도 하고, 자료를 철저히 조사하면 쉽게 발견될 수 있는 간단한 사실조차 고인의 명예와 관련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면 덮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외면된 사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 매일신보, 경성일보, 총독부관보 같은 사료들을 없애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친일인명사전은 그러한 사실들을 인물 단위로 집대성한 것이며, 이로써 우리가 진지하게 풀어가야 할 하나의 과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친일인명사전은 주로 경술국치 전후와 중일·태평양전쟁 시기의 우리 모습을 참으로 어렵게, 우리 손으로 그려낸 일종의 자화상이다. 꼬박 64년이 걸렸다. 우리가 그 성과를 대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분들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요즈음 이 사전의 보급을 위해 노력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사전이 더 많이 읽히기 위해서는 당대 상황에 대한 역사 연구 성과를 알리는 일도 함께 추진해 주셨으면 좋겠다. 개정과 증보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친일’이라는 단죄의 느낌을 주는 타이틀을 버리고 <식민지 시기 인명사전> 정도로 순화하여, 당대의 친일하지 않은 인물들을 함께 다루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한다.<경향신문, 10.04.14>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