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단독] 일제강제동원, 마구잡이 아닌 맞춤형 징발-국민일보(07.08.14)

253

[단독] 일제강제동원, 마구잡이 아닌 맞춤형 징발
 



일제시대 총독부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요리사, 정원사, 심마니, 땅꾼 등 134개 직종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제가 마구잡이식 차출을 통해 조선인들을 군인, 단순 노무자 등으로만 배치한 게 아니라 분야별 필요에 따라 각종 기술자들을 맞춤형으로 징발해 노역에 동원한 것이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62) 교수는 14일 일제시대 미공개 자료인 ‘총동원 태세의 진전’이라는 책자를 최근 분석한 결과 조선 총독부가 134개 직종에 걸쳐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책자는 강제동원이 본격화된 1939년 조선총독부가 만들었으며 총 370페이지로 이뤄졌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일제강제동원규명위) 위원으로 활동중인 김 교수는 이 책자를 지난 3월 부산시립도서관에서 과거 자료를 정리하던 중 발견해 본보에 최초로 소개했다.

책자에는 ‘국민직업신고령이 내려져 (강제동원이) 실시되었다. 시국(時局·전시 총동원체제)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직업 134종에 종사하는자, 특수학교 졸업자, 양소소에서 일정기간 검정한 자’라고 명시돼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34개 직종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 군수사령부에서 일하는 봉제공, 군용납품 채소 재배자, 토목 미장이, 정원사, 용접공, 의료기술자, 해녀, 심마니, 땅꾼, 비행기 부품 및 제철 용광로 제조자, 선박수리공, 제지공장 기술자 등이 포함돼있다.

또 책자의 ‘총동원법과 전시체제의 강화’라는 단락는 일제가 연령까지 구분해 징용에 동원한 사실을 보여준다. 해당 단락에는 ’16세 이상은 강제징용을 하고, 이하는 특수요원으로 기술을 가르쳐 양성하라’는 내용이 기록돼있다. 김 교수는 “일제가 아무렇게나 조선 민간인들을 동원한 게 아니라 특수한 기술의 각종 직업인들을 주도면밀하게 색출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도서관에서 함께 발견한 책자 ‘조선징용문답’ 역시 일제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강제동원에 발벗고 나섰는지를 보여준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2월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이 책자는 징용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다. 앞부분은 공무원과 조선인의 문답형식으로 강제징용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징용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무원은 “천황폐하를 위해 국가의 명령에 따라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한다. 뒷부분은 동원의 근거가 되는 국민징용령 법령이 정리돼 있다. 김 교수는 “이 책은 일제가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징용에 끌어내기 위해 만들었다”며 “총독부는 물론 각 부처에 배포돼 광범위하게 활용됐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본보가 입수한 일제강제동원규명위의 미공개 자료에도 50여종의 각종 직업인들이 강제 동원된 사실이 확인된다. 규명위가 2004년 11월부터 지난해말까지 실시한 1차 강제동원 피해신고 접수 결과 당시 주업종이었던 농업 외에 전기공, 교원, 신문기자, 표구제작자, 운전수, 숫돌공, 보일러공 등 다양한 직종인들이 징발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