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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성대경 위원장 “반민 행위자 증거대로 처리…성역 없다”-경향신문(0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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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성대경 위원장 “반민 행위자 증거대로 처리…성역 없다” 


 
해방 62주년을 맞은 한국사회는 아직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 해방 직후 제헌의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조직해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섰지만 친일파의 공작으로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와해됐다. 그 뒤 60여년이 지난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친일 청산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로 출범 3년째. 8·15를 앞두고 만난 성대경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위원장(75)은 “시간이 많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친일 반민족행위를 증언해줄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사회에서 더 지체하다가는 민족 개념에 근거해 과거사 청산 작업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위원장은 4년 임기 중 2년을 마치고 그만둔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의 뒤를 이어 지난 6월29일부터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천 인근 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이뤄졌다.



스스로 “저는 숨어있는 사람입니다”라고 할 정도로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1932년 경남 창녕 출생으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퇴직 후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의 고문을 맡았다. 은사인 청명 임창순의 호를 딴 청명문화재단 설립에 참여하고, 재단 기관지 ‘통일시론’ 편집위원을 거쳐 최근까지 이사장을 지냈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설립 후 비상임위원으로 일해오다 지난 6월 강만길 위원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저서로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한국사회주의 운동 인명사전’(이상 공저) 등이 있다. 전직 방송인인 부인 임국희씨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취임한 지 한달여가 됐는데, 느낌이 어떤지요.


“위원회 출범 초기에는 국민들의 관심도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관심이 그때보다 훨씬 희박해진 듯합니다.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랄 뿐입니다.”


-위원회 활동의 의의를 말씀해주시죠.


“위원회의 의미는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제 입장에서 볼 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추진된 반민특위 활동이 정치적 이유로 중도에 끝나 이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아쉬움은 어느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60년이 지나 다시 그 일을 하게 됐는데, 역사학자들로서는 충분히 흥분할 만한 사건이지요. 워낙 오래된 일을 다시 들춰내는 일이기 때문에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근·현대사 전공자를 한 자리에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고요.”


-위원회의 활동 시한 4년 중 2년이 지났는데, 그간 활동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위원회의 활동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1904년부터 1919년 3·1운동까지를 제1기, 1919년부터 중·일전쟁이 일어났던 1937년까지를 제2기, 중·일전쟁 개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를 제3기로 잡았어요. 제1기 작업에서 ‘을사오적’ 등 106명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최종 결정했고, 지금은 제2기 반민족행위자 심의를 끝낸 230명의 친일 여부를 연말까지 확정할 것입니다. 숫자적으로는 일이 많이 진척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간 축적한 노하우로 남은 2년간 제3기까지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일파 범위를 너무 축소하지 않았나 하는 여론도 있는데요.


“그런 건 아닙니다. 초창기 속도가 느린 것은 자료 문제, 인력을 조직해 투여하는 방식이라든가, 이런 부분의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본궤도에 올라 빠르게 진행될 겁니다. 문제는 특별법이 가진 한계입니다. 우리 작업은 법 규정에 의해 친일파를 찾아가는 과정인데요. 증거 위주로 적용해야 합니다. 학문 연구에서 친일파라 하면 그런 구속을 안받죠. 일제시대 총독부, 경찰관계 종사자들을 전부 친일파다 하면 몇만명의 이름을 죽 댈 수 있죠. 적어도 숫자면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친일파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관건은 어떤 특정 인물이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탄압했다는 증거를 대야 합니다. 또 법의 목적 자체가 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입니다. 그게 옛날 반민특위와는 다른 거죠.”


-자료 발굴이나 조사 과정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법 조항을 이행하자면 많은 자료를 발굴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러나 시일이 많이 지나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현재로선 국내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았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자료라면 당대의 신문, 권위있는 잡지, 전기, 총독부 관보 등이 있어요. 이것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해 활용하고 있어요.”


-해외자료 조사는 어떻습니까.


“조사원들이 직접 나갑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경우 일정 시일이 지나면 자료 공개를 하기 때문에 자료 확보가 쉽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련 자료가 많은 게 중국 쪽인데요, 중국 당국이 전에도 자료를 시원하게 공개하지 않았지만 특히 동북공정 이후에 그런 자료를 선뜻 내놓질 않아요. 그래도 중국 교포 등을 통해 상당 부분 확보했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사람들의 반민족행위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고요.”


-선정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법에 의해 모은 자료를 검토해 일단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합니다. 그리곤 가족들에게 통보합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매스컴을 통해 정부기관 공고 형식으로 냅니다. 30일 동안 이의신청을 받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선정됐다는데…’라며 전화로 문의하는 사람도 있고, 저희들 조서를 열람하러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민원실에서 자료를 다 보여줍니다. 가족들은 왜 잘못됐다고 주장하는지 반박 증거자료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뒤 다시 공고를 합니다. 그게 유족들에게 통보되면 그때 가서야 최종 결정이 이뤄집니다. 그 기간이 6~9개월가량 됩니다. 가족들 중에서는 법정 소송을 벌이기도 합니다. 제1기에 확정된 106명 가운데 2건의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몇몇 인물에 대해서는 위원회 출범 전부터 논란이 있었는데요.


“몇몇 인물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논란이 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제3기에 속해 있어서 아직 본격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습니다. 반민 행위자로 결정되는 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성역도 없습니다. 증거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처리될 것입니다.”


-올해 대선 결과에 따라 위원회 활동에 영향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텐데, 저는 견해가 다릅니다. 이 위원회가 발족된 것은 당시 여야 합의에 의해 제정된 특별법에 따른 것입니다. 사실 정권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위원회는 존속돼야 마땅하고 또 그러리라고 봅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위원회 활동을 구속하는 등의 우를 범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위원회의 과거사 청산 활동에 대해 정치성을 갖고 보는 것은 반대합니다. 우리 민족이 60년간 이루지 못한 하나의 숙제를 하고 있는데, 누가 반대하고 방해하겠습니까.”


-국내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습니다. 민족이란 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민족정기를 세운다는 취지의 위원회 활동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월이 변해 우리 민족도 순수 단일민족, 단군의 자손 이런 얘기 하는 시대는 지나갔죠. 이게 급속하게 우리 앞에 닥친 문제인데, 사실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민족적 차원의 문제를 하루 빨리 청산하고 갈 길을 떠나가야 합니다. 저희 활동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 가진 분들도, 이걸 다음 세대까지 가져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민족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우리 역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 작업이 정말 중요합니다. 털어낼 것은 빨리 털어내자는 거죠.”


-시대가 바뀌며 역사교육 방법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지요.


“과거 역사교육이 민족의 우수성이나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배타적 애국심을 바탕으로 이뤄졌는데요. 이제 역사교육은 민족들이 상호 협력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단계에 왔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의 얼룩진 역사에 대한 청산없이 세계 역사에 얼굴 내미는 것은 자기 모순을 감추고 거짓 역사로 가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역사교육이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왜곡됐던 것은 드러내고 반성하면서 가야 부끄러움 없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2년후 위원회가 해산한 뒤 위원회 인력이나 자료 등의 활용 방안이 있는지요.


“저희 위원회 단독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많이 생겨난 유관 위원회들의 작업 과정에 유익한 자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정부 차원에서 자료관을 세운다거나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기념적 가치도 있지만 연구 자료로서 가치도 있어요. 자료관을 세우거나 국가기록원에 별도로 자리를 마련하거나 해야 할 듯합니다.”


-중국이나 북한은 제대로 친일청산을 했고, 유럽도 나치청산을 했는데요, 해외사례 연구도 하고 있습니까.


“마침 위원회 내에 그런 분야 전공자가 몇분 있습니다. 친일파 조사와 별도로 해외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도 성과를 낼 것입니다. 연말에 각국의 과거사 청산 관련 법령집을 엮어내고, 이후 각국의 청산 사례집과 과거사 관련 연구소·기록관 등에 대한 자료도 낼 것입니다.”


-8·15를 앞두고 하실 말씀은.


“어떤 무력적 세력이 한 민족을 강압 지배할 경우 민족 내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극렬하게 저항하는 그룹과 자기 영달을 위해 반민족적 행위를 하는 그룹으로 나뉘죠. 어느 제국주의 세력이든 ‘디바이드 앤드 룰(분할통치)’이라고 해서 둘을 갈라놓죠. 거기 들어가 놀아난 세력이 반민족행위자들이고요. 민족이 다른 민족에 의해 억압받는 상황에서 왜 그렇게 분열하느냐 하는 것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역사적 진상을 가려놓는다면 후손들에게 하나의 교훈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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