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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칼럼]일본 수치심마저 버리려나?-내일신문(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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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칼럼]일본 수치심마저 버리려나? 



‘일본군 위안부’하면 개인적으로 일본인 두 사람이 떠오른다. 와세다대 출신으로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한 야마타니 데쓰오라는 기록영화감독과 일본에서 교사를 하다 연세대학교 외국어학당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던 다카하시 쥰이치라는 인물이다. 일어 강사는 1979년 언론사 재직시절에, 영화감독은 80년 말 백수시절에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나보다 2~3년 위였다.

신촌의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난 야마타니씨와는 서툰 일본어와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한국 방문목적이 일본군위안부 실태 취재였음을 알았다. 그는 여기저기 수소문해 위안부 경력 할머니 등의 증언을 담는 데 성공했다. 당시 국내 언론조차 시도하지 않던 일이다. 위안부 출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과거 일본의 잘못을 들춰내고자 한 것이 그의 기획의도였다. 그것이 전후세대 일본 지성의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의 상을 받고 언론의 조명도 받았다.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지만

나에겐 충격이었다. 피해국은 역사적 비극을 묻어두는데 가해국이 치부를 들춰내서다. 이것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일본어 강사는 ‘황군의 위안부, 정신대’라는 책을 나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강제 동원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고발한 일본어로 발행된 책이었다. 내 관심사를 알고 고국에 다녀오는 길에 사왔다고 했다. 나는 이 두 일본인을 통해 전후세대 일본의 양심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5년 이상 흘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학계에서 민간으로 전파되면서 1990년대 들어 국내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1992년에는 정부가 피해자신고센터를 열고 피해자에 대해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과 관리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1992년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미약하나마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한·일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한국, 대만 등 아시아 6개국 시민 단체들의 잇단 문제제기로 1992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의 토의 과제로 올랐다. 유엔 인권위는 ‘전쟁 중 군대 성노예 문제 관련 조사보고서’를 통해 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책임 하에 진상을 밝혀 공식 사죄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도 권했다. 보고서는 피해자가 고령이므로 생전에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조했다. 유엔 인권소위원회도 ‘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맥두걸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일본의 배상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배상은 고사하고 역사적 사실조차 부인하거나 왜곡하려 애쓰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지난달 말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와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이런 사실을 교육시킬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 결의안은 39 대 2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 미국과 일본의 밀접한 외교 관계를 생각할 때 일본 정부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결의안은 7월 본회의 통과가 예상된다.

그런데 일본 자민당 내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은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비난 결의안 처리에 반대하는 성명을 채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모임은 미일 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해 채택을 보류해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7월 미 하원 본회의 결의안 채택 이전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에게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국가건 부끄러운 과거와 역사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과거보다 더 수치스런 일은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수치심은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나

얼마 전 국내 한 텔레비전 방송이 외국 여성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성희롱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여기서 한 일본인 유학생이 재학 중인 대학교 교수의 성희롱 사례를 발설했다. 그 후 관련 대학은 즉각 사실 확인에 나서 해당 교수(강사)를 파면했다. 해당 강사도 성희롱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강사의 행위는 분명 지탄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남으로써 인간으로 지켜야 할 수치심만은 지켰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전쟁 동원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끝내 부정하며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일본의 정치인들과는 대비가 된다.

 – 언론인,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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