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씨 “역사를 모르는 건 미래를 모르는 것”
“아주 까마득한 옛날, 곧 200만년 전쯤의 지구에는 곳곳에 두꺼운 얼음이 덮여 있었다. 이를 빙하시대라 말한다.”
최근 출간된 이이화씨의 ‘역사’(열림원)는 이렇게 시작한다. 빙하시대로부터 출발해 1987년 6월항쟁까지 방대한 시간을 아우르는 책은 500쪽이 넘는 단권 문고본이다. 모름지기 역사는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는 이씨의 평소 소신처럼 새 책 ‘역사’에는 그의 고집이 엿보인다.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에 사진 한 장 없이 텍스트로만 한국사를 기술했다.
입말이 묻어나는 특유의 이이화식 문체도 여전하다.
“친구가 평생 역사책을 쓴다 하면서 쉽고 재미있는 한 권짜리 역사책을 못쓰느냐고 꾸지람을 하더라고요. 기존에 냈던 한국사 이야기가 방대해서 일반 독자들이 독파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쉽게 엮은 한 권짜리 책을 써보기로 했죠.”
최근 역사교과서 문제와 동북공정, 종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창 역사기술의 중요성이 대두하는 시점 또한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은 특히 발해사 부분과 조선후기부터 해방에 이르는 근현대사 서술에 매달렸다.
“한국사를 그저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입장에서 편협하게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패권주의, 중국의 중화주의가 여전한 시대에 자주적으로 역사를 인식해야 현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죠.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정체성뿐 아니라 그 사회의 방향성, 미래를 모르는 것이에요.”
‘역사’는 이씨가 구리 아치울을 뒤로 하고 거처를 파주 헤이리로 옮긴 뒤 처음 나온 책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그만두고 역사 공부에 매진하고자 잠실에서 구리 아차산 기슭 아치울로 이사간 것이 1981년이다. 그곳에 살며 역사기행을 꾸려 전국을 다녔고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동학농민전쟁 등 민중사의 관점에서 한국사에 접근했다. 방대한 22권짜리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역시 아치울에서 탄생했다. 그뿐인가. 역사와 한학을 배우겠다는 이들이 몰려들어 연일 집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그에게 한문을 배우다 아치울에 정착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26년간 살던 아치울을 떠나며 아쉽지는 않았을까? 이씨는 손사래를 친다. “2004년에 ‘한국사 이야기’를 완간하고 나서 3년간 외부활동으로 바빴어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며 고구려역사문화복원회 이사장에 서원대 석좌교수까지…. 게다가 여기저기 강연 요청 등으로 글을 쓸 시간이 없었어요. 글쟁이가 글을 써야 살죠. 외부활동을 줄이고 글 쓰는 데 전념하고자 헤이리로 들어 왔습니다.”
서울과는 거리를 두게 됐지만 문화예술인들이 몰려 사는 이곳에서도 그를 찾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곤혹스럽단다. 게다가 대선정국이라 정치권에서도 찾는 이가 많아 요즘엔 아예 전화도 꺼둘 때가 많다고 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요즘 시사 현안들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난 경직된 민족주의자는 아니에요. 철저히 인간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권 탓이 크다고 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봐요. 그렇지만 그로 인해 소외받는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장을 해줘야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이 다시 한번 집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고희를 맞은 그는 앞으로 두 가지 저술에 매달릴 생각이다. 하나는 역사의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조명하는 자서전이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전쟁에 관한 책이다. “동학농민전쟁은 토지제, 신분제, 남녀차별 등 전근대적인 사회구조를 바꾼 일대 혁명이었어요. 그런데도 그 중요성을 일반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근현대사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요기사
이이화씨 “역사를 모르는 건 미래를 모르는 것”-경향신문(07.07.19)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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