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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령 라바울’ 위안부 동원 “일본 해군성이 명령했다”-쿠키뉴스(0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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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령 라바울’ 위안부 동원 “일본 해군성이 명령했다” 


 


[쿠키 지구촌] 2차대전 중 뉴기니의 호주령 라바울은 일본군의 점령후 2년간 3천명의 일본 및 한국인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는 성노예의 현장이었으나 호주는 이를 외면해 왔다고 호주대학 교수가 지적하고 나섰다.

23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에 따르면 호주국립대학의 태평양역사학 명예교수인 행크 넬슨 박사는 대학에 제출한 논문을 통해 호주인들은 우연인지 고의적인지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에 라바울의 증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넬슨 박사가 수집한 증거자료에는 일본인 의사들의 회고록, 라바울에서 근무했던 일본인들의 회상, 라바울 위안소에서 일했던 한국인 여성의 증언, 일본군 및 호주군 포로들의 진술이 포함돼 있다.

넬슨 박사는 그동안 호주에서 나온 보도들은 당시 호주의 위임통치령이었던 라바울이 1942년 일본군에 점령된 후 2년 동안 위안소들이 운영된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단지 위안부와의 관련성은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러프-오헤른 할머니의 사례를 통해서만 다루어 왔다고 지적했다.

2차대전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던 네덜란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오헤른 할머니는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1960년 호주로 이민왔으며 1992년 유럽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침묵을 깨고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고 나섰다.

헤럴드 지는 넬슨 박사의 논문이 지난주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인한 일본 의원 44명의 전면광고로 위안부 논란이 재연된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넬슨 박사는 일본군이 1942년 1월 하루 만에 라바울을 점령하면서 호주군 등 1천명을 포로로 잡고 톨 플란테이션(Toll plantation)에서 160명을 학살했다면서 1945년 라바울 탈환을 전후하여 호주는 자국군 포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만 신경을 썼고 위안소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군 포로들은 당시 라바울에 많으면 20개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추산했으며, 일본군에 의해 구금되었던 라바울 타임스의 편집인 고든 토마스는 일본군의 침공후 3주 안에 3000명의 “작은 숙녀들”이 와서 “더할 나위 없는 압박” 속에 일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적어도 일부 한국인 여성은 공장이나 플란테이션에서 일할 줄 알고 왔다가 라바울 위안소로 끌려오게 됐는데 일본인 의사 이구사 켄타로는 위안부 여성들이 “일본해군성 차관(vice-secretary of the Navy Ministry)인 사와모토 요리오 해군중장의 명령에 따라 전선으로 보내졌다”로 밝힌 것으로 넬슨 박사는 전했다.

넬슨 박사는 “라바울에서 자행된 범죄의 극악성은 측량하기 어렵다”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이를 알면서 자의로 라바울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할 것이며, 실상은 2천명 이상의 여성이 밤낮으로 남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극히 혹독한 형태의 매춘에 속아서 강제동원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여성들이 부상과 감염증에 시달렸으며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갔다”면서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라바울로 보내진 여성들의 사망률은 2차대전에 참전한 어떠한 호주군 부대보다도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호주온라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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