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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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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연수(태평양보추협 활동가)


 


  2007년 5월 11일 오전 8시 30분. 탑골공원 앞으로  일제하 강제동원피해자  유족들이 한 명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생존자 어르신들도  한 분 두 분 모습을 나타내셨다.  이 날은 5월 가정의 달을맞이하여  생존 피해자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외로 야유회를 떠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소풍을 떠나는 어린아이마냥 표정이 밝아보였다.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일본군 강제연행‘위안부’할머니들이 계시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일제강점기 군인과 군속,  노무자로 끌려가야했던 청년들과 일본군위안부로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소녀들이 60여년이 지난  지금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자리를 함께 했다.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은 울음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암울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휘말려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비참한 경험을 했던 이들,  빼앗긴 조국 끌려간 민중의 고통스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의 만남,  그 자체가 지울 수 없는역사적 진실을 생생히 증언해주고 있는 듯 했다.

 소개가 끝난 후 준비한 떡을 자르고 선물을 증정하는 간단한 행사를 진행하였다. “다음에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미팅 자리 좀 만들어봐야겠네” 라는 ‘나눔의집’ 사무국장님의 말씀에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사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할머니 한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그 당시 ‘남양군도 라바울’이라는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동병상련이었을까? 할아버지는 ‘라바울은 일본군 기지가 있었던 요새로  연합군과 격전이 있었던 곳인데,  지옥 속에서 살아남았다니 천만다행이고 고맙고 나중에또 만나자’며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으셨다. 전체기념사진으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간 곳은 도자기 축제와 쌀이 유명한 경기도 이천.  사전에 예약한 식당에 도착해 몸에 좋다는오리주물럭과 한방오리백숙을  먹었다. 식사 후 준비한 떡을 자르고 선물을 증정하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들을 위한 유족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어머니 은혜’를  ‘부모님 은혜’로  개사하여 불렀는데, 순간 그자리는 유족들의  눈물바다로  바뀌었다. 한평생 마음속으로  그리워해야만했던 아버지. 그토록 부르고싶었던 아버지. 유족들에겐 ‘아버지’라는 존재는 상상 속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참가한유족들 중에 한 분은  어르신들을 보며 ‘아버지’ 생각이 나서  본인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쩌면 이날만큼은 서로에게 아버지가 되고 아들딸이 되는 아주 특별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어르신들은 물론 유족들도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만남이기에 더욱 특별한 하루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처가 나면 제 때 치료를 해야 나중에 덧나지도 않고 흉터도 남지 않는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되고 고통의 골만 깊어져 갈뿐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과거사의 아픈기억이 치유되지  못한 채 현실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나누려고 애쓴다면, 역사의 상처도 한결 빨리 아물게 될 것이다.


 








야유회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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