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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디자인한 사람들 다시 그들을 주목한다-부산일보(0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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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디자인한 사람들 다시 그들을 주목한다



□ 필로디자인 / 김민수   
 
 
서점에서 ‘필로디자인'(그린비/김민수 지음/1만8천900원)을 고를라치면 두 가지 이유로 당혹스럽다. 하나는 ‘필로디자인(Philo Design)’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신조어 같은데,무슨 뜻인지 지은이 자신도 책 속에 명확히 밝혀놓지 않았다. 단지,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이 철학(philosophia)이 되었듯,디자인(design)에 대한 사랑(philos)을 글로 읊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디자인에 대한 막역한 꺼려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우선 ‘김민수’라는 이름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질타하고 선배 교수들을 싸잡아 ‘심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1998년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이후 6여년 동안 투쟁해 결국 복직을 쟁취해 낸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그런 그가 “다시 사람에 주목한다”며 내놓은 책인 만큼 ‘디자인’과 ‘사람’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심정일 터. 책에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사람은 22명의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을 선별해 고른 이유에 대해 그는 “삶의 궤적과 철학은 다 다르지만 한 시대를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시대를 디자인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를 풀어내기 위해 지은이는 22명의 인물들 중 영국 출신의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를 제일 앞에 내세웠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상품 치장술 정도의 역할에 몰두하는 오늘날 한국 디자인의 위상과 달리,모리스에게 디자인은 인간 삶을 구제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결국 디자인의 문제는 단순히 조형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를 조직하고 개혁하는 범위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 美 피츠버그 명물 ‘PPG 본사’ 빌딩. 건축 디자이너
                                     필립존슨의 작품으로,빌딩에 유리외장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고딕풍의 중세 건축 양식을 조화롭게 적용했다.
 


책은 모두 3개 부로 나뉘어져 지은이의 그같은 생각을 보여준다.

1부의 대상은 모리스를 비롯해 바우하우스라는 근대 디자인의 규범을 완성한 발터 그로피우스,중국 대문호이자 근대적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루쉰,오늘날 디지털 시대에서나 어울릴 법한 사고와 발상을 보여준 일제시기 시인 이상 등 ‘근대의 초입에서 근대 너머를 사유’했던 인물들이다.

2부는 ‘기술로 기술 너머를 사유’했던 디자이너들을 보여준다. 미국 산업디자이너의 시조 헨리 드레이퍼스,디자인 문화운동 집단 멤피스의 창시자 에토레 소트사스,활자에 감정을 부여한 허브 루발린 등이 그들이다.

마지막 3부는 20세기 미국 건축의 대부 필립 존슨,전후 일본의 자화상을 전통 미술인 니시키에와 미국의 팝아트 기법을 혼용해 표현한 요코 다다노리,누각이나 정자 등 한국 전통 건축물의 물아일치(物我一致)적 흥취를 되살려낸 조성룡 등을 통해 ‘역사로 역사 너머를 사유’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을 통해 지은이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뜻밖에도 그는 책의 앞부분에 아래와 같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회적 부조리와 폭력에 대해 한국의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 성공할 순 있어도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만일 한 개인 디자이너의 역할이 진정한 시민의 모습으로 실천된다면,비로소 디자인을 단순히 황금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공의 선 차원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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