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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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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우표발행판매금지_가처분신청서 내려받기
100년우표발행감사청구서 내려받기
병원100년감사청구서 내려받기

















민족문제연구소는 3월 13일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의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내면서 반대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그리고 14일에는 정보통신부와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하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과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경북대병원 역시 일제의 대륙침략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 일본인 의사단체인 동인회 주도로 만들어진 동인의원을 자신의 연원으로 삼아 개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하였으나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우정사업본부의 기념우표 발행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우정사업본부 김재홍 우표팀장은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우표 발행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우표발행심의위원회가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과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교수신문 최신호에 따르면 한국 근대의학의 뿌리 논쟁과  관련한 학술 기고문을 서울대병원 측에 요청했으나 서울대병원 측은 ‘불필요한 논쟁’에 휩싸일 것을 우려해 거부했다 한다. 혈세 13억원을 들여 널리 대한의원의 역사를 알리려는 마당에 왜 공론의 장에서의 토론을 거부하는지 궁금하다. 서울대병원 측은 과연 무엇을 그토록 숨기고 싶은 것일까. 한편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한 서울중앙지법은 3월 16일 오후 4시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신문을 벌일 예정이어서 사법부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 들인다면 황우석 교수 우표 발행 취소에 이어 두번째로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되는 것이다. 아래의 교수신문 관련 기사는 여인석 교수와 교수신문 측의 허락을 얻어 전재한다. <편집자 주>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 `일제 식민통치 미화’를 이유로 정보통신부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해 파장이 예상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13일 감사원에 서울대병원과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를 대상으로 한 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을 대상으로 한 감사 청구 사항은 ▲ 기념사업의 역사적 정당성 검토 여부 ▲ 내외의 여론 수렴 여부 ▲ 예산집행 적정성 등 세 가지 항목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감사청구서에서 “서울대병원이 연원으로 삼는 대한의원은 일제 통감부가 조선인 회유책의 일환으로 설립했다”며 “대한의원 설립은 당시 대한제국이 추진하던 자주적 근대 의학의 싹을 말살하고 통감부가 통제하는 식민지 의료체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오는 15일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할 예정인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도감사를 청구했다.














관련 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대한의원 기념 사업은 식민 통치 미화’(YTN, 07.03.14)
민족문제硏 “서울대병원 ‘일제 미화’…감사원 감사 청구”(프레시안, 07.03.14)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 日식민통치 기념하는 것”(노컷뉴스, 07.03.14)
친일 논란 속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 우표’ 발행(디지털 데일리, 07.03.14)
일제미화 논란속 대한의원 기념우표 발행 강행(쿠키뉴스, 07.03.14)
민족문제硏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 감사 청구(경향신문, 07.03.14)
대한의원 기념우표 ‘일제 미화’ 논란(쿠키뉴스, 07.03.14)




연구소와 박형우 연세대의대 동은의학박물관장, 여인석 연세대의대 교수, 이재명 변호사 등은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일제 통감부가 주도해 대한제국이 일본 돈을 빌려 대한의원 같은 기구를 무리하게 만들게 함으로써 같은 해인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됐다”며 “국채보상운동 100주년과 대한의원 100주년을 동시에 기념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관계자는 “대한의원은 통감부 주도로 설립돼 일본인이 병원 운영권을 장악하는 등 식민지 의료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는 가슴 아픈 역사적 측면이 있지만 대한제국에 의한 자주적 의료 근대화 사업의 성과라는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며 “역사적 교훈과 자산은 부정적인 측면도 냉철히 직시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은 15일 오후 4시 대한의원 본관 앞에서 서울대 이장무총장, 유홍준 문화재청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의원 100주년ㆍ제중원 122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연합뉴스, 07.03.14>

















































 



<관련 기사> 


 


교수신문 박상주 기자


 


 











 



 


 


 


 


30년이 넘은 논쟁이다. 서울대병원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간의 제중원 기원 논쟁이 보다 첨예해지고 있다. 제중원이 조선 사람들을 진료대상으로 한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이었다는 점에서 두 병원 간의 논쟁은 한국의사학의 핵심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본지는 제중원 논쟁 기획을 두고 서울대병원 쪽의 입장에 대한 기고를 평등하게 요청하였으나, 서울대 병원은 ‘불필요한 논쟁에 휩싸이는 것이 문제’라며 기고를 완곡히 거절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쪽의 기고만을 싣게 되었음을 밝힌다.











서울대 병원은 오는 15일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122주년’ 행사를 가진다.  이에 앞선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한국 근대의학의 탄생과  국가’라는  주제로  ‘제중원  122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명철 서울대병원 병원사  연구실장은 올해 2월자  <서울대학교병원보>를  통해 ‘대한의원과 제중원을 서울대 병원이 재조명하는 것
’은 서울대 병원이 가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우리의 소명의식에 따른 것”이라며 기념행사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7일 심포지엄을 열고 ‘연세의료원 120년 기념 화보’를 펴내면서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제중원이 세브란스 병원의 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형우 연세의대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제중원은 미국 북장로회가 운영한 세브란스 병원의 역사”이며 ‘서울대병원이 억지 주장으로 제중원을 자신들의 역사로 기념하려고 한다’고 반박했다.

두 병원 사이의 ‘광혜원 뿌리찾기 논쟁’은 1983년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10년 뒤인 1993년 서울대병원이 <서울대 병원사>를 발간, 서울대 병원을 “우리나라 최초 국립의료기관”으로  자인하면서 1899년의 ‘내부병원’을 서울대병원의  모태로 내세워 논쟁은  재점화 됐다. 서울대의 주장은 1997년 8월 황상익 서울대 의사학 교수가 <서울대학교병원보>에  ‘광혜원’에 관한 글을 연재한데 이어 9월 30일 백만기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병원연혁에  관한 좌담’으로  이어졌다.  당시 좌담에 참석한 신용하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광혜원의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서울대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 모두의 기원으로 삼을 수 있어 두 병원이 형제처럼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언급, ‘병원의 조상은 대학병원 당국과 교수들의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칫 주요 대학 간의 자존심 경쟁으로 비춰지는 제중원 논쟁은 그러나, 醫史學界 내의 연구의욕을 발양시키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학회는 주로 서울대와 연세대 의사학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 학회지<醫史學>을  통해 제중원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황상익 교수가 학회장으로 있는  대한의사학회는 1947년 창립된  후로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다가 1991년 학술대회를  다시 개최하기 시작했고, 1992년부터는 학회지를 창간했다. 2002년 학회지는 ‘Medline’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들의 논쟁 지점은 △제중원의 애초 설립 취지 △제중원-정부 관계 △제중원-광제원 관계로 크게 3가지이다.

제중원 설립이 美 공사관 의사 알렌의 설립의지가 주요한 지,  당시 국립(왕립)병원을 가지고자 했던 조선 정부가 알렌으로 하여금 설립토록 한 것인지가  주요 논쟁지점이다. 또 이에 대한 사료가 선교사, 미국, 조선 어느 것에 편향되어 있는지에 대한 논쟁 등이 있다.

학회지를 통해 논쟁이 이어져  한국 근대 의학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이광린은 1885~1894년









<조선의 근대 서양식 병원 간략사>


제중원 설립 전 조선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과  설립 이후 상황.  1894년은  견해차이가 있어 병기하였음.

△1877.2.10.(음력) 日 해군의관 야노, 부산 濟生醫院 개원.
△1880. 원산 生生醫院.
△1883. 한성 京城醫院, 인천 日本醫院.
△1884. 알렌 입국. 12.4. 갑신정변에 민영익 치료.
△1885. 廣惠院 설립, 12일 만에 濟衆院으로 개칭.
△1886.3.29. 알렌, 학생 16명으로 제중원에서 의학교육.
△1887. 알렌 출국. 헤론이 넘겨받음.
△1890. 헤론 사망. 1891. 빈튼이 이어받음.
△1894. 에비슨 제중원 넘겨받음. / 제중원 없앰.
△1899. 조선 정부, 內部病院 병원 만듦.
△1900. 내부병원을 廣濟院으로 고침.
△1904. 세브란스 기부로 남대문 밖 세브란스 건설.
△1905. 광제원 관제 개편. 제중원 건물 및 대지가 광제원에 통합.
△1907. 광제원을 대한의원으로 개칭.
△1908. 조선 최초 면허 의사 배출.
△1910. 대한의원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 개칭.
△1928. 경성제국대학 부속의원으로 개편.
△1946! . 국립서 울대학교 병원.

※출처: <醫史學>, 대한의사학회


 














관련 웹페이지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 우표발행 계획(인터넷 우체국)


 


사이의 제중원 운영에 조선정부가  주체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밝혔고… 이상의 연구들로조선말기 우리나라 사회에서 벌어진 조선인, 일본인, 서양인에 의한  의학과  의술 활동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각각 다르다…조선인이 주체가 된  근대  보건의료 활동이 상당히 존재하였다.”(‘조선말기(1876-1910)근대보건의료체제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  신동원 과기원 교수, 의사학, 1996.)거나, “1894년 조선 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선교부에  넘김에 따라 조선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적인 대민의료기관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구리개 제중원 건물과 대지의 반환과정’,  여인석 등, 의사학, 1998.)등의  주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신동원 한국과기원 교수(과학기술사)는 본인이 “중립적일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 논쟁을 “근대 국가 기관의 명칭을 현재의 기관 등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연구 주제로 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교수신문, 07.03.09>


 














“서울대병원史=한국의학史” 아니다
제중원 논쟁>>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측 입장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100주년·제중원122주년기념행사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한동안 잠잠하던 제중원 논쟁에 불을 댕겼다.  제중원은  1885년 알렌의 제안에 따라 조선정부가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병원으로 건물과 운영비는 정부가 지원하고 의료진은 선교부에서 파견하여 운영되었다. 1894년 제중원의 운영권은 선교부로 이관되어 온전한 선교병원으로 재조직되었고 1904년 세브란스 병원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서울대병원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선교부로 이관되기 이전 9년간 제중원은 조선정부 소속이었으므로  오늘날의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의 뿌리도 된다는 것(공동뿌리설)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 주장의 문제는 먼저 서울대병원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국립병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국립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각 지방의 국립대병원, 국립의료원 등도 모두 제중원을 자신의 기원이라 주장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사 속에 등장한 국립의료기관은 제중원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국시대 이후 지금까지 국립의료기관은 항상 존재했다. 따라서 정말 국립의료기관의 뿌리를 찾고 싶다면 제중원이 아니라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다.

더 큰 문제는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상징적’ 기원이 아니라 ‘실제적’ 기원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역사에 대한 무리한 해석과  왜곡에 있다. 사실 서울대병원을 제중원과 ‘실제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극복해야할 난관은 한두 개가 아니다.  먼저 서울대의 직접적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제대와의 관계 설정이다. 서울대학은 공식적으로 경성제대와 관계를 끊고 1946년을 출발점으로 잡아 2006년 개교 60주년 행사를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제중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다 보니 눈치 보이고 부담스럽지만 경성제대의 역사를 떠안는다.  그런데 경성제대는 1924년에 설치되었으므로  그 이전은 경성의전의 역사로 갈아타야 한다. 이후는 비교적 순탄하게 경성의전과 연결된  총독부의원을 통해 대한의원에 이른다. 다만 걸리는 문제는 대한의원이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의해 일본군의총감이 책임을 맡아 설립한 식민지 의료기관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여기서 다시 대한의원 설립 당시 통폐합의  대상이  된 광제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거기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을사늑약 이전까지 광제원은 한방병원이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광제원은 1899년에 내부병원으로 시작되었으므로 어렵게 끌고 온 물리적 소급도 1899년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물리적 간극을 돌파하기 위해 시도되는 상징조작의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빚고 있는  대한의원100주년·제중원122주년  기념사업이다. 서울대병원은 원래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탈색시키는 상징조작을 통해 이를 제중원과  연결시키겠다는  의도로 기념행사를 축제분위기로 끌고 가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대한의원의 부인할 수 없는  식민지적 성격이 계속 지적되자 원래 계획된 “한마음축제”를 “한마음행사”로 이름을 바꾸고,  음악회를 취소하는 등 축제로 비칠 수 있는 행사들을 취소내지는 수정하면서 반성과 성찰을 위한 기념행사라고 변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1,000억 원이 넘는 누적적자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  병원에서 반성과 성찰의 명분으로 13억원이  넘는  국고를  소비하며 진행하는 기념행사가 어떤 설득력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반성의 명목의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한 행위도.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대한의원의 식민지성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을 한국의학사에서  부정하고 지우자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대한의원의 역사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의학사는 더욱 엄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울대병원은 왜 이런 오해를 하는가. 그것은 스스로  “서울대병원의 역사가 한국의학의 역사입니다”라고  언표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서울대병원이라는 개별기관의 범주와 한국의학이라는 전체 범주를 동일시하는 논리적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의원이나 총독부의원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와 단절시키는 것을 마치 한국의학사에서 이들 기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나아가 식민지시대의 의학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에서 조선총독부를  배제한다고 해서 한국사가 단절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서울대병원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서울대병원에 제안한다. 서울대병원을 제중원과 ! 연결시키기 위해 부담스럽게 떠안고 있는 경성제대와 총독부의원과 대한의원의 역사를 내려놓으라. 걱정하지 말라. 이들 기관의 역사를 서울대병원의 역사와 단절시킨다고 해서 한국의학사가 단절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 기관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 우리는 훨씬 자유롭게 식민지시대의 의학사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선총독부와,  서울대학교는 경성제대와  단절을 선언했는데 그 부속기관인 서울대병원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이제  끝으로 이러한 논의가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보자. 대한의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은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최근 학계의 논의와 맥이 닿아 있다.  특히 제중원과 대한의원을 연결시키기 위해 서울대병원이 만들어낸 논리, 즉 대한의원은 조선정부  및 대한제국이 추구해온 의료근대화사업의 결실이라는 주장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이 주장은 제중원과 대한의원 설립의 주체와 동기의 차이를  감추고  서양의학이라는 도구적 차원의 근대성만 강조함으로써 제중원과 대한의원을 연결시키려 시도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근대성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바탕에  깔려 있음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선교의학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의학의  근대성과 선교의학의 근대성이 가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은 이 논쟁이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루어져야할  다음 단계의 과제일 것이다.








여인석 / 연세의대 의사학과


필자는 연세대에서 ‘단세포 군항체를 이용한 이질아메바 항원의 분석’로 의학박사학위를, 파리 7대학에서 갈레노스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분야는 서양고대의학사, 한국근현대의학사, 의학사상사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제중원에서의 초기의학교육(1885-1908)’, ‘조선 개항이후 韓醫의 動態’, ‘한국근대의학 도입사의 쟁점’ 등의 논문이,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등의 저서가 있다.


 


    <연구소가 제출한 감사청구서>









 


 


    <법원에 제출한 우표발행판매금지 가처분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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