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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80년’에 남아 있는 식민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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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이 글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발행하는 피디저널 498호에 기고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19년 삼일운동이후 조선 민중들의 저항에 놀란 일본은 식민지 지배 정책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제한적이지만 이 같은 합법 공간 속에서 좌우의 독립운동세력들은 저마다 효과적인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던 중 드디어 1927년 2월 15일 국내 최대의 좌우합작연합전선인 신간회를 창립한다. 신간회가 창립된 바로 다음 날인 2월 16일 오후 1시에는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경성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를 부여받아 이 땅에서 처음으로 첫 전파를 발사한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이왕직으로 전락한 이왕직 전속 경성 음악대와 중앙악우회 관현악단의 축하공연으로 시작한 경성방송국은



   ▲ JODK 전경, 왼쪽이 현존하는
   성공회 교회 건물


일본어 7, 조선어 3의 비율로 전파를 발사하지만 바로 전날 창립한 신간회 소식은 없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대륙을 침략한 일제가 1932년 3월 만주국이라는 꼭두각시 국가를 세운 바로 그 무렵 경성방송국은 조선방송협회로 이름을 바꿔 이전 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식민 지배를 대변하는 방송을 내보낸다. 제1방송은 일본어로 제2방송은 조선어로 방송했지만 제2방송의 설치 목적은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심전개발(心田開發-‘마음의 밭’을 개발한다는 뜻으로 즉 피지배 민족으로서의 저항의식을 약화시키고 황민으로서의 마음을 단련해야 한다는 일제의 동화정책의 하나)’, ‘농촌진흥’, ‘부녀교육’ 등 이른 바 일제의 ‘황민화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




▲ 조선방송협회 마크


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조선방송협회에 전시 특별편성을 지시하여 조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2방송에서는 연일 내선일체 강화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 때의 임원을 살펴보면 상임이사에는 한상룡, 김연수 등이 상임감사에는 조병상, 김성수, 민대식 등이 그리고 편성과에는 촉탁으로 모윤숙 등이 참여하는 등 당시 유력한 친일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1940년 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물자절약과 불리한 전황보도 금지 차원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하였고, 1942년에는 4월 27일에는 방송전파관제를 실시하여 조선어 제2방송을 중단하기에 이르고 같은 해 12월 27일 조 선방송협회의 조선인 직원들이 VOA(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청취 혐의로 체포되는 V


OA단파수신사건이 일어나 조선인 아나운서와 기술자, 라디오 상인 등 150명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10명이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처럼 철저히 일제의 식민지배에 최첨단에 선 조선방송협회의 그림자는 드디어 1947년 9월 3일 한국이 미국 애틀란타시티에서 개최된 국제무선통신회의(ITU)에서 ‘HL’이라는 국가 고유 호출 부호를 할당받음으로 써 사라지는 듯 하였다. 하지만 경성방송국-조선방송협회로 이어지는 식민의 그림자는 여전히 한국방송의 효시로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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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KBS 라디오가 방송80주년을 맞아 다양한 특집을 마련했다’고 하면서 ‘한국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이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호출부호 JODK로 첫 라디오 방송 전파를 발사한 이후, 올해가 80주년이 되는 해’로 ‘KBS 라디오는 이를 기념해 다양한 특집을 마련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1월 22일자로 ‘한국방송 80년 특별제작 프로젝트팀장’까지도 인사 발령을 냈다. KBS 누리집을 보면 KBS는 버젓이 1927년 경성방송국을 자신의 연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KBS는 1927년 경성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호출 부호 JODK)을 송출하



   ▲ 최초의 HLKA 마이크
   사인


기 시작해 해방 후 1948년 국영방송인 서울중앙방송국으로 재출범했다. 1961년 TV 방송을 시작했으며 1973년 한국방송공사로 공영방송 체제를 갖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 (KBS 누리집 중에서)


그런데 이러한 일제 식민지의 그림자는 KBS 뿐 아니라 MBC SBS EBS CBS 등 주요 방송사들의 모임인 한국방송협회에서도 목격된다. 1927년을 연원으로 삼아 한국방송 80년 행사를 준비 중인 한국방송협회는 매년 9월 3일을 방송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도는 1927년을 따르고 월, 일은 1947년 9월 3일에서 따온 것이다. 어정쩡한 타협이 왠지 개운치 않다. 1977년 한국방송 50주년을 주창한 이래 무비판적으로 흘러온 방송계의 역사 찾기를 이번만큼은 제대로 바로 잡았으면 한다. 현재 주요 방송사 사장을 비롯한 대다수 경영진들이야말로 방송민주화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한국근현대사의 오랜 금기영역이었던 친일과 과거사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기술로서의 방송의 역사는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올해를 ‘방송 80년, 한국방송 60년’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삼아주길 희망하며 나아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할 것인지 반성하고 성찰하는 해로 우리 방송사에 기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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