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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명문가를 만드는 ‘고난의 비용’(3)-한경비즈니스(0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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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명문가를 만드는 ‘고난의 비용’(3)
 
무임승차 횡행… ‘족보 세탁’ 적잖아
 
 


 
‘짝퉁’이나 ‘무임승차’는 제대로 비용을 치르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말들이다. 정당한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 기회를 틈타 끼어들기를 하는 것이다. 세계관세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물품 교역량의 7%가 ‘짝퉁’이라고 추정된다.

한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이 애써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신상품이나 신기술을 내놓으면 곧바로 모방해 유사 상품이나 기술을 내놓았다. 더욱이 자본을 앞세워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후발 업체가 마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양 열을 올린다. 이렇게 되면 애써 신기술을 개발한 중소 업체는 돈도 명예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이라고 해도 ‘상도의(商道義)’로 따지자면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짝퉁과 무임승차는 건전한 기업의 수익성까지 갉아먹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기업 차원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이른바 ‘족보 세탁’도 있다. 족보 세탁이란 자신과 무관한 명문가에 부당하게 끼어들어 명문가의 후예로 둔갑하는 것을 말한다. 족보 세탁을 통해 ‘짝퉁’은 ‘진짜’처럼 행세한다.

우리나라는 18세기 중반에 이미 ‘위조 족보 사업가’가 등장했다. 당시 역관이었던 김경희는 인쇄술이 발달하자 이를 기회로 이용했다. 김경희는 자기 집에 인쇄소를 만들어 놓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평민이나 노비들이 은밀하게 부탁하면 그가 수집해 놓은 족보에 이름을 위조하거나 추가하는 수법으로 위조 족보를 팔았다. 김경희가 몰락 양반들로부터 족보를 사들이거나 족보 간행 문중 책임자에게 뇌물을 주고 여벌을 더 간행하게 한 다음 이를 건네받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족보 세탁은 지금도 공공연한 비밀에 해당한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실 주변에는 족보 세탁 전문가들이 은밀하게 활동하며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백승종 서강대 교수의 <천태만상 족보위조> 참조).

필자도 <5백년 명문가의 자녀 교육>을 취재하면서 종가 관계자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명 정치인이 족보를 ‘세탁’하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력이나 권력을 이용해 처음에는 문중행사를 후원하고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면서 얼굴을 내밀다 어느 정도 문중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그때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가문에서는 일제시대에 친일에 앞장서면서 재물을 축적한 이들 중에 서자(庶子) 출신들이 있는데, 이들 후손들이 공공연하게 족보 세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 수법을 보면 일제 때 친일로 ‘득세’한 서얼의 후손들이 종가의 선조 가운데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한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감쪽같이 둔갑한다는 것이다. 한 종가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그의 후손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도 근무했다. 가부장적 질서의 최대 피해자인 서얼 출신이 오히려 가부장적 질서의 상징인 족보 세탁에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얼이라도 명문가의 일원이라는 당당한 자부심이 있었다면 친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억압된 신분 상승의 욕구를 친일이라는 매국적 행위와 이로 인해 얻게 될 재산의 축적으로 복수하려 했다면 그것은 오욕을 덧칠하는 것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친일 매국노의 후손들이 재산을 찾겠다고 버젓이 군청이나 등기소를 드나들고 있다. 그들은 족보까지 세탁하며 매국노의 후손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면서 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사로는 대표적 ‘매국형 친일파’가 400여 명에 이르고 그들의 후손이 물려받은 재산이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한다.

짝퉁이든 족보 세탁이든 그것은 명품이나 명문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고난의 비용’ 없이 부당하게 무임승차하려는 것에 해당한다. 가격은 같으나 품질에서 차이가 있는 상품의 경우에는 시장경쟁에 의해 품질이 우수한 것이 열등한 것을 밀어내게 된다. 반면 세상의 현실은 때로 친일파의 후손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짝퉁이 시장을 교란하면 원조 제품을 만든 기업이 흔들리고 때로는 짝퉁이 진품처럼 시장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치 독립운동가가 지배계층에서 밀려나고 친일파가 득세한 것처럼.


 –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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