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숙기념사업회] 중국 중산대학 내 ‘김성숙 기념관’ 설립 예정
– 중산대학측과 관련 사항 협의, 해외 독립사적지 보존 전초기지 역할 기대
중국 광동성에 위치한 중산대학교 교정 내에 민족독립운동가인 운암 김성숙 선생의 기념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www.kimsungsuk.or.kr)는 지난 2004년부터 중국내 기념관 건립 계획을 세우고 중산대학측과 협의를 통해 김성숙 선생 기념관을 설립키로 의견을 교환해 왔다. 최근 기념관 설립에 의견을 모은 양측은 오는 11월22일 구체적인 사업 진행 절차 등을 논의키 위해 중국 중산대학에서 협의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기념관은 부지면적 16,600㎡, 건물면적 3,630㎡의 규모로 설립될 예정이며 기념관 내부에는 김성숙 선생의 항일투쟁 자료는 물론,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전개 과정, 독립운동단체 자료, 일제의 대륙침략 및 한중 양 민족의 항일연대 자료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김성숙 선생은 스님(태허스님)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시위를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루기도 했으며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 조선민족전선연맹 등에 참여, 강력한 항일 투쟁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중산대학은 당시 김성숙 선생이 정치 경제학을 공부한 곳으로서 선생은 학생신분임에도 300여명의 조선청년들을 규합, 유학한국혁명 청년회를 조직하여 기관지인 <혁명운동>을 간행,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 반대와 피압박민족의 해방을 제창했다.
이밖에도 중산대학은 김성숙 선생의 항일투쟁 평생 반려자인 두군혜 여사를 만나는 등 김성숙 선생의 항일투쟁사에 중요한 장소로 활용된 곳이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민성진 대표는 “중국 각지에 항일투쟁 역사 사적이 상당히 많이 산재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밝히고 “김성숙 기념관은 선생의 혼과 정신을 후세에 전달하는 교육장 역할 뿐 아니라 중국 각지에 산재돼 있는 독립사적지 보존의 전초기지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현재 독립 운동의 중요 사적지로 알려진 곳들 중 상당수가 중국의 개발정책에 따라 매년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운암 김성숙(태허스님)은 누구: 상산김씨 상산군파 32대손인 김성숙은 스님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김산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스승’이었다. 만 18세에 용문사에 출가, 월초 노스님으로부터 성숙(星淑, 법호 태허)이란 법명을 받았다. 1918년 봉선사에서 수행하던 중 만해 스님 등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어 봉선사 스님들과 독립선언문 제작 등의 활동을 했다. 3.1운동 당시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1919년 출옥후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1925년 중국 중산대학에 입학해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조선의열단에 참여해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김성숙 선생이 주도했거나 참여한 단체로는 창일당, 조선의열단, 유학한국청년회, 임시정부 외무부 산하 외교연구위원회 등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황야>, <혁명> 등의 잡지를 편집하고 주필로서 주옥같은 논문을 썼다. 이밖에도 <봉화>, <반일민족>, <민족해방> 등의 편집에 참여하며 선생이 바라는 조국의 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독립운동의 이론과 실천방안을 글로 써서 동지들에게 전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중일전쟁 이후 우리나라 항일운동 우파인 김구계와 좌파인 김원봉계 통합에 앞장섬으로써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통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차장에 취임, 1943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 됐다.
<사진설명>
1. 김성숙 기념관이 설립될 중국 중산대학교
2. 운암 김성숙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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