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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 발간… 잊혀진 역사 되살려-대전일보(0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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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 발간… 잊혀진 역사 되살려 

 



“밥만 먹으면 나간다고 구박 많이 받았는데…”
아산시 영인면 향토지 발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일희씨(67.영인면 상성리)는 “아내가 고생을 많아 했다”는 말부터 꺼냈다.영인면 향토지는 무려 2년 6개월이라는 긴 자료수집 기간을 거쳐 지난 2002년 발간됐다.

향토사학자도 아닌 그가 향토사 편찬에 참여하게 된 것은 9대째 살아 온 영인면에 대한 애향심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영인면사무소를 찾아 “영인면에 향토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은 것이 발단이 돼 직접 향토지 편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영인면은 도내 40개 군.현에 올라오는 조공이 영인면을 거쳐 바다 길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갔던 지역으로 아산현 관아가 있던 지역이다”며 “아산현 중 가장 번창했던 지역으로 아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영인에 향토지 하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소 마을사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향토지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불과 30-40년 전 마을에서 벌어졌던 사건조차 이미 세월 속에 묻혀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 중 이미 많은 수가 세상을 떠났고 일제 치하나 한국전쟁 등 격변기에 벌어졌던 마을 사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 간 마을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 중 좌익과 우익에 섰던 사람들은 몇이나 되는 지 등을 묻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던 것이다.

그마나 마을사의 조각이라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어디 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직접 나서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찾는 일은 모두 김씨의 몫이 되었다. 2년 6개월이라는 지료수집 기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곳이라면 마을 곳곳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농사일도 해야 했고 집안일도 돌봐야 했지만 그에게 향토지 발간은 왠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작물이 시들어 버린 김씨의 밭을 보고 “향토지 만든다고 농사는 포기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책 팔아서 먹고 살려고 하느냐”는 오해도 있었다.

애맨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사라진 마을사와 관련된 자료를 구할 때마다 더 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시인이자 작사가인 조명암 선생이 영인산 밑에서 태어나 ‘영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친일행적이나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선창’ ‘꿈꾸는 백마강’ ‘알뜰한 당신’ 등 국민 애창곡을 작사한 시인이 내 고향 사람이라는데 자부심을 느꼈다.

아산현의 지도를 어렵게 구했을 때나 옛 관아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조감도를 구했을 때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어렵게 향토지를 발간한 그는 요즘 영인면 신봉리에서는 매년 열리고 있는 ‘내이랑 축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월 대보름 달집을 태우며 근심 걱정을 태워버리고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축제에 관광객이 몰리고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해 농민들이 적지 않은 수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토정비결을 만든 토정선생이 아산현감을 지낸 것에서 착안해 이를 지역 축제와 연계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팔자에 없는 향토사학자 노릇을 했다”는 김씨는 “향토지 발간을 계기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가장 번창했던 영인면이 지금은 갈수록 인구가 줄고 있는 낙후지역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다”며 “사라져 버린 전통문화를 되살려 잘사는 영인면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노을 전 문화원장은 “식지 않는 김일희씨의 열정은 고향 영인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이다”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애쓰고 있는 그의 노력이 영인 뿐 아니라 아산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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