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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한반도 식민통치 수단으로 영화 적극 활용”-연합뉴스(0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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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한반도 식민통치 수단으로 영화 적극 활용” 
 
 

 일제가 한반도 식민통치 수단으로 영화를 적극 활용했으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이런 영화 이용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복환모 호남대 교수(다매체영상학)는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 박사학위 논문 ‘조선총독부 식민지 통치 영화정책’에서 “일제는 한반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조선인 동화ㆍ내선융화ㆍ황민화의 정치적 수단으로 영화를 적극 이용했으며 한국통감부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논문은 “조선총독부 통치 방식이 3.1독립운동 이후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변화,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조선민중을 회유ㆍ융화시키는 정책으로 선회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영화는 총독부 시정 방침을 주지시키고 선전하는 더없이 좋은 수단으로 받아들여져 총독부는 영화 이용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복 교수는 이번 연구 과정에서 발굴한 조선총독부 시절의 일본측 영화 관련 문헌을 토대로 영화가 일제 식민지 통치에 어떻게 이용됐고 이를 위해 어떠한 영화 통제정책이 시행됐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한국 영화사 연구에서 식민지 시대의 영화정책 부분은 문헌 자료 부족, 당시 영화 부재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거의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다.

   논문에 따르면 일제가 한반도 식민통치 수단으로 영화를 이용한 것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데 대한 일본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완화하고 일본의 우월성을 한국 국민에 인식시켜 한국인을 동화시키기 위해 한국의 통치 사정을 소개하는 영화를 제작한 것이 그 시작이다.

   복 교수는 “1930년대 이후의 조선총독부 영화 정책은 국가 총동원 체제하의 전쟁 동원과, 식민통치의 근본 목표였던 조선인 ‘황국신민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인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한일융화’를 위해 영화를 이용한 것이 그 시발”이라고 말했다.

   복 교수는 “식민지 시대의 이 같은 영화정책은 한국이 해방된 뒤에도 그 영향이 남아 1930년대에 시작된 문화ㆍ뉴스 영화의 강제 상영, 영화관 임검 등은 한국사회가 1980년대 말 민주화될 때까지 계속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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