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주의 부활’로 막내린 고이즈미 시대

20일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자민당 새 총재로 선출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막을 내린다.
어느 정권도 손대지못했던 우정(우편사업) 민영화를 성공시켰고 친시장적 개혁의 힘으로 전후 최장 경기회복·확장기인 이자나기 경기를 넘어서는 경제회복을 일궈냈다. 그러나 도시와 지방,상류층과 하류층 간의 격차 확대라는 짐을 새 총리가 되는 아베에게 넘겨줬다. 국수주의 득세로 한국 중국등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도 고이즈미 정권의 흠이다.
◆일본경제 성장 궤도 진입
2003년 5월 리소나그룹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일본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의 불량 채권 처리가 지연되고 기업들의 채무 과잉이 해결되지 않아 불안했던 금융시장은 공적 자금 투입으로 안정을 찾았다.
주요 은행의 불량 채권비율은 2002년 8.4%에서 금년 3월 1.8%로 떨어졌다.
2004년 7월에는 UFJ그룹과 도쿄미쓰비시FG 간 합병 선언으로 금융기관 구조 재편이 가속화됐다.
거대 유통그룹인 다이에가 산업재생기구 지원을 받아 정상화되면서 실물 경제도 안정됐다.
구조개혁 주역인 다케나카 헤이조 총무상은 “불량 채권 처리는 고이즈미 정권의 최대 치적”이라고 평가했다.
고이즈미 정권의 경제회복 플랜에 따른 민간 부문의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기업들의 수익성은 대폭 호전됐다.
상장사들은 금년까지 4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는 연말까지 회복세가 지속돼 전후 최장이던 이자나기경기(4년9개월) 기록을 경신할 게 확실시 된다.
최근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올해 2.5% 정도(OECD 전망)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건전화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공공사업 축소 등 세출 삭감에 노력했으나 국채 잔고는 금년 말 540조엔을 넘어설 전망이다.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전체 실업률은 취임 당시 4.8%에서 4.2% 선으로 떨어졌으나 비정규직 증가 영향이 크다.
◆구태정치 파괴와 외교 갈등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직후 ‘자민당을 깨부수자’고 외쳤다.
지난 5년반 만에 자민당은 물론 관가 풍경은 달라졌다.
총리의 정책 결정력이 커지면서 파벌 간 담합 정치는 무시됐다.
지난해 8월 국회 해산은 일본 정치의 변화상을 보여주었다.
우정 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고이즈미 총리는 즉각 중의원을 해산하고 정면 대결을 펼쳐 대성공을 거뒀다.
고이즈미 총리는 특유의 대중 정치 수법으로 집권 말기에도 5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했다.
외교적으론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해 미·일 동맹을 강화해 왔다.
양국 동맹은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국수주의가 강해지면서 외교적 마찰도 잦았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영토 분쟁 등으로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북한과의 긴장도 고조되는 양상이다.
한국과는 정상회담조차 열지 못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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