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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전범 분사는 천황참배 사전포석-내일신문(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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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전범 분사는 천황참배 사전포석 
 


신사참배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20일 새 일본 총리선출 앞두고 신사참배문제 재부각할 듯


20일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이 차기 총재를 뽑는다.

차기 자민당 총재는 2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서 지명받는 형태로 새 총리가 된다. 때문에 신사참배와 독도문제로 한-일관계를 수교 후 최악으로 몰고 간 고이즈미 총리 후임자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려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은 22일부터 외무차관급 종합정책대화를 연다. 한국과 달리 신사참배로 악화된 양국관계 개선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일환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조만간 재부각될 신사참배 논란에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나. 지난 16일 서울에서 ‘야스쿠니를 다시 묻는다’ 제목으로 열린 열린 제3회 <한일, 연대21> 토론회에서 한·일 지식인들은 “신사참배는 즉각 중단돼야 하며 조선·대만인의 강제합사도 취소돼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A급 전범 분사론은 경계해야 하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식민·침략전쟁의 잔재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급 전범 분사가 해법? = 다카하시 테츠야 동경대 교수는 “A급 전범 분사론은 야스쿠니 신사문제 전체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전범 분사론은 수상의 참배는 물론 일본왕(천황)에게 참배의 길을 열어주고 신사를 국영화해 ‘정교분리 원칙’을 담은 헌법까지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사에 안치된 위패 200여만명 중 A급 전범(2차대전) 14명만 문제삼는 건 2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일본 식민주의 역사 전체의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점이다. 1870년 이후 대만 출병에서부터 조선 침탈까지 60여년에 걸친 식민약탈행위자들의 위패에 대해 자연스레 면책이 되는 것이다.


또 도쿄재판에서도 모든 책임을 A급 전범에게만 집중시키고 일본군 대원수이자 최고사령관이었던 쇼와 천황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원래 1869년 설립돼 1945년 일제가 패전하기까지 천황의 신사였다. 천황이 직접 참배를 함으로써 전사자들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승격시켜 왔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은 총 8번 야스쿠니를 참배했으나 1978년 A급 전범이 합사된 뒤엔 한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왜 신사에 조선인을 합사했나 = 신사에는 조선인·타이완인 5만명여명의 위패도 합사돼 있다. 일본은 “야스쿠니 위패는 개인 위패가 아니라 하나의 위패로 합사돼 있어 떼내고 말고 할 수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일본인으로 싸움에 참가한 이상, 야스쿠니에 모셔지는 건 당연하다”며 “천황이 합사한 것이므로 유족이 철회할 수 없다”는 궤변도 동원하고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에 대해 “야스쿠니 합사는 살아서는 강징병이고 죽어서는 강제수용인 이중 강제연행”이라고 말했다.



◆우리 안의 식민잔재 = 한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전쟁기념관과 성격상 비슷한) 한국의 전쟁기념시설에도 일제잔재가 짙게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상석 위에 입석 묘비를 세우는 국립묘지 방식은 1938년까지의 일본군 국군묘지와 유사하며 일제가 조선에서 실시했던 전쟁 희생자 추모방식이 해방이후까지 이어져 왔다. 전국에 1500여개나 들어서 있는 충혼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대해야하나 = 2차대전에 참여했던 조선인 학병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강압에 의한 것으로 보고 싶지만 통계에 따르면 1938년 조선인 육군지원병제가 실시된 후 6년만에 지원자가 30만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지원자 급증 이유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이 군국주의 체제하 조선 청년에게 주는 매력도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난하는 우리는 전투병력을 파병했던 베트남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할까. 전사한 파월장병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전쟁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2차대전과 달리 이념의 문제까지 얽혀 있는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짜빈동 전투에 참가했던 청룡부대원 김영만씨가 베트남을 찾아 참회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나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명금 할머니가 베트남전쟁피해자를 위해 전 재산을 내놓고 이 돈이 평화박물관 종자돈으로 쓰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일, 연대 21’은 = 민족주의를 넘어서 한일간 갈등을 풀고 연대와 화해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2004년 만들어졌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한일, 연대21’ 발족 취지문을 통해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해서는 진정한 상호비판과 상호연대가 구축되기 어렵다”며 냉전시절을 뛰어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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