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고이즈미 시대, 아베 시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자민당 총재가 된 것은 2001년 4월26일이었다. 벌써 5년5개월 전이다. 일본 정가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장기집권할 것이라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이즈미 자신도 “이렇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회고할 정도다. 고이즈미 취임 초기의 지지율은 80%를 웃돌았고, 퇴임을 앞둔 현재도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정권사상 경이적인 기록들이다.
‘시대가 지도자를 낳는다’ ‘지도자가 시대를 이끈다’는 고전적 구분법으로 보면 고이즈미는 전자(前者)에 속한다. 정치 저널리스트인 이와미 다카오(岩見隆夫)는 고이즈미 인기의 근원을 국민의 ‘정치적 기아(飢餓)’에서 찾는다. 고이즈미가 등장하기 직전 일본은 총체적 불안·패배감에 빠져있던 때였다. 정치는 파벌, 이권 등 구태가 지배하고 있었고 거품붕괴 뒤 경제는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쫓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야당도 미덥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을 때려 부수고, 일본을 바꾸겠다는 ‘별종’ 고이즈미가 등장했다. 고이즈미 집권 후 일본은 많이 변했다.
고이즈미는 타협이 미덕이던 일본 정치판에서 냉혈한을 연상시킬 정도로 반대세력들을 축출했다. 정치분석가들은 “고이즈미의 비정한 성격이 역설적으로 자민당 개혁, 나아가 일본의 변화를 이끈 추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양극화가 심화됐지만 경제도 오랜 거품에서 벗어났다. 이웃 국가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공약 수호론자 고이즈미란 인식을 안겨줬다.
전환기 일본호의 선장이 이번주 고이즈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로 넘어간다.
아베 역시 일본의 우경화 바람을 타고 등장했다는 점에서 시대가 만들어준 지도자로 분류된다. 다만 그는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로 기록되고 싶어하는 듯하다. 아베의 요즘 모습을 보면 ‘인파이터 복서’를 연상케한다. 그는 자신을 ‘싸우는 지도자’로 규정하고 있다. 대상은 ‘전후(戰後) 체제의 새 출발’이다. 1980년대 초반 등장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의 ‘전후정치 총결산’을 연상시키지만 훨씬 구체적이다. 5년내의 평화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근본적인 교육개혁, 북한문제 해결 등을 잇달아 표명했다. 이들 공약을 관통하는 단어는 안보 강화다. 논리는 간단하다. 일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제사회 공헌을 위해 그동안 묶여있던 각종 안보 족쇄를 풀겠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 이전에는 이같은 과제를 정면에서 거론하는 것은 터부였지만 현재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달라진 게 현실이다. 실제로 현재 아베 인기의 원천은 ‘정치명문가 도련님’의 부드러운 외모보다는 강력한 국가관이다. 적지않은 일본인들은 전쟁과 테러가 계속되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평화주의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아베의 주장에 동의한다.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아베의 주장은 강한 추진력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 중국 등이 주목하는 야스쿠니 등 역사인식 문제는 이런 점에서 부차적이다. 아베라는 인물의 등장, 아베 등장을 용인하는 일본 사회의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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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고이즈미 시대, 아베 시대-경향신문(06.09.17)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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