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일본 ‘강한 일본’ 야망 … 그를 만든 건 외조부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20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제21대 총재로 선출됐다. 아베 장관은 이날 실시된 총재 선거 투표에서 전체 703표 가운데 464표를 얻어 경쟁 후보인 아소 다로(麻生太郞.136표) 외상과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 102표) 재무상을 큰 표 차로 물리치고 새 총재에 당선됐다. 아베 신임 총재는 26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고 새 내각을 발족시킬 예정이다. 일본의 제90대 총리에 취임하는 아베는 전후 세대로는 첫 총리이며,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오늘의 아베를 만든 건 이웃에 살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였다.”
아베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여섯 살이던 1960년 기시 총리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 문제로 야당과 학생, 진보 진영의 극심한 반대투쟁에 부닥쳤다. 집앞까지 시위대가 몰려 들어 돌과 불붙인 신문지를 던지는 바람에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때 기시 총리는 꼬마 손자 아베에게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옳다고 믿는 일이라면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시는 87년 숨질 때까지 국익 최우선주의와 보수 이데올로기를 가르친 그의 정치 교사였다. 아베가 정권 최대의 과제로 내건 헌법 개정은 기시의 유지(遺志)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군대를 못 갖도록 한 현행 헌법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몇 번 시도했다 실패한 ‘강한 일본 만들기’ 과업을 손자가 이어받은 것이다.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 전 외상에게서는 친화력과 더불어 권력의지와 투쟁심을 물려받았다. 누구나 다음 총리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던 신타로는 91년 췌장암으로 쓰러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병상에서 아들에게 “죽을 각오를 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말을 남겼다. 어린 시절부터 눈물 없기로 소문난 아베였지만 이때는 하룻밤을 꼬박 통곡했다고 한다. “슬퍼서가 아니라 분해서였다”고 훗날 아베는 술회했다. 올 초 일본 정계에서 “아베는 아직 젊으니까 차차기가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자 아베는 야마구치(山口)현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기자들에게”정치인에게 기회는 단 한번뿐, 다음 기회란 있을 수 없다”며 각오를 다졌다. 아버지의 불운한 최후를 지켜본 데 따른 선택이었다. 9년간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수업을 쌓았던 아베는 93년 야마구치현의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기시나 신타로로부터 도움받던 실력자들이 정치 신인 아베의 후견인으로 나섰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기시가 만들고 신타로가 물려받았던 자민당의 명문 파벌 세이와카이(淸和會) 소속이었다. 아베는 이 파벌의 ‘프린스(왕자)’로 불렸다. 아베가 관방 부장관.자민당 간사장.관방장관으로 이어지는 고속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한 요소다.
그의 최대 무기는 흔들림 없는 소신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귀공자 같은 용모와 세련된 이미지, 부드러운 어투와는 달리 그는 신념과 집념으로 똘똘 뭉쳐 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집념이 그런 예다.
그는 아버지의 비서 시절인 88년 납치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설마 그런 일이…” “증거도 없는데”라며 반신반의하거나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방해가 된다며 이 문제를 피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 첫째 책무”라며 국회에서 질의를 거듭하고 직접 구명운동에 나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의 노력은 한결같았다. 아베의 뜻은 10여 년 만에 결실을 봤다. 2002년 고이즈미의 방북에서 일본인 납치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아베는 일약 차기 총리 1순위로 부상한 것이다.
외모가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아베는 배짱이 두둑하다. 자민당 간사장 시절인 2004년 그는 당내 개혁의 일환으로 ‘떡값’ ‘얼음 값’ 폐지를 추진했다. 이는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 소속 의원에게 300만~400만 엔씩 현찰로 지급하는 자민당의 오랜 관행이었다. 의원들은 “젊은 간사장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아베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측근들이 당내 중진 의원에게 불려가 협박과 호통을 받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아베는 단호했다. “떡값 문제에 관한 결정은 간사장의 고유권한”이라며 밀어붙였던 것이다. 아베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下關)에 살며 그의 부친과 교분이 두터운 유명작가 후루카와 가오루(古川薰)는 “아베는 어릴 때부터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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