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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친일재산 환수, 민족정기 정립 계기로-세계일보(0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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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친일재산 환수, 민족정기 정립 계기로  


 
지난해 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이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구성됨으로써 친일재산 환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계기로 한편에서는 해방 후 61년, 반민특위 해체 후 57년 만에 진정한 의미의 친일 청산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소급입법 문제 등을 지적하면서 정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국민은 친일재산 환수에 찬성하고 있다. 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이제라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친일 청산 문제는 해방 후 반세기가 넘도록 풀지 못한 역사의 매듭으로서, 많은 국민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권력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정의의 요청이 무시된 것이었기에 더욱 우울한 것이었다.



반세기 만에 풀리는 역사 매듭


그러므로 본격적 친일 청산의 신호탄으로 친일재산 환수를 시작하는 데 대해 많은 국민이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 특히 그동안 논의됐던 친일파 활동의 진상 규명과 재산 환수는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두 가지 문제가 서로 연계되어 있지만, 진상 규명과 재산 환수는 그 방법의 차이뿐만 아니라 관련되는 법적 문제점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수십억,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친일파 후손들이 소송을 통해 찾아가는 행태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친일재산 환수에는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어 명분만으로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현행 헌법 제13조 제2항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수십년 전의 친일행위를 문제 삼아서 그 재산을 환수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헌법 규정과 관련해 위헌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친일재산을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환수할 것인지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예컨대 환수 대상 재산의 범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할지도 매우 복잡할 것이고, 또 그 재산이 이미 아들, 손자에게 상속되어서 형태가 바뀐 경우(부동산을 처분하여 주식을 구입하는 등)도 적지 않을 텐데 이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등 자칫 투명하지 않거나 설득력이 약한 기준에 따라 처리한다면 환수 대상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될 우려가 크다.


용두사미 전례 되밟아선 안돼

그렇다고 친일 잔재 청산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친일재산 환수를 송두리째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뒤늦게나마 친일 청산을 시작하게 된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며, 이 기회에 불법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코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시도가 좌초할 경우에는 차라리 시작하지 않음만 못할 수도 있다. 제2공화국 당시 제4차 헌법 개정을 통해 소급입법의 근거까지 만들면서 시작했던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용두사미가 되었던 전례를 되밟아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일재산 환수는 지뢰밭 사이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심정으로 곳곳에 깔려 있는 함정들을 피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한번의 실패한 친일 청산으로 기록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일재산 환수가 객관적인 기준 마련과 공정한 절차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 고려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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