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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 선생의 조용했던 ‘부민관 의거’ 6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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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태훈 기자


 








24일 오후 12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한 음식점. 독립운동가 조문기(80·사진) 선생과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20여명이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날은 조 선생이 주도한 ‘부민관 폭파 사건’ 61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조 선생은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24일 아시아 각국의 거물급 친일파가 모인 ‘아세아민족 분격대회’가 열리던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다. 흔히 ‘일제 치하의 마지막 항일의거’로 불리는 부민관 폭파 사건은 이렇게 일어났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조 선생은 “부민관 사건은 전체 독립운동사에서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한다.

조 선생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9년 10월 초대 이사장인 이돈명 변호사로부터 넘겨받은 자리다. 국가유공자인 조 선생에겐 매월 연금이 지급된다. 그가 연금을 받는 날은 민족문제연구소 식구들의 ‘회식날’이다. 이날만 되면 평소 경기도 수원에서 지내는 조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청량리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독립투사지만 조 선생은 해방 이후 단 한번도 3·1절이나 광복절 기념식을 찾지 않았다.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 및 후손의 득세가 이어지는 한 광복은 허상일 뿐”이란 신념에서라고 한다.

이날 부민관 의거 61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은 조 선생은 식사를 끝낸 뒤 집으로 돌아가며 “내가 건강이 안 좋으니 앞으론 이런 자리를 갖기도 어렵겠다”고 탄식했다. 조 선생을 배웅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조 선생은) 현재 생존해있는 가장 뛰어난 항일투사”라며 “조 선생 같은 분을 위해서라도 어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세계일보, 06.07.24>







부민관은




부민관(府民館)은 일제 치하이던 1936년 서울시민들의 예술적 욕구 충족을 위해 만들어진 극장이었다. 연건평 5676㎡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지어진 부민관은 1800석의 관람석과 냉·난방 시설이 구비된 대강당을 비롯해 중강당·소강당 등을 갖췄으며 연극·음악·무용·영화 등을 공연했다.

일제 말기인 1945년 7월24일 일본에 점령된 동아시아 각국의 친일파가 이곳에 모여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문기 등이 폭탄을 설치해 파괴했다. 8·15 광복 이후엔 미군이 접수해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시 소유로 넘어갔고 1950년 ‘국립극장’으로 지정됐다.

6·25 동란 이후 한동안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다가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완성에 따라 ‘시민회관’으로 변경됐다. 1991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동시에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용도가 바뀌어 지금껏 사용되고 있다.


세계일보 인터넷뉴스부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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