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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 배후’ 김창룡, 아직도 국립묘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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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포커스 안진걸 기자 기자













 


대표적인 친일청산운동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립현충원이 위치하고 있는 대전지역 시민단체들이 2월초부터 김창룡 묘를 국립묘지로부터 이장시키겠다는 운동을 본격화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창룡의 묘는 해방된 지 61년째인 2006년, 아직도 국립묘지(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자리잡고 있다. 김창룡의 묘는 원래 경기도 안양의 한 사찰에 있었으나, 육군특무부대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 주관으로 지난 98년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김창룡은 1940년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 입대하여, 만주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조직 50여건을 적발해 헌병 오장(하사급)으로 특진한 것으로 유명한 대표적인 친일군인이다.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주구(최종 경찰 특무대장)로서 온갖 악행을 주도하다가 56년 부하의 손에 암살된 인물로, 대표적인 독립투사인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로도 지목돼 왔다. 김구 선생 암살범인 안두희도 ‘김창룡이 암살을 지시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창룡 묘에 대한 이장 요구는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난 98년부터 계속돼왔다. 특히, 최근 4년간 민족문제연구소와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강력히 촉구했었다.

마지막 임정요인이었던 백강(白岡) 조경환 선생은 1993년 10월7일 임종을 눈앞에 두고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혀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김창룡 외에도 수많은 친일파들이 애국지사로 둔갑해 국립묘역에 묻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국립묘지를 관리해온 국방부는 “국립묘지령 제3조 ‘안장대상’에 의하면 (반민족행위자이거나 반국가사범일지라도) 장관급장교인 장군은 안장될 수 있고, 제15조 ‘이장’에 의하면 유가족의 요청으로만 이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구절을 들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고, 이것이 지금까지 김창룡의 묘가 국립묘지에 남아 있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와 대전지역 시민단체들은 “올해 안에는 반드시 김창룡의 묘를 국립묘지로부터 이장시키겠다”는 결연한 각오다. 지난 2월2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의 주도로 ‘김창룡 묘 이전추진을 위한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특히 국립묘지의 관리 주체가 올 1월30일부터 ‘소극적이던’ 국방부에서 ‘독립운동’ 관련 부서인 보훈처로 바뀌어 김창룡 묘 이장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시민연대도 국립묘지령 개정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나 국가반란에 직접 관여한 것이 확인된 경우 유가족의 의견과 관계없이 안장심사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장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만간 2월 임시국회에 김원웅 의원을 통해 국회 청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규봉 대전지부장(배재대 과학기술바이오대학장)은 “악질 친일파 김창룡의 묘가 아직도 국립묘지에 있는 것은 민족사적 비극”이라며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겨레의 성지로서 국립묘지의 위상을 바로잡고자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에 참여한 반국가사범의 묘를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령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연대는 3.1절에 맞춰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시민대회를 열고 김창룡 묘 이장과 함께 국립묘지령 개정을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또 김창룡 외에도 친일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최창식, 이종욱, 윤익선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의 묘역 이장도 아울러 추진할 계획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친일파 재산환수 절차가 시작되고, 친일조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올해가 실질적인 친일청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그와 함께 국립묘지에 있는 친일파들의 묘역도 올해 안에는 모두 이장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코리아포커스(http://www.coreafocus.com), 06.02.10>









주 석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수많은 항일조직을 색출하고 독립군을 고문 학살했다. 해방 후 육군 정보장교로 군부 내 좌익소탕과 숙군과정에서 각종 사건을 조작해 이승만 독재정권의 초석을 다졌고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백범 김구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다. 그의 묘지가 백범의 모친과 큰아들이 안장돼 있는 대전 국립묘지(장군1묘역 69호)에 있다는 것은, 실로 애국지사를 매우 욕되게 할 뿐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에게 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든다.(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 1940년 : 일본 관동군 헌병대 입대하여, 만주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조직 50여건을 적발하여 헌병오장(하사급)으로 특진됨.
– 1945년 : 철원에서 체포 수감되어 친일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송 중 탈출함.
– 1946년 : 또 체포되어 정평고등재판소에서 다시 사형선고를 내렸으나 또 탈옥하여 월남함.
– 1947년 : 육사 3기생으로 입교하여 소위로 임관됨.
– 1948년 : 군부 내 좌익색출 공로로 소령으로 특진함.
– 1949년~1956년 : 육군특무부대를 창설하여 동해안반란사건, 뉴델리밀담설 등 각종 사건을 조작하여 이승만의 정적을 제거하고 이승만 독재정권의 초석을 다짐. 군부 내 각종 비리 의혹사건에도 연루됨.
– 1956년 : 부하 장교에게 피살됨. 이승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육군 중장으로 추서함.
– 1998년 : 육군특무부대 후신인 국군기무사령부 주관으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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