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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고창여고 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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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안서연 학생은 작년 11월 미당시문학관이 주최한 글쓰기대회에서 미당을 추모하는 글로 1등을 했다. 그리고 11월 3일 고창 미당문학관에서 열린 시상식장에서 미당의 친일행적을 접했다고 한다. 그 날은 연구소전북지부 등이 미당기념사업 반대집회를 문학관 앞에서 열기도 하였다.(아래 사진) 그리고 올해 11월 전북의 한 단체가 연 국민독서경진대회에서 이 글로 또 상을 받았다. 자신이 사랑한 시인의 ‘친일’을 이 여학생이 어떤 마음으로 정리하고 있는지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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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국화축제 반대시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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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당신의 시를 읊조렸어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좋았거든요. 누군가 “너는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늘 서슴없이 당신의 이름을 댔지요. 한번은 말이예요. 중학교에 다닐 때, 교내 시낭송대회가 있었어요. 나는 당연히 당신의 시집을 빼들고 사람들 앞에 나갔지요. 당신의 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화옆에서’를 낭송했는데 아쉽게도 1등은 못했지만 당신의 시를 낭송했다는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또 한번은 글짓기 대회가 있었어요. 세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그중에 당신의 이름이 있더랬지요. 무슨 주제를 택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아주 활활 타올랐더랬죠. 상을 받으러 들뜬 마음으로 당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문학관에 갔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예요? 시상식 도중 갑자기 두세 명의 사람들이 와서 난리를 치는 거에요. 이런 친일파를 기리는 시상식 따위는 집어치라면서 말이예요. 뜨겁게 두근대던 나의 가슴에 누군가가 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어요. 밖에서는 문학관을 폐쇄하라, 식을 중단하고 학생들에게 그의 친일행각을 밝혀라는 식의 농성이 들려왔어요.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두세 명의 사람들은 당신의 친일시까지 가지고 와서 참 친절히도 얘기해주더군요. 당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이예요.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조금이라도 짐작이 가시나요? 실망이라는 그 작은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어요. 아, 왜 그러셨어요? 대체 왜… 늘 시 한편 구해서 읽다가 처음으로 돈을 모아서 산 시집이 바로 당신의 시집이었어요. ‘질마재’를 읽으면서 당신의 고향과 나의 고향이 같다는 게 꿈만 같았고, 나도 당신처럼 내 고향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 먹었었어요. ‘자화상’을 읽으면서는 이런 시어들을 이렇게 거침없이 토해낼 수 있나 하고 당신의 시에 또 한번 감탄했었어요. 아, 그런데 그런 당신이 친일파라니… 하얀 눈이 참 많이도 내리던 작년 겨울.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학동아리에서 회원들이 쓴 시들을 걸고 작은 시화전을 열었어요. 한쪽 귀퉁이에 국화를 삥 두르고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내 마음속에 솟구치는 울림으로 인해 쓴 시를 걸어두었어요. 시화전 내내 그 시를 전시해 놓으면서 내가 가장 기다렸던 손님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었어요. 하지만 어느새 눈은 그쳐버리고 당신은 끝내 오지 않더라구요. 당신의 시집을 꼭 쥐고 그토록 기다렸는데 말이예요. 참 나쁜 사람이에요. 당신을 위해 쓴 시… 이 편지에 담을게요. 이 시를 쓰면서도, 완성해서 판넬에 옮기면서도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바로 당신이었으니까요.
나에게 당신의 잘잘못을 따져서 용서를 해줄 자격 따윈 없어요. 용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조님들의 몫이잖아요. 아무 자격도 없는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을 한껏 미워하고 그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끝내는당신을 지워내지 못하는 일 밖에 없네요. 제발 끝까지 당신을 좋아할 수 있도록 용서를 빌어요. 나도 방법은 잘 몰라요. 하지만 난 믿어요. 당신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재주가 있잖아요. 이 편지를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생각해주었으면 해요. 이제 곧 다가오는 겨울, 당신의 눈물을 볼 수 있었으면 해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하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어리석은 시인에게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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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1일. |
어서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는 당신의 팬으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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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날(서정주 시선)’을 읽고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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