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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역사의 멍에, 그리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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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현 기자   
격동의 2004년이 가고 을유년 새해가 밝았다. 다들 희망을 얘기하지만 희망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우선 2005년이 던지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고, 또 그 안에서 일어날 역사논쟁의 회오리가 두렵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 이 땅을 겁탈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한 세기가 된다. 그로부터 이 산하는 꼬박 40년간 일제의 말발굽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 생지옥같은 폭압통치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60년, 그리고 ‘신판 친일정권’이 그들과 국교를 맺은 지 다시 40년이 된다.

일제가 이 땅을 능욕한 지 한 세기가 흘러 역사의 암운은 저만치 사라졌다. 그러나 그 역사의 뒤안에서 피울음을 쏟은 조선민중들의 한은 아직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통한은 돌보는 이 없이 역사의 뒷켠으로 스러지고 있고, 징용, 징병, 학도병으로 강제동원됐던 일제 마지막 세대는 제대로 기록조차 되지 않은 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겨지고 있다.

2005년이 희망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서는 이유

이 땅 민중들의 쌓인 한이 어디 일제 때 뿐이었으랴. 동족간에 죽고 죽인 6.25 한국전쟁 와중에 이데올로기의 허울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자가 무릇 몇이며,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정권 하에서 고문받고 심신이 망가진 자가 그 몇이었드뇨. 또 그 유가족이 겪은 그간의 고통은 이루 다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어둠의 역사’는 본디 은폐와 왜곡과 짝을 이뤄 역사의 저켠으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역사속에서 권력있는 자는 이런 일을 앞장서서 주도해 왔고, 그 하수인들은 그런 일의 뒷처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국가의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새해에는 그런 ‘어둠의 역사’가 마침내 그 끝을 보아야 할 것이다.

올 한 해 세상은 과거사 논쟁으로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 우선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 및 강제연행 등 피해자 진상조사가 올해부터 본격 시작된다. 이를 ‘과거사 타령’으로 몰아붙이는 세력들이 준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어려운 경제사정이나 미래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또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자행된 공안기관의 각종 인권유린 및 정치공작 사례가 수 십년간 드리웠던 장막을 걷고 지하창고 캐비닛에서 나와 역사의 햇볕을 쬐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기도 하고 또 과거 독재권력자의 반인륜적 면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역사규명 작업은 자칫 엄청난 혼란과 분열로 비쳐질 수도 있다.

새해엔 ‘어둠의 역사’가 끝을 봐야

한 예로 국정원은 자체적으로 구성한 ‘진실위원회’는 18년째 국민적 의혹을 받아온 ‘KAL858기 폭파의혹사건’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 사안 하나만으로도 결과에 따라서는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다. 그 길만이 그간의 과거사 논쟁을 불식시키고 후세에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반민특위 좌절 이후 반세기만에 ‘친일 청산’에 대한 실마리가 겨우 가닥이 잡혔다. 지난해 연말 국회는 곡절끝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특별법 제정 때부터 누더기 비난을 사더니 개정안 역시 핵심은 다 빠진채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주목할 점은 여야 합의로 법명의 앞머리에 붙었던 ‘친일’이라는 용어를 떼버린 점이다. 이유는 일본을 배려한 결과라고 한다.

지난 해 특별법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중일 때 일본의 우익지 <산케이신문>은 이를 ‘반일법’이라고 왜곡해 보도해대곤 했다. 한국의 호국영령 추모일인 현충일에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고집하고, ‘정한론’의 본고장인 일본 가고시마에서 다시 정상회담을 강행했던 일본 정부다. 이웃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일본에 대해 우리 국회가 굳이 배려를 앞세워 자존을 손상시킨 이유가 무엇인가. ‘친일’을 떼어낸 건 한마디로 우리 국회의 얼빠진 짓이다.

얼마전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가 본격 출범했다. 2월부터는 피해자 접수를 받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외교부는 조만간 ‘한일협정’ 관련 문서 일부를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외교부의 조치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법원의 강제에 따른 것이어서 개운치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과적으로 한일간에 얽히고 설킨 과거사의 매듭을 푸는데 하나의 단초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죄지은 자 먼저 고백-사죄할 때 용서, 화해의 손 내밀 것

근대 100년, 현대 반세기 동안의 한국사는 ‘통한의 역사’라고 역사학자 강만길은 설파한 적이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이 전반기 반은 외세에, 후반기 반은 독재정권 하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해방후 숱한 역대 정권 가운데 이 땅의 민중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집권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21세기 새천년의 초입에서 이제는 20세기의 과거사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 규명이 우선 전제돼야 한다. 민족과 역사앞에 반역한 자, 인권과 민주주의 앞에 죄지은 자들은 모두 역사의 제단 앞에서 고백과 함께 사죄의 눈물을 쏟아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용서의 목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며, 화해의 손이 내밀어질 것이다.

고문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의사당에서 배지를 달고 의원노릇을 한다면 그건 역사의 정의가 아니다. 학살자와 피해자가 버젓이 대로를 활개치고 다닌다면 그 세상은 역사의 정의가 없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또 반민족행위자가 득세하고 짓밟힌 민중이 죄인 취급 받는 나라라면 그건 아예 역사가 없는 나라인 셈이다.

반세기 동안의 갈등과 분열은 이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아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2005년 새해에는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회복하고 아울러 거족적으로 ‘민족 대화해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해에 활동을 개시하는 각종 과거사 규명(청산) 위원회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2005/01/03 오전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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