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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평화기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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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3회째… 10일, 참회와속죄의성당, 장준하 선생 묘소, 고양시 금정굴, 행주산성 방문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아래 부천지부)는 10일(토) 파주의 참회와속죄의성당, 장준하선생 묘소, 고양시 금정굴, 행주산성으로의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이번 평화기행은 부천시평화통일기반조성사업 지원으로 추진되었으며, 부천시민 및 회원 등 24명이 참여했다. 해설은 평화통일 전문가인 방학진 박사가 진행하였다.

부천지부는 7월부터 이번까지 총 3회의 평화기행을 진행하였으며, 참여자들에게 평화기행의 의미가 확실히 전달될 수 있도록 각 회마다 주제를 선정하여 추진하였다. 7월 남양주 모란공원으로의 평화기행을 통해 평화통일과 민주화에 헌신하신 분들의 업적을 살펴보았으며, 9월 김포와 강화도로의 평화기행을 통해 남북 분단과 동시에 전쟁과 국난을 극복하여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현장을 직접 살펴보았다.

이번 파주시와 고양시 평화기행을 통해서는 분단된 남북이 서로 협력하여 이룬 성과와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현장을 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회의 평화기행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파주시 참회와속죄의성당으로의 평화기행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10월 10일 토요일 오전에 참회와속죄의성당을 방문하였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국민의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 천주교의 남북교류와 협력을 통해 이룬 성과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남한 천주교 신부들의 성당 기획, 북한 작가들의 참여로 현재의 성당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룬 이 성당을 통해 대결과 비난이 아닌 협력과 화해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박종선

오전 8시 부천시의회를 출발한 일행은 가장 먼저 남과 북이 함께 만든 <참회와속죄의성당>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전이라 신부님과 수녀님의 양해로 성당 안을 직접 볼 수 있었으며, 예약을 하지 못했음에도 사무장이 직접 성당의 역사와 건립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성당의 외형은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진사동성당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군에 있었던 베네딕토회 수도원 대성당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설명해주었다. 성당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를 알 수 있었으며, 특히 우리에게 잊혀져 있던 북한 지역 성당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 지역은 중국과 가까워 이른 시기에 천주교가 전파되어 많은 신자들이 있었지만 분단이 되고 공산화 되면서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성당 내부의 작품들이었다. 모자이크로 완성된 작품들은 북한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으로 올 수 없는 북한 작가들은 중국 단둥에서 예술품을 만들었으며 이것을 우리나라 신부님들이 들여와 완성하였다고 하였다.

옆 전시관에는 북한 작가들의 많은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장긍선 신부님이 북한과 교류하며 들여왔다고 하였다. 수준 높은 북한의 문화예술을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수예작품이 참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외에도 북한 지역의 천주교 역사와 6.25전의 본당 현황을 볼 수 있었다.

▲리원인(李元仁) 북한작가의 ‘선녀’ 작품1920년 강원도 원산시 명석동 출생의 리원인 작가는 195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가를 졸업한 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신인 자수가를 양성하였으며,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 참회와속죄의성당

방학진 박사는 성당 앞에 설치된 파라솔 밑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북한 지역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천주교과 들어온 과정과 각 지역에 따라 발전한 과정을 전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성당을 나온 일행은 장준하 선생(1918~1975) 묘소로 향했다. 방학진 박사는 묘소 참배에 앞서 장준하 선생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장준하 선생은 평북 의주군 출생을 삭주군에서 성장하였으며,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대장정을 통해 광복군에 합류하였다고 하였다.

김준엽, 박승헌 등과 7개월간 6000리를 걸어서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갔으며 김구 주석을 만나 광복군이 되셨으며, 해방 이후에는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하셨다. 하지만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를 당하시며 우리 사회는 또 한 명의 위인을 잃게 되었다고 셜명하였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와 많이 비교되는데 만약 김구 선생이 살아계시고 김구 선생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장준하 선생도 우리나라를 이끌 큰 재목이 되셨을 거라고 하셨다. 2011년 폭우로 인해 묘소가 일부 훼손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선생의 두개골이 함몰된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의문사에 대한 규명 여론이 많이 높아졌다고 하였다. 우리 회원들은 방학진 박사의 설명을 들은 후 묘소에 참배한 후 세 번째 답사지인 고양시 금정굴로 향했다.

오전 11시부터 고양시 금정굴에서 위령제가 열려 우리 답사단도 함께 참석하였다. 유족을 비롯해 많은 고양시민들이 참여하여 한국전쟁 당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 당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1950년 10월에 희생을 당하시고 1993년이 되서야 처음으로 위령제가 열렸으며, 1995년에 발굴이 진행되었다고하니 그 사이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유가족 대표를 비롯해 시장, 시의장, 국회의원들이 추모사를 했으며 평화공원 건립을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계셨다. 이를 통해 희생자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유가족분들의 아픈 가슴이 위로되길 기도하였다.

▲고양시 금정굴 위령제평화기행에 참여한 부천시민들은 유가족과 고양시 시민사회가 진행한 위령제에 참석하여 한국전쟁 당시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되신 분들의 영령들ㅇ을 기리며 깊은 애도를 표하였다. ⓒ 박종선

위령제 후 점심을 한 후 우리 일행은 오후에 마지막 답사지인 행주산성으로 향했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지 중 하나인 행주산성은 이제 시민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고양시에서는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행주가 예술이야> 야행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답사단은 권율장군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전체적으로 성 안을 산책하듯이 답사했다. 방학진 박사는 특히 충장사(忠壯祠)에 모셔져 있었던 권율 장군의 영정은 예전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장우성 화백이 그려 친일잔재 문제로 논란이 있었는데, 고양시가 동강 권오창 작가가 통해 2024년 교체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표준영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와 승인을 거쳐 2024년 11월 27일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의 해산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그 어떠한 단죄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으로 독립운동가를 핍박하였는데, 그 한 분야가 문화예술이라고 하였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예술가들이 우리 민족의 위인과 독립운동가분들의 영정을 그린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총 4곳의 답사를 한 후 이번 평화기행은 마무리되었다. 특히 금정굴을 통해 민간인학살은 전국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전 골령골, 아산 설화산, 남원 주천면 고기리, 서산 태안,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국가폭력의 진상이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밝혀지고 명예회원이 되며, 유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천지부는 내년에도 많은 평화통일 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부천시민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박종선 기자

<2026-10-1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평화기행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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