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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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 삼의사 묘역 각서 ‘유방백세’ 채색 복원
효창원 삼의사 묘역의 전면 석축에 새겨진 ‘遺芳百世(유방백세)’ 글씨의 채색복원작업이 드디어 완료되었다. 이 각서(刻書)는 본래 채색이 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풍화와 퇴색이 심해져 원상이 잊힌 채로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특임연구원(서울시 국가유산위원회 표석분과위원)이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한 뒤, 옛 사진자료를 고증해 원형을 확인하였다. 연구소는 이에 기초하여 지난 2023년 7월 11일에 「효창공원 삼의사묘역 각서 ‘유방백세’ 채색 상태가 원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관계당국의 주의와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이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시민(민진홍, 용인 거주)이 2024년 3월 용산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 채색 복원작업이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용산구청 담당주무관에 따르면 이 채색복원 정비작업은 올해 5월부터 한 달 가량 진행하여 6월 중순에 완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순우 특임연구원이 고증자문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채색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유방백세’의 측면에 ‘무자춘일 김구제(戊子春日 金九題)’라고 새겨진 부분도 명확히 드러나면서, 이 글씨가 1948년 봄에 김구 선생이 쓴 것이라는 사실도 시민들이 널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삼의사(三義士)의 유해를 봉환하여 1946년 7월 6일 국민장(國民葬)의 형태로 옛 효창원 자리에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을 주도한 당사자가 백범 김구 선생이다. 이에 관해 『백범일지(白凡逸志)』에는 “…… 장례에 임하여 봉장위원회 책임자들이 장지를 널리 구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결국 내가 직접 잡아놓은 용산 효창원 안에 매장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 ‘유방백세’라는 구절은 『진서(晉書)』 「환온전(桓溫傳)」에 나오는 “대장부가 처음부터 아름다운 명성을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없다면, 더러운 이름을 만세에 남기는 일도 역시 부족한 법이니라(大丈夫旣不能流芳百世 亦不足復遺臭萬載耶)”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흔히 이를 ‘유방백세 유취만년(流芳百世 遺臭萬年)’이라는 관용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백범은 ‘유방백세’의 ‘流’를 ‘遺’로 바꿔 적었는데, 삼의사가 의거를 벌인 뜻과 그 공적이 후세에 길이길이 전해지라는 소망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삼의사 묘역 초입에 있는 대문 돌기둥에도 ‘삼의사 묘 정문’과 ‘단기 四二九一년 八월 十五일 건립’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 역시 연구소가 제안한 대로 함께 채색복원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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