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상권 제3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김성수, 김활란, 윤덕영, 윤치호, 박흥식, 이완용…”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한상권 제3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전시실 벽 한 켠에 가득한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에 적힌 이름을 나즈막히 읽어나갔다. 역사학자 임종국(1929~1989) 선생이 친일파들의 이름, 본적, 친일 행위 등을 갈무리해 빼곡히 적어둔 1만3천여장의 친일인명카드였다.
한 위원장은 임 선생의 친일인명카드 제작이 선생의 개인적 아픔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선생의 부친이신 임문호 선생은 천도교 활동을 하셨어요. 천도교는 독립운동의 핵심 세력이었죠. 임 선생도 아버지께 ‘나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렇게만 들었답니다. 그런데 친일파 연구를 하다가 사료에서 아버지 성함을 발견한 겁니다” 충격에 빠진 아들이 진위를 묻자, 아버지는 괴로움에 담배를 태우며 답했다고 한다. “나는 친일파가 맞다.”
그렇게 만들어진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친일인명사전’의 소중한 기초자료가 됐다. 임 선생 사후 자료를 물려받은 역사학자들은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현 민족문제연구소)를 창립하고 친일인명사전 제작의 물꼬를 틔웠다. 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항의와 소송이 이어졌다. 온갖 방해가 있었지만, 199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지 전국 교수 1만인 선언’을 통해 국민적인 지지를 얻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2001년 12월 민족문제연구소를 주축으로 정식 출범했다. 임 선생이 타계한 뒤 20년이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이 완성됐다. 임종국 선생의 부친인 임문호 선생도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한 위원장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청산은 대부분 뉘른베르크·도쿄 전범 재판의 결과에 따라 국가가 주도했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무력화해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국가주도의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 역할을 시민사회가 대신한 결과가 친일인명사전”이라고 설명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완성된 채 머물러 있지 않다. 새로운 역사적 연구에 따라 그 내용을 보완하는 한편, 가치를 재발견하고 더 많은 시민에게 전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여전히 많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그 중 하나다. 한 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문민 사회다. 일제강점기와 군사 독재를 거치며 문민 전통이 무기력한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시민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12·3내란을 막아내면서 문민 사회의 저력을 보여줬다. 친일인명사전도 시민의 힘으로 역사 정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함의가 크다”며 “친일인명사전은 세계사에서 유례 없는 과거사 청산의 수범 사례다. 세계적인 과거사 청산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2000년 전후로 타올랐던 친일파 청산의 불길은 친일파 당사자들을 비롯해 식민지 시대의 기억을 품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사그라들었다. 젊은 세대의 민족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한 위원장을 비롯한 역사학자들의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의 탓”이라며 운을 띄운 한 위원장은 “여전히 친일인명사전은 편찬할 부분이 남았다. 민간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시민의 후원금에 의지해 사료발굴과 집필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후원 회원도 줄어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창립 35주년을 맞이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은 2014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한 뒤 올해 12년만에 처음으로 1만 명 이하(9964명)로 감소했다. 이중 30대 이하는 416명에 불과하다.
한 위원장은 무관심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들 손에 쥐어지는 친일인명사전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사전은 대중과의 접촉이 중요하다. 종이 사전으로는 한계가 있다. 위키백과처럼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연구 결과를 원활히 반영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한 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보유(補遺)편 제작 계획이 있다. (사전을) 디지털화하면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내용 수정도 원활해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친일파 청산이 왜 중요하냐고 묻자, “역사정의의 차원”이라고 답했다. 역사정의가 모든 사회정의의 기반이기 때문에 역사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다른 사회정의도 이룰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위원장은 특히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처음 맞이한 2023년 104주년 3·1절 기념사가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지배를 받게 됐다’거나 ‘일본은 우리나라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고 했다. 식민 지배가 정당했다는 시각”이라며 “그로부터 불과 5일이 지난 3월6일, ‘제3자 변제안’이 나왔다. 대법원이 내놓은 ‘일본제철 강제동원 배상 판결’ 논리를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8년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고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노동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정부 산하 재단이 대신 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는데, 그 배경엔 식민지배는 정당했기 때문에 ‘밀린 임금’만 지급하면 된다는 그릇된 역사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역사 인식도 각성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지난해 광복절 80주년 경축식에서 적어도 촛불혁명 정신에 기반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이 나왔어야 했지만,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다. ‘윤석열 멘토’를 자처한 이종찬 광복회장을 부른 결정도 아쉽다”고 했다. 그렇기에 효창공원 독립공원화 계획이 이름만 바꾸는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효창공원엔 백범 김구는 물론,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를 모신 삼의사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국가보훈부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국립(묘지)공원으로 격상한다는 방침이다. 한 위원장은 “역사적 서사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된 감이 있다. 방치되다시피한 4·19 민주묘지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효창공원이 윤봉길 의사를 중심으로 한 ‘무장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독립운동 노선엔 주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을 의식한 것인데, 이는 무장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것”이라며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가 없었다면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을 명시한 카이로 선언도 없었을 것이다. 효창공원 독립공원화는 무장독립운동을 주류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의 마지막 바람은 정부와 시민들이 뜻을 모아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기록보관소처럼 친일기록관을 만드는 것이다. “뉘른베르크를 보면서 항상 부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닙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성장해온 권리 의식에 기반을 뒀고 그 뿌리는 독립운동입니다. 친일기록관 건립이 우리 사회에 남은 친일의 그림자를 청산하고 지속적인 역사 부정에 맞서는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2026-03-19> 한겨레
☞기사원문: “친일인명사전은 역사 정의,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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