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마당]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한약사 남편의 선행
조호진 기자
정직하고 성실한 한약사이자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을 묵묵히 후원하는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인 박종선(48) 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협동조합은 경기도 부천에서 이주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잘 키우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박씨의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뇌출혈이란 수술이 중요한 질환이라서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8일 기준 15일째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씨에게 현재 상황을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지난 3일 오후에 두 아들과 담당 의사를 만났습니다. 수술 경과는 다행히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로 약 2주째입니다. 빨리 의식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위기 청소년을 돕는 공익 활동가인 저는 좀 약골이라 골골거리며 삽니다. 이런 저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박종선 한약사가 쌍화탕을 수년째 거저 지어주십니다. 이런 호사를 혼자 누리는 게 죄송해서 미혼모 증손주를 혼자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75)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보내주신 쌍화탕 2박스 중 1박스(100봉)를 드렸습니다.
며칠 전, 원미동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박종선 한약사의 ‘쌍화탕’을 먹고 큰 효험을 봤다면서 한약을 더 짓고 싶다고 하셔서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박종선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병원비를 어찌 감당하실까? 안타까운 마음에 얼마간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원미동 할머니를 소개했던 것인데 할머니가 저에게 다시 전화해서는 “약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요?”라며 미안한 목소리로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손자를 혼자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약값을 받지 않고 쌍화탕을 무료로 지어주시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때라면 감사할 일인데, 이분이 지금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병원비로 형편이 몹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할머니 사정을 헤아려서 한약을 무료로 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보 같은 한약사가 고맙고 미안해서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의 아내를 깨어나게 해주세요.
어린 두 아들이 엄마가 깨어나길 간절히 기다립니다.
중학생 큰아들을 성당 복사로 바친 신실한 여인입니다.
죄가 있다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죄 뿐입니다.
하나님, 그의 가정을
원래대로 돌려놔 주세요.
돈을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로 돌아오게 도와주세요.
욕심도 없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살 수 있게,
가난한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남편의 아내로
두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따뜻한 엄마의 자리로
잠에서 깬 듯이 일어나서 소박한 삶을 살게 도와주세요.
입춘이 나흘 지난 6일, 먹장 하늘이 쏟아부은 춘설이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으로 그렇게도 사납게 굴던 도시는 무장해제 당했고 도시를 마비시킨 춘설에 겁먹은 차들과 행인들은 벌벌 기었습니다.
불행은 언제나 예고하지 않고 덮칩니다. 그로 인해 오순도순 식사하며 이야기 나누던 가족의 평안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두 아들의 엄마이자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아내! 박종선씨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춘설이 들이닥친 날 오후에 박종선 한약사의 ‘약초당 한약국’을 찾았습니다. 박 한약사는 원미동 할머니에게 드릴 쌍화탕을 달여서 담고 있었고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은 아빠의 한약국에서 친구와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약사님, 병원비 때문에 몹시 어려울 텐데 왜 약값을 받지 않으셨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 손주를 혼자 키우시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약값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그런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애들 밥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시골에서 어머님이 올라오셔서 애들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모든 것을 다 해주었는데, 아내가 없으니 너무 힘드네요. 아내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아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희생했는지….”
그의 선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아내를 떠올린 그는 무의식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아내 생 각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착한 이웃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그를 안아주면서 저는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이 착한 가족에게 왜 이러세요. 왜? 왜? 왜?’
제가 공익활동가로 일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 대한 후원금을 중단하라고 그에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아내가 이틀 전부터 ‘자가호흡’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조금이라도 호전된 것 같습니다. 마침, 고교 동창이 아내가 입원한 병원의 의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약간의 도움을 받고 있고, 아내가 실비보험 든 게 있어서 병원비 걱정은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수입의 10분의 1을 시민단체와 진보언론 등에게 후원할 수 있는 것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등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가용이 없습니다. 시골 부모님을 찾아뵐 때는 온 가족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는 수완이 좋은 한약사가 아닙니다. 그는 보약인 쌍화탕을 정성껏 지어서 독립운동가 후손과 복지관, 버림받은 손주를 혼자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에게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그는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한약사입니다. 눈물 흘리는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살던 착한 한약사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가 깨어나게 해 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가 잠에서 깬 듯이 회복되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착한 아내의 자리로 복귀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오마이뉴스> 202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