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70]
백강 조경한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자료와 사진, 유묵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인 심정섭 선생이 2012년 5월 제1차 기증을 필두로 하여 14년간 82차에 걸쳐 7천여 점의 자료를 기증했다. 이러한 심위원의 기증자료 중 중요한 것을 간추려 두 차례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것은 심위원의 외조부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자료와 사진, 유묵이다.
심정섭 위원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잃어버린 자료를 모아 독립운동 연구를 해보라”는 외조부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1956년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광주리 속에서 대동신문사에서 발간한 잡지 『대동평론(大東評論)』 창간호(1946.3)를 발견하고서 집어들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김구 선생과 외조부 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18명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이때부터 심위원의 역사 사료 수집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1만여 점의 자료를 수집했는데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자료로 역시 백강 선생의 임정 시절 자료와 유묵을 꼽고 있다. 지난해 12월 심위원이 우리 연구소에 연락해서 백강 선생의 임정 시절 자료와 사진, 유목 등을 포함한 111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조세열 상임이사와 강동민 자료실장 등이 심위원 댁을 방문해 위 자료들을 수령했다.
다음에서 백강 조경한 선생의 독립운동 이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경한(趙擎韓, 1900~1993) 선생의 호는 백강(白岡), 본명은 종현(鍾鉉)이고 이명으로 안훈(安勳)·안일청(安一靑)·조경한을 썼다. 전라남도 승주군(현 순천시)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만주로 건너가 독립단에 가입하고 국내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계명학원(北京啓明學園)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북만주에서 지청천·황학수·신숙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여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한국독립당 산하에 한국독립군을 조직하고 중국 구국군과 연합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1933년에는 중국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오광선과 함께 교관으로 임명되어 간부 양성에 힘썼다. 1935년 민족혁명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1937년 지청천·최동오 등과 함께 조선혁명당을 결성하여 중앙상무위원 및 조직부장으로 활약했다. 이후 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및 미주 등지의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한국광복진선을 조직하는 데 선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40년 5월 중경에서 우익계열의 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 3당을 통합하여 새로운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같은해 9월 중경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주계장(主計長)에 임명되었다. 1941년 2월에는 중국 국민당의 전시간부훈련단에 광복군 장교훈련소가 설치되자 송호성·나월환 등과 함께 훈련 교관을 맡았다. 1942년 10월 광복군 제2지대 정훈조장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비서처 부비서장, 1944년 2월 국무위원회 국무위원, 3월에는 한국독립당 중앙상무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순천, 공화당)에 당선되었고, 임정기념사업회장·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 박광종 특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