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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조선 상대 범죄 입증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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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임종국상 특별상 받은 히구치 유이치 전 관장

히구치 유이치 전 고려박물관장. 길윤형 기자

“저는 일본인이니까 일본이 (조선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이니치 조선인’ 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일본인 자신의 생각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의 범죄 행위는 권력이 한 것이어서 서민과 관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경찰이 중심이 된 관리 체제의 틀 안에 (평범한) 일본인들도 들어가서 (조선인에 대한 감시 활동을) 한 것이 전시 일본 파시즘 체제의 중심적 문제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역사 문제는 그만 잊고, 한-일, 한-미-일 3국 간의 군사협력을 강화하자는 ‘꺼림직한 흐름’ 속에서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 문제를 추궁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친일연구의 선구자인 고 임종국(1929~1989)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제17회 임종국상 특별상 수상자 히구치 유이치(83) 전 고려박물관 관장은 10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일본 사회가 조선을) 식민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지만, (조선인들을) 창씨개명하고 노동동원하고, 징병도 했으며 일본인으로 만들려 했다”면서 “식민 지배가 초래한 조선인들에 대한 억압과 가해 행위를 더 조사해 일본인이 이를 인식하고 남북한 사람들과 우호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공동대표이기도 한 히구치 전 관장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쏟아낸 대표적인 ‘시민 연구자’이다.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해 직업 연구가가 되는 대신 가나가와현 현사편찬실·현립공문서과, 도쿄 신주쿠에 자리한 고려박물관(관장, 2007~2017) 등에서 근무하며 ‘협화회-전시하조선인통제조직의 연구’(1984), ‘황군병사가 된 조선인-15년 전쟁 하 총동원체제 연구’(1991), ‘전시하 조선의 민중과 징병’(2001),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조선 농민’(2010), ‘김천해-재일조선인 사회운동가의 생애’(2014) 등 10여권의 굵직한 저작을 남겼다.

특히 일본 특별고등경찰이 일본 ‘내지’의 조선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협화회(중앙협화회 1939년 설립)를 분석한 1984년 저서(2023년 증보판 간행)는 “아직까지 이를 뛰어넘는 연구서가 없을 정도로 협화회에 대한 종합 연구서”(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종국상심사위원회는 11일 시상식에서 특별상 수여 이유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라는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식민지 조선 민중의 역사를 밝히는데 평생 헌신했으며 한-일 과거사 청산과 시민사회 연대에 기여한 공로”를 꼽았다.

“저는 1940년 옛 만주의 봉천(현 선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쇼와 공황기(1928~1929)로 인해 일본에 일이 없어서 만주 봉천에서 중학교 교원으로 부임했습니다. 소련군이 쳐들어 왔을 때(1945년 8월9일 참전), 당시 (만주를 방어하던) 관동군엔 사람이 없어서 30~40대 남자들까지 징병됐습니다. 부친 역시 1945년 7월에 징병됐습니다. 나중에 증언해 준 사람의 얘기를 들으니 당시 부대엔 소총도 없고 폭약이 있을 뿐이어서 그걸 가지고 러시아군 전차에 육탄공격을 하라고 했답니다. 당시 후쿠시마현 출신 병사(히구치 전 관장의 부친)가 잘 달리지 못해서 숨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식민지 조선 민중사 연구” 공로 인정
일제가 조선인에게 끼친 피해 중심
여러 실증적 연구 업적 낸 시민연구자
일경이 만든 조선인단체 연구 대표작
잡지 ‘재일조선인사연구’ 53호째 발간
“일본, 쌀 수탈 위해 조선 식민지배
아베 총독 1945년 상신서 연구할 터”

그가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메이지학원대학 때였다.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읽은 ‘조선민족해방투쟁사’라는 북한 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 책을 통해 일본에 조선인이 살고 있으며 새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회인이 되면 조선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대학을 마친 그는 조선에 대해 알고 싶어 당시 북-일 교류를 추진하던 공산당 계열 단체인 일조협회(1955년 설립)를 찾아갔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관심 있는 일본인 연구자·언론인들이 모여 만든 일본조선연구소(현 현대코리아연구소)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금병동(1927~2008)·박경식(1922~1998) 등 자이니치 역사 연구자들과 만나게 된다. 특히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1965)이라는 선구적 저작을 남긴 박경식이 숨진 뒤 그가 만든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재일조선인사연구’라는 잡지(지난 10월 53호 발행)를 발행하는 중이다.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평범한 조선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이다. “일본이 왜 조선을 식민지배 했을까요. 쌀 수탈을 위해서였습니다. 식민지배를 시작한 뒤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일본식 농법을 도입합니다. 조선 농민에게 값싼 쌀을 생산하게 해 일본의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고 식량 위기를 넘긴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에게 (공장이나 탄광 등에서) 폭력을 행사해 일을 시켰다고 하지만, 더 심한 것은 (식민지배 말기) 쌀을 공출할 때였습니다. 경찰 입회 아래 공출독려원과 면 서기가 집집을 돌며 숨긴 쌀이 있는지 찾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농민 개개인은 고립돼 있으니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생산한 쌀을 다 공출해가면, 조선 농민이 먹게 되는 건 만주에서 생산한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었지만 그의 집필 의지는 여전해 보였다. 현재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1875~1953)가 1945년에 쇼와 일왕에게 올린 상신서이다. “일본 내무성이 1945년 한해에만 조선에서 100만명을 노동 동원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1년에 무려 100만명입니다. 이를 천황에게 보고하며, 일본의 조선 지배에 대해 설명합니다. 다음엔 그에 대한 책을 쓰려 합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2023-11-16> 한겨레

☞기사원문: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조선 상대 범죄 입증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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