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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 악용하는 위선자 호되게 꾸짖은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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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34) 부천경찰서 성고문 폭로

노동운동 하다 경찰에 성고문 당해
언론은 방관, 검찰은 면죄부 줘
진실 드러낸 피해 여성 권인숙
국회의원돼 인권·차별금지 등 앞장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마태오 10,16)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루카 16,8)

세상은 약육강식의 무서운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생존의 비결로 ‘뱀 같은 슬기와 비둘기 같은 양순함’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제가 신학교에서 사제의 가장 큰 덕목으로 배운 ‘실천적 판단력’의 근거입니다. 지혜와 상식이 바로 법의 핵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 철부지 어린이였습니다. 어린이 사회에서도 나름의 원칙과 원리가 존재합니다. 놀이터에서 이를 어기면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라고 항의합니다. 법이 뭔지를 배운 적도 없는 데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법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런데 법을 많이 배우고 잘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을 향해 위선자라고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법조인들, 바로 법관과 검찰 그리고 수사관, 경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문귀동 피고인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게 바로 접니다. 고소해주십시오”

살다 보면 현실이 생각보다 더 잔인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습니다. 설마설마했던 일들이 나중에 사실로 밝혀져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하였습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도 그랬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교구 홍보국에서 일했는데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으로 인해 언론이 기사화하지 않는 사건들을 주보에 싣곤 했습니다. 1986년 6월,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언론은 그때 “여학생들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안기부의 억지 주장만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표현 자체가 너무 자극적이고 저열할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86년 5월 초, 인천에서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시위의 한 축이었던 인천지역 노동자 단체에는 무시무시한 공안의 탄압이 들어옵니다. 당시는 수많은 대학생이 노동 현장에서 세상의 변혁을 꾀하던 때입니다. 권인숙 학생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대대적 체포령이 떨어지자 지도부는 모두 대피하고 신참인 권인숙 학생이 체포됩니다. 권인숙은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제적 상태였습니다. 5월21일에 부천시 소재의 한 공장에 첫 취업을 했고 6월 4일에 자취방에서 체포되었으니 그야말로 노동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고난을 겪은 셈입니다.

당시 노동 현장에 투신한 대학생들은 공장에 취업하려 학력을 속이고 주민등록증을 위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실정법 위반으로 체포와 조사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권인숙 학생은 부천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지도부의 소재를 밝히라는 추궁에 응하지 않자 끔찍한 일을 겪게 된 것입니다.

공문서위조 혐의로 인천 교도소에 수감 되었던 권인숙 학생은 변호인과 면담 중에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혹시 누군가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조영래 변호사가 고소할 수 있다고 대답하자 권인숙은 비로소 “그게 바로 접니다. 고소해주십시오”라고 청했습니다. 이에 7월 5일 고영구 변호사를 비롯한 9명의 변호사가 부천경찰서 문귀동 형사와 옥봉환 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 6명을 ‘인신 구속 직무에 관한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천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합니다.

경찰 개인 범행 아닌 조직범죄

이 사건은 이렇게 발생합니다. 6월 4일, 권인숙 학생이 부천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6월 6일 새벽, 문귀동 형사에게 2시간 동안 1차로 성고문을 당합니다. 문귀동 형사는 “나는 5·3 인천 사태 때 여자만 다뤘다. 그때 들어온 년들도 모두 발가벗겨 책상에 올려놓으니까 다 불더라…”라는 입에 담기 힘든 폭언으로 협박하며 다른 형사 1명을 옆에 서 있게 한 후 옷을 벗겼습니다. 수배자 중에서 아는 사람을 대라는 것이었습니다.

6월 7일 밤 9시 반부터 11시 반경까지 2차 성고문이 이어집니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우발적 충동이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경찰 권력 내부의 성고문 계획에 따라 자행된 명백한 조직범죄입니다. “이와 같은 만행이 검찰에까지 상세히 보고되었음에도 그 범인이 버젓이 경찰 신분을 유지하면서 대낮에 활보하고 있었으니 도대체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것이 변호인들의 고발장 내용입니다. 권인숙의 아버지는 중견 공무원이었는데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제출합니다.

당시는 5공 시대로 경찰과 안기부는 ‘자신들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며 급진 좌경 학생들의 공작’이라며 반격하였습니다. 한 학생의 고발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게다가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은 앵무새처럼 보도지침만 반복합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7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여성과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과 인권 회복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강론 중에 권인숙의 고소와 변호인단의 고발장 내용이 사실임을 확언합니다. 그리고 정부와 공안당국, 정부 발표를 앵무새처럼 전하는 무책임한 언론을 강하게 질타하며 회개와 반성을 촉구합니다. 이에 청년, 종교단체,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가해자인 문귀동 경장을 고발합니다.

수사를 지휘한 인천지검 검사장 김경회는 가톨릭 신자로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사를 하나 사건을 왜곡 발표하라는 안기부장 장세동의 압력에 시달립니다. 그는 사건 조사 결과를 본인이 발표하지 않고 차장검사에게 시켰는데, 그것이 그가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후일 그를 만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느냐, 이것은 중범죄다”라고 강하게 항의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한계와 검찰의 무력함을 솔직하게 시인했습니다.

1988년 5월17일 부천서 성고문사건으로 기소된 문귀동씨의 첫 공판에서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방청 신청자들이 법정 밖에서 공판을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래도, 결국 진실이 드러났다

오늘날 검찰이 만끽하고 있는 수사독립권은 우리 청년 학생, 민주시민, 노동자, 농민들의 헌신 덕분입니다. 검찰은 이 점을 깊이 성찰하여 그동안 독재 정권에 굴종했던 잘못된 과거를 겸허하게 고백하고 무엇보다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검찰의 진솔한 고백과 성찰을 요구합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권인숙 측의 고소 고발에 맞선 문귀동 측의 명예훼손 혐의 고발과 무고 혐의 맞고소로 진흙탕 싸움이 됩니다. 검찰은 문귀동에게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문귀동 경장 파면과 옥봉한 부천경찰서장 경질 선에서 이 사건을 무마합니다. 한편 권인숙 학생은 공문서 변조죄 등으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됩니다.

그러나 역사의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사건과 6월 항쟁 이후 경찰 간부들이 대대적으로 물갈이되고 부천서 사건이 재조사된 것입니다. 다행히 수사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전두환 군부독재 하에서도 상당 부분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긴 재판 끝에 결국 문귀동은 1988년 4월 9일 구속되고 7월 23일에 징역 5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습니다. 여기서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기독교인이며 여러 차례 표창까지 받은 모범 경찰관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권인숙 학생의 용기와 결단을 높이 평가합니다. 당시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여성들은 상당한 모멸과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여성들이 이러한 피해 사실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언론은 피해자에게 그런 일을 당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증언은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웠고 언론은 외면하거나 백안시합니다. 이렇듯 폐쇄적이고 비인간적인 한국 사회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사람이 권인숙입니다. 권인숙은 우리 시대의 용감한 여성이자 훌륭한 투사입니다.

2021년 11월3일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오른쪽부터), 이상민, 박주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팻말을 들고 있다. 경찰의 조직적 성고문을 드러낸 대학생 권인숙은 의원이 돼 성범죄에 맞서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시간이 지나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권인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느냐”라고 하면서 용기가 대단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시 경찰들이 입었던 옷의 종류와 색깔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권인숙은 자신이 의류학을 전공해서 그 분야에 예민하다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불의한 권력 구조의 성범죄 뿌리를 뽑아낸 주역은 한 여대생이었습니다.

권인숙 학생은 명지대 교수를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시대의 독재를 이겨내고 경찰과 안전기획부, 검찰 등의 폭압을 극복하며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에 우뚝 선 것입니다.

지금도 용기 내어 성범죄를 공개적으로 꾸짖고 고발하는 의로운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선구자가 바로 권인숙 의원입니다. 여성의 이름으로, 8천만 겨레의 이름으로, 아니 온 인류의 이름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그동안 범죄를 저질렀던 검찰과 국가 수사기관 특히 언론인들의 근원적 회개와 문화 개선을 염원하며 기도합니다. 저는 또한 이 기회에 교회 공동체가 저질렀던 범죄도 함께 고백합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겪은 수난은 글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아직도 평등의 시대는 멀고 험합니다. 더욱이 더 큰 사랑과 하나됨을 지향해야 할 종교에 있어서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마지막 남은 봉건적 유산으로 치부됩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세례의 근본은 온갖 유형의 차별을 타파하고 평등을 실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여전히 성차별이 엄존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교회는 바로 세례의 원리, 평등의 원리에 반하는 모순적 행업입니다.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를 빕니다. 특히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권력 문화가 짓밟은 여성과 어린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불법과 비인간적 범죄로 약자들에게 저지른 온갖 죄와 잘못, 특히 성폭력 등 비인간적 죄를 고발하며 뉘우치오니 저희 모두에게 응당한 벌을 주시고 깨우쳐 주십사 간청합니다. 저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과 딸임을 깨닫고 형제자매임을 확신합니다. 하오니 하느님과 부모를 사랑하듯 이웃과 모든 약한 이들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도록 깨우쳐 주소서. 하느님께서 지향하시고 명하신 평등한 제자직 공동체를 이룩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은 아름답게 완성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함세웅 신부 _ 1968년 천주교 신부가 된 뒤 줄곧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1974년)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현역 은퇴 뒤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의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대사와 관련해 쓴 글과 붓글씨를 싣는다.

<2022-05-23> 한겨레

☞기사원문: 법 악용하는 위선자 호되게 꾸짖은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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