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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아산 염치읍 학살지에서 탄피 대신 낫이 출토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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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유해 매장 확인… 수십여 구 추정

▲ 7일 오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새지기 민간인 집단희생지에서 살해도구로 보이는 낫이 출토됐다. 사진 속 낫은 “왜낫”으로 보인다. 낫에는 “조선낫”과 “왜낫”이 있는데 “조선낫”은 조선에서 만든 낫이고 “왜낫”은 일본제국주의 때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갖고 오거나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생산한 “일본낫”이다. 제조방법에 따라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려 만든 “조선낫”과 공장에서 얇고 날카로은 강철로 만든 “왜낫”(일본식 낫)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 심규상

충남 아산 염치읍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민간인 유해가 추가 발굴됐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아산유족회(이하 아산유족회)에서는 이곳에서만 최소 8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산유족회는 7일 오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새지기 일원에서 집단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아산시와 아산유족회는 아산시 일대에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유해매장추정지에 대한 유해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 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날 유해가 확인된 새지기 일원에서의 집단희생은 1950년 9월 26일 새벽부터 3일 동안 마을 내 우익성향의 청년들과 치안대 등이 마을 내 좌익활동 관련자들을 마을 공회당에 구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들은 구금자들을 새지기 공동묘지로 끌고 가 집단 살해했다.

▲ 7일 오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새지기일원에서 발굴된 고무신과 유해 일부. 집단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 홍남화

증언에 의하면 살해 도구는 총이 아니었다. 쇠몽둥이와 낫, 쇠스랑 같은 농기구였다. 농기구를 마구 휘둘려 상처를 낸 다음 사람들을 미리 파놓은 구덩이(가로세로 약 8m)에 몰아 놓고 그대로 생매장했다.

이날 시굴 조사에서는 희생자의 두개골과 다리뼈 등 유해와 함께 고무신 등 유품 다수가 나왔다. 다른 집단희생지에서 함께 출토되는 탄피와 탄두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증언을 뒷받침하듯 살해 도구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녹슨 낫이 발굴됐다.

2019년 발굴에서 유해 7구 발굴… 두 명은 형제

이곳에서는 지난 2019년 아산시가 주도한 발굴에서도 유해 7구가 발굴된 바 있다. 이 중 두 명은 서로 친형제였다. 유품으로는 단추, 머리빗, 신발 뒷굽 등이 나왔고 역시 탄피 등은 출토되지 않았다.

홍남화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부 지부장은 “증언에 의하면 희생자 중에는 탕정면에 사는 만삭의 임산부까지 포함됐고, 최소 여섯 가구가 부역 혐의와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희생됐다”고 말했다.

▲ 7일 오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새지기일원에서 집단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확인됐다. ⓒ 홍남화

아산시와 아산유족회는 시굴 조사에서 유해 매장이 확인된 곳에 대해서는 진실화해위원회와 협의해 올해 중 본격 유해 발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 5일과 6일 시굴 조사에서는 성재산 방공호(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일원에서 당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한 부역 혐의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 일부와 탄피가 발굴됐다. 아산유족회는 이곳에서 최소 수백여 명의 유해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규상(djsim)

<2022-05-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아산 염치읍 학살지에서 탄피 대신 낫이 출토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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