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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뉴스] [깊은 내공] 제주4·3 추념식 참석한 윤석열, 의미는? -함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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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이기상의 뉴스공감>

○ 진행 : 이기상 앵커

○ 출연 : 함세웅 신부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주요발언)
– “제주4·3 어린시절 폭동이라고 배워”
– “노무현, 제주4·3에 대해 사과…공론화 계기”
– “제주4·3 희생자 덕분에 역사 진전되고 여기까지”
– “제주 아픔 치유될 때 한반도 아픔 치유되는 의미”
– “동적인 의미 살아있는 표현인 ‘항쟁’, 이젠 제주4·3 항쟁”
– “국가보안법 폐지, 인권위 가장 가치 있는 제안”
– “윤석열 불안하지만, 제주4·3 추념식 참석은 희망”
– “尹, 제주 방문·삼성 조사했던 기백…희망 보여”
–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직 예수님이 안하셨다? 비겁한 논리”

말이나 글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웬만한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보고 내공이 있다고 표현하는데요. 오늘 선보이게 될 새로운 초대석 코너 깊은 내공에서는 우리 사회와 정치, 종교계의 거목과도 같은 원로 분들 모시고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깊은 생각과 거침없는 쓴 소리 들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을 맡고 계신 함세웅 신부님 모시고 어제로 74주년을 맞이한 제주4.3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의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한 달에 한 번씩 사회 각계각층의 내공 깊으신 좋은 말씀해 주실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시간을 같이 평화방송과 나누게 된 것에 대해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성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미사 봉헌할 때도 그렇고 성경을 읽으면 체험나누기 하지 않습니까? 체험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대화하고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나눔과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대를 고민하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 저에게는 현실과 대화하는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왔습니다.

▷어제가 74번째 맞이하는 제주4.3 추념식이었습니다. 지금 추념식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갖는 의미부터 짚어보면서 얘기 시작해 보도록 하죠.

▶제주4.3항쟁에 대해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주 폭동이라고 배웠어요. 그렇게 늘 4.3폭동이라고 배웠다가 유학 생활 끝나고 인권운동 민주화 현실에 와서 많은 역사학자들로부터 그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듣고 우리가 과거에 배웠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특별히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국 남한 정부는 48년에 수립되었지만 이 사건은 47년부터 시작돼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의 사건이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4.3의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제가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정부 수립 이전의 사건을 구태여 대통령이 사과하실 필요가 있겠냐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45년에 해방이 되었으니까 민족공동체를 포함하는 의미에서 그 당시 미군정하이긴 했습니다만 정부를 대신한 폭력에 의해서 공권력에 희생되신 분들에 대해서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사과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의견을 주신 분도 계시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공식적으로 사과했어요.

그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이미 4.3의 현장을 잘 조사를 하자. 기초를 마련하셨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으로 사과를 하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제주4.3진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법률도 규정되고 이번에 또 재심 법률이 다시 정하게 됐는데 저도 개인적으로 그 사건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45년에 일제로부터 우리가 해방이 되었다지만 그 45년부터 48년까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미군정, 군 체제, 우리가 식민지 체제였어요. 미국의 식민지 체제였어요. 그 체제 하에서 이루어진 미군정의 체제는 특히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일제 순경들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거예요.

47년 3월 1일에 3.1독립선언기념행사를 하는데 그걸 통제하는 경찰들이 바로 어제 일본에 아부했던 일제의 경찰들이었어요. 이거는 있을 수 없겠다. 그래서 애국심, 민족심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했죠. 그 이면에는 남로당분들도 다소 계셨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민족적인 정의감, 열정 속에서 시작한 3.1운동기념행사였는데 이거를 친일경찰들이 제재하고 억압하고 그러면서 몇 사람이 다치고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게 사건의 발단이 되었는데 빌미로 민중들이 들고 항거하니까 그걸 무차별하게 막 서북청년단, 경찰, 심지어는 군인들까지 총 동원하면서 무차별하게 양민들을 학살했죠. 그것이 47년부터 54년까지 7년 동안 그 당시 제주도 인구가 30여 만 인데 크게는 3만 명 정도 적게는 2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는 거죠.

역사적인 부채가 되는 건데 70여 년이 지나니까 이제 진상이 밝혀지게 된 것이죠. 역사가 정화하면서 바른 가치관을 찾는 여기에 왔다는 게 대단히 아름답고 저는 이 부분을 성서와 연계해서 묵상할 때 12월 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이에요. 헤로데 치하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헤로데가 예수님의 탄생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탄생 소식을 듣고 동방박사가 달려왔을 때 헤로데가 품은 의문은 예수님을 살해해야 하겠다. 그런데 동방박사가 꿈에 천사의 지시를 받고 다른 데로 간 거예요. 베들레헴 일대에 두 살 이하의 모든 남자 어린이들을 다 살해했다고 마태오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을 우리가 순교자라고 해요. 저는 70, 80년대 때 그 대목을 늘 묵상했어요. 어린이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억울하게 죽은 것뿐이에요.

억울하게 죽은 그 어린이들이 순교자다. 교회가 칭송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모든 역사상 국가권력에 의해서 억울하게 숨진 분들에게는 순교적 의미가 있다. 우리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자 못지않게 제주4.3희생자들도 순교자적인 의미가 있다고 과감하게 해석하면서 글을 쓰고 강론도 하고 했습니다.

그분들의 덕택으로 역사가 진전되고 여기까지 왔어요. 과정 속에서 노력했던 많은 분들,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민족의 상처도 치유됐다는 측면, 제주항쟁의 의미는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겪어봤던 74년의 역사와 같은 것이 되겠죠. 제주항쟁의 아픔이 치유될 때 한반도 역사가 치유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순교 의미와 연계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 항쟁이라고 이 사건을 부르셨는데 예전에는 제주 폭동이라고 불렸고 제주사건, 제주항쟁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것이 사회전반에 있어서 규정 지어지는 방법들이 상당히 그때마다 달랐던 것이 사실인 것 같고요. 지금 이 시점에서 제주 항쟁이라고 부르면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광주와 연계될 것 같아요. 저희들도 80년에 광주의 비극이 있었을 때 정부가 다 광주사태, 이렇게 했어요. 저도 광주사태라고 불렀고 글을 썼어요. 제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일을 할 때 학자들이 저한테 지적을 하시는 거예요. 신부님 같은 분이 역사의식을 갖고서 표현을 하셔야지 그렇게 일반적인 용어를 쓰시면 됩니까? 반성했어요. 용어자체에 역사적인 의미가 담기는 것이구나.

그다음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에요. 그때 여야 국회에서 합의 되기가 어려워서 다음 단계와 민주화운동이 공식이름인데 민주화운동보다 더 큰 의미, 불의에 대한 항거의 의미가 있다. 항쟁의 의미가 있다. 일반 민중들과 함께 광주민주항쟁, 민중항쟁이라고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불의와 맞서 싸우는 민초들의 아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의 의미가 담겨 있죠. 동적인 의미가 살아 있는 표현에서 항쟁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주4.3항쟁이라고 불러봅니다. 지난주에 제주4.3항쟁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수용인 40명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평생 옥살이 하신 분들이에요. 무죄판결을 받게 됐는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다행이죠. 미군정 당시의 문서 기록에 나와서 그렇게 판결이 근거가 되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런 근거 없이도 제주항쟁의 희생자라고 후손들이 말씀하시면 그 상황을 조사해서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과감하게 그냥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그러한 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죠. 제주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제주 신부님들도 만나 뵙고 희생자들, 가해자 가족들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제주 4.3항쟁에 대한 치료는 일제 식민 잔재에 대한 치유와 함께 미군정이 저질렀던 범죄, 이승만 정권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속죄의 의미도 있고 또 치유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동안 역대 한국 군사정부, 독재정부가 저질렀던 모든 죄악에 대해서 우리가 씻고 나가는 정화의 의미가 있다는 측면 속에서 이 의미를 되새기고 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무죄, 역사적 선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부분이나 이번에 제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역사를 우리가 제대로 바라본다는 거, 제대로 인식하고 공부한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바로 바라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성서 자체가 역사거든요. 거기에서 성서를 오해하시는 분들은 정치를 빼라, 역사에서 성서의 정치를 빼면 성서 자체가 하느님의 정치, 경제, 구원의 역사, 교육학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모세, 다윗 행정까지 모든 내용들은 정치적인 사건의 연속이거든요. 그 사건을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종합하고 어떻게 규결 짓고 또 구원의 길로 나아가느냐가 구원의 역사인데 이 부분에 대한 오해, 아직 일정 수준까지 못 올라갔기 때문에 신자들도 오해하고 계시는데 하느님의 정치, 이 부분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간에 대한 가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고 나아가야 하죠. 그래서 가톨릭의 국가관이나 역사관의 핵심은 하느님의 가치,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가치가 우선적이다. 그다음에 개인의 가치. 물론 개인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개인의 가치를 지나치게 우선하면 개인주의에 빠지고 또 공동체 가치를 우선하면 이른바 전체주의 공산주의로 나갈 수 있죠. 둘에 대한 조화, 그거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하느님 안에서의 해소,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헌신의 의미, 모든 것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4.3사건으로 촉발되었던 여순항쟁 진상규명도 현재 살아가는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순항쟁은 48년 국가보안법 제정의 배경이 됐고 마침 지난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와 함께 국가보안법폐지를 10대 인권 과제로 선정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하는데요. 국가보안법폐지의 필요성, 정당성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위원회가 하신 일중에 가장 아름답고 큰일을 하신 것 같아요. 너무 늦었습니다만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새 언론을 보면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해도 무죄가 되는 세상 아닙니까? 제가 뉴스를 보면서 놀라는 거예요. 언제부터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또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을 해도 무죄라고 선고할 수 있는 건가. 이게 우리들의 시민의 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에 가능한 판결이거든요.

박정희나 전두환 독재시절에는 그런 얘기하면 바로 감옥 가서 10년, 20년 감옥 생활을 했던 때였어요.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아직도 사상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 있는 거예요. 국가보안법이라는 거죠. 흔한 말로 이현령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48년 당시에 제주항쟁과 여순항쟁 관련된 내용으로 국회 프락치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국회의원들은 독립의 열정에 불타서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미군정의 종식과 함께 민족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한다.

상해임시정부, 만주의 독립투쟁, 무장투쟁 정신들의 내용 이런 거를 가지고 주장했는데 이분들에 대한 주장이 너무 거북하니까 이승만 정부가 그분들을 간첩으로 몰면서 반공법을 적용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게 된 배경이 됐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한 악순환이 50년 동안 되고 이렇게 돼서 아주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 무죄 받으신 분이 수백 명이 됩니다. 어부, 바다에서 고기 잡다가 잘못해서 북으로 갔다 오신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또 간첩이 되고. 북에 우리 가족 중에 한두 분 계시잖아요. 왔다 가면 또 간첩을 만들고 사실 한국의 치안본부나 중앙정보부나 보안사령부가 한 일은 인위적으로 죄 없는 양민들을 간첩으로 만든 역사, 이 대목을 정말 대통령도 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해야하겠죠. 연이어 무죄판결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했던 장본인들은 책임을 안지고 있는 거예요. 이 부분은 마땅히 폐지해야 하고 특히 국가보안법 7조는 사상의 자유인데 동조했다는 의미. 이것은 법으로 있을 수 없는 거예요.

벌써 폐지 됐어야 했는데 사법이, 죽은 법이 됐습니다만 적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서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시점에 이 폐지를 권고했다는 것은 적절하고 마땅하죠. 윤석열 새 정부가 국가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세계사 쪽으로 훌륭하게 진일보 되는 정말 성숙한 민주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죠.

▷인수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와 함께 국가보안법폐지를 10대 인권 과제로 정해서 전달했다고 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 번 지켜봐야 할 것 같고요. 지나온 역사적 진실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진정한 화해를 우리가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매듭지어야 하는 이유, 결국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겠죠.

▶화해라는 말이 좋은데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진실과화해위원회를 했는데 위원장 하셨던 분들과 실무자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랬더니 저희들이 깊은 숙고 없이 남아프리카의 모형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남아프리카와 우리의 사정은 다른 점이 많았거든요.

우리는 진실 화해보다 진실을 확인하긴 너무 어렵고 불가능해요. 정의를 기초로 뒀어야 했는데 정의화해위원회, 정의를 기초로 해서 옳고 그름을 가르고 난 다음에 해야 하는데 진실은 밝히기가 어려운 때가 많은 거죠. 이게 서로 논쟁만 되고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정의와화해위원회를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이 부족했다는 역사적 성찰이 있습니다. 성서도 정의를 가장 큰 덕목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이지만 정의의 하느님이세요. 그래서 하느님의 역사적 심판, 최후의 심판, 그런 식의 의미에서 그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의 의미를 놓치고 있는데 역사적 관점에서도 이 정의가 가장 큰 덕목이 돼야 하는데 이 정의의 덕목을 놓쳤다는 측면에서 아직 아쉬움이 많은 것이죠.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점, 이승만 독재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점. 유신독재 청산하지 못한 점, 전두환 독재 청산하지 못했던 점. 그 유산이 넘어오고 있는데 다행히 부분적으로 우리 윤석열 당선자는 어제 제주도 가지 않았습니까? 그분 특유의 결단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거예요. 전 대통령은 안 갔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서 불안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또 역시 이렇게 조사했던 삼성도 조사했던 기백이 있으니까 돌출된 측면 속에서 뭔가 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있구나. 이건 저는 희망을 바라보는 거죠. 희망을 키워서 그분이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어제 말씀하신대로 윤석열 당선자가 추념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유가족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어떤 접근을 해나가야 할까요.

▶국회에서 제정될 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그 법의 정신을 따라서 법적으로 판결이 나면 그 법을 잘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그동안 상처받았던 분들에 대한 회복이나 보상, 이런 측면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겠죠. 제주 현장을 많이 가봤는데 제주현장에 제주4.3희생자를 기리는 아름다운 묘역도 있습니다만 희생자들을 탄압했던 분들을 기리는 묘지도 화려하게 있는 거예요. 두 가지 모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겠는가.

이런 측면을 교회사적으로 늘 생각을 해 봅니다. 303년 종교 자유를 획득한 다음에 451년 에베소 공의회 때까지 한 130여 년 동안 교회도 많은 갈등의 시간을 지내고 있었거든요. 치유되고 회복되기까지 무려 130, 140년이 걸렸어요. 치유되는 과정이 어렵구나. 그때 신앙을 배반하셨던 분들, 신앙을 멀리하셨던 분들. 이분들 치유할 때 엄격한 잣대가 있었어요.

우상에게 제사를 바치셨던 분들, 절하셨던 분들, 향만 뿌렸던 분들, 배교자 문서만 받으셨던 분들 구분하면서 자동적으로 보속을 줬거든요. 역사의 바른 길에서 일탈했던 분들에 대한 보속의 기준을 바르게 정해서 적절하게 자기들이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기회를 놓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판결해서 법원이 판결해서 배상만하고 있는데 그 판결했던 판사들, 조사했던 검찰, 경찰, 관리들 역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죠. 책임을 지는 부분에 대한 게 없는 거예요.

▷우리가 왜 이렇게 청산이나 책임이 잘 안 이루어질까요.

▶일제 잔재 청산하지 못한 거에 있는데 우리가 6월 26일이 고문피해자지원의 날입니다. UN이 정한 날이에요. 우리도 거기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문서로 가입을 했습니다만 실천을 안 하는 거예요. 조금은 진실 되지 못한 접근이라고 할까요. 이 부분을 뼈아프게 성찰하면서 뉘우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도 신자의 생활에서 하등통회와 상등통회라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 상등통회예요. 그런데 형식적으로 말만 가지고 뉘우치는 것을 하등통회라고 해요. 형식적인 고백의 의미.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만 질적으로 높은 것은 내적인 통회, 상등통회의 범주에 올라가도록 국민들의 수준을 높여야하겠죠.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화, 인권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들,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우리 교회가 정의와 평화, 인권에 대한 가르침들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 부분은 교회 구성원, 사제로서 부끄러운 일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역사적으로 정말 잘못한 일이 많았거든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중세교회, 각 지역 교회나 본당에서 나왔던 횡포, 거기에서 특히 여성신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제자직의 평등성, 이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2000년 전에 여성들이 경시받았던 사회 속에서 여성들을 동지로 또 친구로 제자로 삼았는데 그 예수님 이후에 사도들과 그 후 시대는 예수님의 평등의 사제직을 놓침으로서 너무 위계적으로 계급적으로 갔다고 이 부분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 속에서 여성신학자들의 주장과 함께 예수님께서 지향했던 예수님 제자직의 평등성을 우리 사제들이 정말 뼈아프게 뉘우치고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 사제직이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있거든요. 이거는 마땅한 것이죠.

예수님 시대에 여성 사제직이 없었다고 해요. 그러면 예수님 시대에 없었던 것이 여성사제뿐이 아니거든요. 없었던 게 많은데 얼마나 많은 것을 거행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여성사제만 나오면 여성사제직 예수님이 안 하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건 아주 비겁한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과감한 열린 시각이 있어야 하겠죠. 이 부분을 성서에서 예수님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기 전에 다음 주 성주간을 앞두고 사순 시기 마지막 주간을 살아가는 많은 신앙인 여러분께 끝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순절은 이번 성지주일이 모든 전례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사 전에 저희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예수님께서 예수살렘 입성하시는 거를 환영,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 만세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그런데 미사가 시작하면서 수난복음을 읽는 거예요. 예수님을 환영했던 군중, 꼭 그분들은 아니었겠지만 그 군중이 똑같이 제자들과 거짓된 무리들의 선동에 의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거예요.

내재된 모순, 주님을 호산나라고 환영하면서도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이중의 모순이 내 안에 내재하는 부분을 성찰하는 것이 성지주일의 핵심이 되겠죠.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 제도 안에 이중성, 거짓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뿌리 뽑는 것이 최후의 만찬의 의미,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가 되겠죠. 성 주간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가슴을 찢고 뉘우치고 십자가 예수님의 진솔한 그러한 삶을 따라가는 결단의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도 함세웅 신부님과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에너지에 늘 감동을 느낍니다. 너무 감사하고 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인 함세웅 신부님과 함께 우리 시대의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말씀 나눴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pbc 가톨릭평화방송 <이기상의 뉴스공감>’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pbc 가톨릭평화방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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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이기상의 뉴스공감 (vigorousact@gmail.com)

<2022-04-04> cpbc뉴스

☞기사원문: [깊은 내공] 제주4·3 추념식 참석한 윤석열, 의미는? -함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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