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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반일종족주의’ 역사 왜곡에 맞서고, 학계의 거목들 쓰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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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학술계 결산
뉴라이트 연구자들 또 한차례 역사부정 소동에 역사학계 체계적 반박
민중사학자 이이화, 생태사상가 김종철, 한국 여성학 대모 이효재 떠나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5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440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촌을 강타한 가운데 올해 국내 학술계에도 주목할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 우익의 논리와 연계된 국내 연구자들의 역사부정 행위가 올해도 이어졌으며, 이이화·김종철·이효재 같은 학계의 거목이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연달아 일어났다.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 역사 도발

올해 국내 학술계에서 가장 큰 사건은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일으킨 ‘일제강점기 역사 왜곡’ 소동이었다. 지난해 <반일 종족주의> 출간으로 한차례 논란을 불렀던 이 책 집필자들이 지난 5월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두 번째 책을 펴낸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은 비슷한 시기에 터진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얽혀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비화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우익 연구자들이 쓴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역사학계의 비판을 반박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반일 종족주의> 주장을 되풀이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주장은 사료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호도했다는 역사학계의 재반박에 부닥쳤다. 전선은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두고 그어졌다. 역사학계는 일제강점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위안부 강제동원’이 자행됐으며 ‘위안부들이 위안소에 감금돼 인간으로서 존엄을 침해당한 국가범죄의 피해자’였음을 입증했지만, 우익 집필자들은 ‘권력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책들도 잇따라 출간됐다.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역사 왜곡에 맞서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반박서를 낸 학자는 강상현 성공회대 교수였다. 강 교수는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에서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사료적 근거를 대가며 비판하고, 일본 극우의 역사부정론이 한국 뉴라이트의 ‘반일 종족주의 프레임’으로 각색됐음을 논증했다. 강 교수에 이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으로 이영훈 등의 주장을 다시 해체했다. 전 교수는 이 책에서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사실을 재가공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공박했다. 그러나 일부 수구언론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 사태’가 나자 <반일 종족주의> 집필자들의 언어와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정의기억연대와 수요집회를 비판하는 데 몰두했다.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자들이 박정희 군사정변 기념일인 5월16일에 맞춰 책을 펴냈다는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영훈 전 교수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가 망한 이유가 “개인보다 사회를 앞세우는 전체주의”에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전체주의적이었던 이승만-박정희의 통치를 옹호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뉴라이트 연구자들이 일으킨 역사 왜곡 소동은 결국 역사학계의 계속된 비판과 역공 속에 이들의 주장이 공론장 밖으로 밀려나는 양상을 보이면서 수그러들었다.

생태사상가 김종철.

큰 족적 남긴 김종철·이이화·이효재

올해 학술계의 또 다른 주목할 사건은 굵직한 학문적 자취를 남긴 학자들이 연거푸 타계한 일이다. 생태사상가 김종철,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한국 여성학의 대모 이효재가 올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7월 갑자기 세상과 이별한 김종철은 30년 동안 올곧게 생태주의 운동을 벌인 이론가이고 운동가였다. 1991년 국내 최초의 생태주의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뒤 타계할 때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 잡지를 발행해 왔다.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그는 지금 상황을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는 전면적인 위기, 정치나 경제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문화적 위기, 즉 도덕적·철학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1999년 펴낸 평론집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지난 8년 동안 <녹색평론>을 엮어내는 일이 자신에게는 ‘구원’과 같았다며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치거나 깊이 병들었을지 모른다”고 술회했다. 김종철은 이 잡지의 매호마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문명을 생태 문명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고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펴낸 <녹색평론> 5·6월호 권두언에서는 지구 전체를 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대재앙이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라며 “이윤을 위한 이윤 추구, 소비라기보다는 끝없는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시스템을 종식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역량이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썼다.

이렇게 ‘생태 사상’의 전파에 힘쓰는 중에 김종철은 민주주의 심화와 불평등체제 혁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촛불시위가 번져 나가던 2017년에는 주권자인 시민의 정치적 힘을 키우기 위해 추첨을 통한 시민의회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도 김종철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공론화에 앞장섰다. 김종철의 선도적 노력으로 기본소득은 정치적으로 뜨거운 현실적 주제로 떠올랐다.

역사학자 이이화.

김종철의 타계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민중사학의 거목 이이화가 세상을 떠났다. 이이화는 극심한 가난 속에 고학한 탓에 대학에서 정식으로 역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두루 꿰는 장쾌한 시야로 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며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1994년부터 10년에 걸쳐 쓴 총 22권의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는 개인이 쓴 통사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선생님은 상아탑에 갇힌 민족사를 해방시켜 대중의 역사, 거리의 역사, 현실에 발 디딘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바꾼 행동하는 지성인이요 실천가셨다”고 고인의 삶을 기렸다. 이이화는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에도 깊숙이 관여했으며 제 2대 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민중사학자로서 이이화가 깊은 애정을 지녔던 한국사 분야는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집필에 몰두한 <동학농민혁명사>(전 3권)는 이이화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 이이화는 동학농민혁명의 평등·자주 사상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학자 이효재. <한겨레> 자료사진

10월에는 한국 여성운동의 1세대 지도자 이효재가 96년의 삶을 마쳤다. 1950년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효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자리 잡은 뒤 한국 최초의 여성학과를 탄생시켰다. 이효재는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문제’를 독자적 주제로 연구했고, 한국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 여성학 이론을 만들었다. 이효재가 1979년에 펴낸 <여성해방의 이론과 실천>은 여성운동의 교과서로서 수많은 후배 여성들을 여성운동으로 이끌었다. ‘우리 역사의 맥락 속 여성운동’에 대한 강조는 ‘분단사회학’ 개척으로 이어졌다. 분단사회학은 남북 분단이 여성과 가족을 비롯해 사회구조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함으로써 분단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분단과 여성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는 그의 학문적 노력은 1985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열매를 맺었다.

이효재는 사회적 실천에도 깊이 관여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의 전신) 창립을 주도했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전쟁 범죄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노력을 다했고,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위안부’ 특별보고서 채택을 이끌었다. 1990년 정년 퇴임 뒤에도 ‘평화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자신이 직접 제안해 마련된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자 호소하는 여성 10000인’ 기자회견에 나와 ‘전쟁과 핵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들이 앞장서자’고 제안했다. 이효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남북이 화해해 평화통일을 이루자’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2020-12-25> 한겨레 

☞기사원문: ‘반일종족주의’ 역사 왜곡에 맞서고, 학계의 거목들 쓰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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