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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2008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 자료집 내려받기 공고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 아래와 같이 2008년도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개최합니다. 때 _ 2008년 2월 23일(토) 오후 1시 30분 곳 _ 충무아트홀 1층 컨벤션센터 2008. 2. 16.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직무대행 임헌영 모시는 말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과거사청산과 역사정의실현을 위해 활동해온 민족문제연구소가 창립 17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오랜 산고 끝에 올 8월 민족사의 과제인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이 드디어 첫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연구소를 움직여 온 힘은 오로지 국민적 지지와 성원 그리고 회원들의 헌신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기면서, 연구소는 친일문제연구총서 완간, 역사자료관 건립 등 막중한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 열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제 17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돌이켜보고 오류를 반성하며 새로운 각오로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연구소의 어른께서 타계하시고 사회 전반에 걸쳐 퇴행적 기류가 만연하는 등 연구소 내외의 정세가 실로 엄중하기만 합니다. 역사의 진전을 바라시는 선생님. 연구소가 민족사의 과제들을 훌륭히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보태주십시오. 바쁘시더라도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고 용기를 불어
[사설] 한-일 관계의 질적 도약을 기대한다
[사설] 한-일 관계의 질적 도약을 기대한다(한겨레신문, 09.09.16)
[경향과의 만남]임기 두 달 남기고 ‘진실화해위’ 활동 소회 안병욱 위원장
[경향과의 만남]임기 두 달 남기고 ‘진실화해위’ 활동 소회 안병욱 위원장(경향신문, 09.09.14)
조문기 선생의 ‘슬픈 조국의 노래’-주간한국(08.02.21)
조문기 선생의 ‘슬픈 조국의 노래’
日시마네현 “독도는 일본땅” 광고탑 건립-서울신문(08.02.22)
日시마네현 “독도는 일본땅” 광고탑 건립
일본 역대 정권 과거사 인식
일본 역대 정권 과거사 인식(한겨레신문, 09.09.16)
“기득권 놓지 않고 중도 말하면 짝퉁이다”
“기득권 놓지 않고 중도 말하면 짝퉁이다”(시사저널, 09.09.16)
“죽으면 선배선열들에게 보고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독립투쟁을 하다 왔노라고”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죽으면 선배선열들에게 보고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독립투쟁을 하다 왔노라고” 당산(堂山) 조문기(趙文紀, 1926∼2008)! 일제강점기에는 항일투쟁으로,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청산과 통일운동으로 일관한 불굴의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이 2008년 2월 5일 기어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선생은 떠났지만 82년 생애, 그 풍운의 세월은 고스란히 남았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아 욕되다. 구차하게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늘 이렇게 되뇌던 그였다. 그러나 또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고대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요즘은 더 살고 싶어진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오는 것이라도 보고 죽고 싶기 때문이다.”그런데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불과 6개월 남기고 끝내 그는 가버리고 말았다. 외할아버지를 통해 항일의식을 깨치다 선생은 1926년 경기도 화성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선생의 선친은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늘 외지를 돌아다녔다. 술이나 도박도 할 줄 모르고 당시 유행하던 미두나 광산에도 손을 대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가 집에 들렀다 가면 땅문서는 하나씩 없어졌고 살림도 찌들어갔다. 어린 선생은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부엌 장독 안에 감춰져 있던 ‘비(秘)’라고 붉게 도장이 찍힌 ‘조선독립소요의 진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을 뿐이다. 남부럽지 않던 살림도 거덜이 나고 집마저 내놓아야 했던 어머니는 어린 선생을 친정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수원 외갓집에서 선생은 외할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조국이 일본에게 강탈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그리고 나라
“착각과 근거없는 낙관 벗어나야 새 대안 꿈꿀 수 있어”
민족21 정용일 취재부장 방배동에 위치한 임헌영 소장의 자택을 찾은 건 지난 2월 4일.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거실 분위기는 단정하고 포근했다. 책들이 빼곡이 들어찬 서가가 거실과 베란다를 채우고 있었고, 주방에 붙은 벽에는 얼마 전 타계한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다. 따뜻한 차와 함께 문학과 인생, 민족과 사회에 대해 기탄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글 정용일 취재부장 onecoree@minjog21.com 사진 김도형 기자 kdh8747@minjog21.com 그는 요즘 근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소장으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월 경에 친일파 명단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5년에 1차로 발표한 것을 보강해서 이번에 최종 발표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8월에는 친일인명사전도 나올 예정이고. 한국문학평화포럼 활동을 통해 올바른 민족의식과 민주주의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른 무엇보다 가장 본격적으로 하려는 일이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을 새로운 모습으로 꾸리는 겁니다.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은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문인들을 망라하는 단체인데, 초대 대표는 고은 선생, 2대 대표는 고원(미국) 선생, 이번에 제가 3번째 대표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강의와 문화강좌는 늘 준비하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가 가지고 있는 굵직한 문학·사회단체의 대표 직함만 해도 6∼7개가 넘는다.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이라는 증거이리라.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교양강좌도 자주 하는 걸로 압니다. “내 나이 또래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을 겁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현대문화센터에서 10시부터 강연을 합니다.
이 대통령, “일왕 방한 초청했지만…”
이 대통령, “일왕 방한 초청했지만…”(한겨레신문사, 09.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