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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과 근거없는 낙관 벗어나야 새 대안 꿈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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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21 정용일 취재부장


 


방배동에 위치한 임헌영 소장의 자택을 찾은 건 지난 2월 4일.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거실 분위기는 단정하고 포근했다. 책들이 빼곡이 들어찬 서가가 거실과 베란다를 채우고 있었고, 주방에 붙은 벽에는 얼마 전 타계한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다. 따뜻한 차와 함께 문학과 인생, 민족과 사회에 대해 기탄 없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글 정용일 취재부장 onecoree@minjog21.com 사진 김도형 기자 kdh8747@minjog21.com



그는 요즘 근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소장으로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월 경에 친일파 명단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지난 2005년에 1차로 발표한 것을 보강해서 이번에 최종 발표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8월에는 친일인명사전도 나올 예정이고. 한국문학평화포럼 활동을 통해 올바른 민족의식과 민주주의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른 무엇보다 가장 본격적으로 하려는 일이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을 새로운 모습으로 꾸리는 겁니다. 세계한민족작가연합은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포문인들을 망라하는 단체인데, 초대 대표는 고은 선생, 2대 대표는 고원(미국) 선생, 이번에 제가 3번째 대표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강의와 문화강좌는 늘 준비하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가 가지고 있는 굵직한 문학·사회단체의 대표 직함만 해도 6∼7개가 넘는다.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이라는 증거이리라.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교양강좌도 자주 하는 걸로 압니다.


“내 나이 또래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을 겁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현대문화센터에서 10시부터 강연을 합니다. 강연 때문에 오전엔 전혀 시간을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점심약속을 못합니다. 처세에 손해를 많이 보는 거죠.”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계속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강연은 문학교양으로 ‘명작을 통한 세상읽기’와 ‘생활글 수필창작강좌’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어요. 1교시 문학강좌는 올바른 문학에 대한 강의인데 그때그때 교양독서도 하고 세상의 변화도 읽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나 자신도 꾸준히 공부하면서요. 글쓰기는 150명의 등단자를 배출했는데 시인, 소설가도 있지만 주로는 수필가죠. 대학 제자들 못지 않게 엄청난 제자들을 배출했고 효과와 보람도 훨씬 큽니다.”


 








▶강좌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신청하는지요.


“여성들과 퇴직남성들이 대부분이에요. 남성들이 적은 건 아무래도 왜곡된 기업문화 탓이라고 봐요. 죽도록 일만 하다 거기서 풀려나니 퇴직 후에는 좋지 않은 일로 흐르는 것 같아요.”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해, 특히 9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과 문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았다.


시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문학이 없는 것이 문제


▶7∼80년대에 비해 오늘 문학의 위상과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문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나아가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학미학 자체가 다원화된 겁니다. 요즘에 와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 늘 있어왔던 일입니다.  참여문학이냐  순수문학이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봐요. 문제는 진정한 참여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동안 우리 문학진영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언론매체에 말려든 탓이 큽니다. 가까이는 60년대부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시대부터 못마땅했던 민족문학, 민중문학에 대해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왔습니까? 중요한 문학상이 어떤 작가에게 가느냐, 아니 누가 관장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신문학 이래 누가 뭐래도 우리 문학의 주류는 지배계급의 문학입니다.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돈도 많고, 매체도 장악하고 있고 영향력도 압도적이니까.”


▶거기에 민족문학, 민중문학 진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신지.


“워낙에 문학단체란 것도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속성을 지닌 겁니다. 거기에 대항에 만들어진 것이 민족문학작가회의인데, 1987년까지는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이거 참 조심스러운 문제인데, 조직의 운영을 방임하고 지나치게 역사를 낙관한 것 아닌가 해요. 스스로가 문단의 중견 이상의 세력에 편입되었다는 착각을 한 겁니다. 일부는 편입도 되고, 또 일부는 대가가 되기도 하면서 어제의 진실을 잊어버리고 기성문화에 편입된 겁니다.”


▶이른바 ‘문단의 권력화’에 대한 지적처럼 보입니다.


“언제 권력을 쥔 적이나 있었나요? 몇몇 사람이 감투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걸맞는 올바른 문학예술을 정론화시키는 데는 실패했어요. 아니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마치 자신들이 문단의 주류를 장악한 것처럼 착각한 건데, 지배계급의 문화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펜클럽, 문인협회, 작가회의가 있는데 거기에 속한 문인들의 숫자, 출판사 등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얼마전 민족을 떼고 ‘한국문학작가회의’로 개칭했는데.


“그 문제를 논의할 때 딱 한 번 나갔어요. 모임에서는 떼자는 입장이 다수였는데, 이유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거죠.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서는 언론에 나왔으니 여기서 재론하지는 않겠지만, 내 입장은 대외적으로 영문이름만 바꾸면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또 바꾸더라도 나중에 하는 게 어떠냐, 대선 앞두고 민족주의가 맹공격을 당하는 이때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입장은 소수였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어요. 이런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회의 선후배, 동료들 간에 균열이 생겨서는 곤란합니다. 내부비판은 하되 작가회의를 지지하고 보다 튼튼히 꾸려나가야 합니다.”


▶일상과 내면으로의 몰입, 혹은 재미의 추구가 현재 한국문학, 특히 소설의 추세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우려 정도가 아니라 큰 문제입니다. 세계문학사를 보면 알겠지만 다 인간이 사는 문제를 다루지 않았습니까? 톨스토이,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등 위대한 문학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적인 미국문학도 이렇지는 않습니다. 내면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내면이죠.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학예술의 본질을 왜곡시켜서는 안됩니다. 물론 내면도 그려야죠. 90년대 이후 지금의 현상은 신문학 이래 보수적인 미학관, 유미주의적 미학관 만이 문학인 것처럼 강요된 역사적 뿌리에다 민주화되었다는 착각과 권력에의 착종이 뒤엉켜 2000년대 이후에 훨씬 가속화된 겁니다.”


 



 


문학이 절실하게 노동자의 처지를 그려본 적 있나?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소설이 안 팔린다? 그건 독자나 시대의 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안 팔리는 겁니다. 조정래 작가의 말을 빌리면 문학의 시대가 간 것이 아니라 진짜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안 보는 겁니다. 노동자문학도 마찬가지죠. 과연 노동자들의 내면과 생활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묘사했는가,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절실하게 그렸는가 생각해봅시다. 1987년 이전에는 외형적 묘사에 충실했다면 그 다음에는 내면과 생활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으로 발전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거죠. 흔히 착각하듯이 서구문학에 에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생태, 환경, 평화, 인종,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우리 문학만이 유독 자기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고 고립된 개인의 내면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인구는 늘어나는데 순수문학 독자가 줄어드는 것도 순수의 미명 하에 문학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모름지기 모든 사람이 읽는 교양으로 되어야 합니다.”


▶수필문학의 생활화를 추구하는 《에세이플러스》를 창간하고 현재 주간도 맡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만.


“문화센타에 강의를 나가게 된 것은 석방된 이후 단순한 밥벌이 차원에서 시작된 겁니다. 그러다 이걸 통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게 뭘까 고민하다 올바른 문학을 통한 세상읽기로 발전한 거죠. 그동안 강좌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있지만 우리나라 문학독자들의 3분의 2가 여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3분의 2가 전업주부들이고 나머지는 문학전문가들이죠. 한마디로 주부 외에는 문학을 읽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럼 방치할거냐? 올바른 독자운동을 통해 독자들에게 판단력을 길러주는 운동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든 게 《에세이플러스》입니다. 왜 수필에 주목했는가 하면 소설이나 시는 주로 프로페셔널들이 하는 겁니다. 일생을 걸고 하는 것이 소설이나 시라면 생활글인 수필은 다릅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자기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여기에 소홀했다는 반성이 있었죠. 《에세이플러스》는 전문작가들과 생활수필인들이 함께 만드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한 특징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바로 ‘착각’이었다. 이 말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민중들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성과를 독식하고 말아 먹은 자들에 대한 분노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통일과 민족문제에 대한 허무주의적 견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진보적 지식인과 작가들 속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전문가, 지식인들은 자기가 외국에서 공부한 이론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발디딘 현실에서 과제를 내세워야죠. 외국에서 배운 이론은 그 나라 가서 써먹으면 됩니다. 민주노동당, 신당이 상대해야 할 세력이 누구입니까? 보수세력 아닌가요.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그놈들 연구나 좀 해라, 학문을 하든 정치를 하든 현장을 봐라, 그나마 좋은 생각 가진 정치인들 헷갈리게 만들지 말라, 이미 막강해진 보수세력 앞에서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시점에 무슨 논리가 그러냐는 겁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먼 훗날 역사가 NL이니 PD니 평가할 것 같아요? 분열하고 패배하면 다 없어집니다. 자기 망하는 짓을 잘났다고 온갖 이론을 다 동원해서 골치 아프게 하지 말고 국민들 입장에 서 보라는 겁니다. 정치노선, 이론 따져서 표 찍는 사람 없어요. 아무리 답답해도 그렇지 태안가서 반성이나 하지 탈당노름이나 해서야 되겠어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농촌에서는 외국인 며느리들이, 도시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둘러싼 편견과 갈등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민족적 혈통만을 고집하는 것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소산이라며 다문화 교육과 정책을 실시하자고 하는데요.


“그건 언론과 학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보수주의가 혈통 찾고 배타하는 것이지, 민족주의 주창자들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서구제국주의가 전파한 민족주의를 가지고 핏대 세울 필요 없어요. 다문화를 인정하고 세계 속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서라도 자기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보수주의는 민족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어요. 제가 어느 글에선가  ‘자발적 식민근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들의 논리의 근저에는 나라 없어도 좋다, 국민 없어도 좋다, 강대국의 한 주로 편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어요.”


“제발 국민의 입장에 한번 서 보라는 겁니다”


쉽지 않지만 피해갈 수 없는 질문, 바로 대선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지난 대선을 계기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대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답은 기자의 예상을 살짝 빗나갔다.


“우리 국민들이 민주화된 10년 동안의 성과가 이번 선거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우리 국민이 제대로 선거를 해본 게 1987년 이후입니다. 이전에는 관권선거만 있었고. ‘민주화의 덕분’이라는 뜻은 관권선거 없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경우라는 의미입니다. 이전 정권에서라면 관권선거를 통해 지더라도 이 정도의 표차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일단 성숙한 민주주의의 표현으로 봅니다. EU처럼 생활적 요구와 밀착되어 있는 민주주의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민주화 덕에 우상이 없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대통령 욕을 단군 이래 이렇게 자유롭게, 상소리로 하던 시대는 없었어요. 국민들은 거기에 능숙해진 것이죠. 긍정적으로 봅니다. 승리한 쪽이든 패배한 쪽이든 아전인수로 해석하거나 남 탓하게 되면 영원한 패배자가 됩니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해요.”


▶성숙한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세력이 국민의 버림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글쎄, 노무현 정권의 정책적 과오는 이전 집권세력에 비하면 오히려 적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몇 가지 잘못이 국민들의 감정, 정서를 건드렸어요. 이것이 국민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게 됐고, 점점 콘크리트화 되어서 깨뜨릴 수 없는 지경까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참 선거운동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민들의 마음을 저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문제는 감정인데 그걸 엉뚱한 걸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왜 민심을 그렇게 몰랐을까요?


“착각이죠. 민주화 이후 10년 동안 의원도 되고, 높은 자기에 앉으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은 겁니다. 사람이 얼마의 시간이면 과거를 잊어버릴 것 같아요? 내가 아는 한 장관의 경우 처음에는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한 6개월 지나니까 듣기 싫어지더라는 겁니다. 자신이 지배세력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거죠. 지배세력은 얼토당토 않아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영원히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역사였어요. 우리나라 민주화세력은 자신이 지위를 가지게 되고 중산층에 편입되면서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었다고 착각한 겁니다. 전통지배층은 인정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실질적 지배자는 늘 부르주아들이었어요. 대통령, 장관 몇 명이 잠시 취직했다 그만 두고 나오는 거지 지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근대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계급이 바뀐 적 없어


▶무엇을 지배하지 못한 건가요?


“우선 관료를 장악하지 못했어요. 관료는 영원한 지배계급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 심해요. 자신은 청렴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관료들의 부패를 막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산업화세력에게 이익을 줬어요. 자신이 안 받는다고 그 돈이 다른 곳에도 안갔겠어요. 그럼 민심은 잡았는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쓴다고는 했으나 기분 나쁘게, 감정을 상하게 했어요. 언론도 마찬가지죠. 언론은 태생적으로 일제 때부터 지배층의 권리를 옹호하는 게 본질이니 개혁적인 정권에 비우호적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건데… 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해보고 당한 겁니다. 국정원 정책도 문제가 많습니다. 국정원은 어떤 사회, 지배구조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조직입니다. 특히 세계화 국면에서는. 다만 무슨 일을 할 것이냐가 중요한데, 과거처럼 용공조작은 일체 없애고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맞는 정보수집과 활동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냥 무력화시켜 버렸어요. 정치적 경륜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자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입니다.


▶대선 이후 진보개혁진영의 대응과 현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가를 알아야지, 남 잘못만 탓해서야…. 특히 책임 있는 몇몇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빨리 입장을 고쳐야 합니다. 우선, 국민들 마음을 너무 몰랐어요.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예외 없이 반성해야 합니다. 나는 아닌데 대통령이, 우리 당이, 시민단체가 잘못했다는 자세는 고쳐먹어야 해요. 설사 대통령이 문제가 많았다 해도 곁에서 시정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고, 공동연대책임이죠. 거기서 빠져나와 자기 혼자 구원받겠다는 작태, 바리새적인 자세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해요. 선거 패배보다 이게 더 위험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커녕 비판적 국민의식에서 분노한 국민으로 만들고 종국에는 경멸의 단계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재생불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총선이 분노의 단계에서 경멸로 갈지, 다시 지지로 돌아설지 갈림길이 될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일부 정치인은 이미 경멸의 단계에 한 발짝 내밀고 있어요. 그러면 영원히 회생이 어렵다고 봅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공동필자의 한 분이시고, 올바른 역사의식의 정립을 위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해오셨는데, 혹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뉴라이트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재인식》을 보면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출발해 거시적으로는 황당한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미시적인 것을 두고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시적인 연구가 학문적인 성과라는 평도 있지만 도출된 결과는 별개의 문제죠. 반론을 써볼까도 했으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어요. 공연히 나까지 나서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줄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뉴라이트의 등장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봐요. 근대 이후 우리 사회의 지배층은 멀리 보면 삼국통일 이후 그대로고, 가까이는 근대 이후 조선조 말기의 지배층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지금까지 온 겁니다. 8·15 이후의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국민적 합의로 과거사 청산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 일제 식민지시대인데,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보수, 구보수연합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앞으로도 식민지시대에 대한 올바른 범국민적, 국가적, 정치적 청산이 없으면 다양한 변종이 나타날 거라고 봐요.”


미래는 낙관하지만 정치세력은 절망적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분열된 각 정치세력에 대한 통합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는 탓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왜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습니까? 원로는 많으나 역설적으로 민주화된 10년, 특히 지난 5년 동안에 훌륭한 인물들을 무력화시켰어요. 이건 정말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천사와 악마를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정치지도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 중에도 다른 정당에 비해 자질과 덕망을 지닌 지도자를 가지고 있으나 인물을 키우지 못했어요. 이상한 정치풍토 때문에 5년 동안 그들의 명성을 오히려 마모시켰습니다. 새로운 사회가 되려면 노장청을 합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일부 엉터리 386들 때문에…. 반대세력의 작용도 있었지만 이쪽에서도 정치인들 나름의 올바른 정당형성에 실패했어요. 올바른 경쟁이 뭐가 나빠요. 파벌도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필요한 겁니다. 재야세력도 정치권에서 발언권이 없었고, 모든 일이 일부 386만으로 진행된 탓이 커요.”


▶대학 교수로서 요즘 학생들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자 그대로 순수한 세대죠. 산업화가 진척될수록 세대 차가 점점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요즘은 극단적 이기주의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결코 저절로 더렵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뭔가  원인이 있기 때문인데… 노동자, 학생들은 영원한 희망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낙관해도 좋습니다. 다만 정치세력은 절망적이에요. 자기들은 다 옳다고 하지만 다 틀렸어요. 그걸 알아야 되는데, 지자체 선거나 보궐선거 때마다 그렇게 적신호가 울렸는데도 반성이 없었어요. 선거 때마다 그랬죠. 그러다 대선 때 KO 당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어요. 3월까지도 정신 못 차리면 자기 인생과 역사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50년 동안 싸워온 저력이 있고 근본적으로는 역사가 진리를 매장할 수 없지만 정신 못 차리는 세력에 대해서 가혹한 심판을 내리는 역사의 교훈을 아직 아무도 못 세우고 있어요. 친일파 청산 먼저 하고,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하는 시민운동이 나와야 합니다.”


▶누가 그런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에 있던 사람들이 나오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시민운동이 한 발 앞서나갈 것으로 봅니다.”


▶그들이 과연 시민운동으로 돌아올까요? 그리고 돌아온다고 해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역사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시민운동에 다시 투신할 겁니다. 그것도 아니면 낚시꾼으로 전락하고 마는 거죠. 그들의 경륜을 잘 활용하면 시민운동이 대자적인 시선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시민운동이 발전해야만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될 수 있어요. 시민운동의 발언권이 약화되고 무력화된 현실, 정치운동이 시민운동을 우습게 보는 현상 등 도치된 걸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할 바에는 낚시나 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히려 시민운동에 대한 정치권의 유혹이 더 강할 거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민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야심가들은 이미 다 들어갔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도권에 함몰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시민운동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아니면 역사가 힘들어질 겁니다.”


이제 그의 개인사로 눈을 돌려볼 시점이다. 그는 1941년 생으로, 본명은 임준열(任俊烈)이다.


 



 


▶어느 한 우익사이트에서 박헌영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俊烈에서 軒永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웃음)


“필명으로 직접 지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성명철학 등에 심취한 탓에 이름에 관심이 많았죠. 심오한 사연 같은 건 없어요.”


우리가 배출한 세계적 지성들을 《대화》처럼 정리했으면


▶청년기는 어땠습니까. 어느 글에서 보니까 염세주의에 심취해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다는 구절이 있던데요.  


“염세적이면서도 세상과 등진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잘살게 될까에 관심이 많았죠. 집안 내력으로 봐서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아버지는 6·25때 사망, 큰 형은 월북) 대학에 와서 생활에 쫓겨 다른 일을 할 엄두를 못내다가 대학원 갈 무렵 자신의 생각을 펼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분지의 남정현 선생과 인연이 되어 등단하자 먼저 찾아뵙고 거의 매일 만났어요. 남정현, 최인훈, 박용숙 이 세 분이 단짝이에요. 이호철 선생도 그렇고. 당시 이분들의 사회의식이 상당히 앞섰어요, 세계정세에도 밝고.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고 인문사회과학을 다 거친 그런 소설가들이셨죠.”


▶리영희 선생과의 대담을 담은 《대화》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젊을 때부터 존경해오던 분이라 대화의 기회를 얻은 것은 저에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문학활동에 못지 않게 꼽고 싶은 업적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리영희, 고은, 백낙청 같은 분들은 사실 세계 지성의 무대에 세워도 손색이 없는 정상급 지식인들이다. 이런 분들의 영향력이 우리 사회에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인간적으로도 참 매력 있는 분이에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상대에 대한 배려 등 이런 인격과 교양이 좀 더 우리 시대에 보편적인 스승상으로 정립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대화》같은 유형의 책이 정리되어 나왔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올해 꼭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나 바램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시죠.

“개인 저서를 안낸지 15년이나 되었어요. 90년대 동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격변이 있고 난 후 이론과 연구에 대한 무력감에 빠져있었는데 금년에는 정말로 책을 낼 생각입니다. 사회, 문학 등 단행본 15∼20권 정도의 분량이 쌓여만 있는데, 이제는 정리해서 내야죠. 소망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문학만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처지가 되었으면 하는 거죠.(웃음) 건강도 잘 챙기고 있어요. 술도 자제하고, 단전호흡도 열심히 합니다. 앞으로도 문학과 사회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민족2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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